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산다. 그래서 인생을 탄생(Birth), 선택(Choice), 죽음(Death)이라 말하기도 한다. 갈림길 앞에서 만족할 만한 선택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배우자를 결정하는 일처럼 매우 중요하여 선택의 여파가 길게 가는 것도 있지만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당장 일어날지 잠을 더 잘지와 같은 단타성의 선택도 있다.
최근 중국 청도로 골프 여행을 다녀오면서 기내에 핸드폰을 놓고 내리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다가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행 2명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없어서 그들에게 내 짐을 싣고 출발하게 하고 나는 홀로 공항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공항으로 들어서자마자 안내 데스크로 달려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D항공 유실물센터의 위치를 알려줬다. 나는 항공사 유실물센터의 한 직원을 붙잡고 편명과 좌석번호를 알려주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직원은 나에게 비행기가 착륙하고 손님이 내리면 승무원이 1차로 의자나 선반 위에 놓고 내린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고, 2차로 청소업체가 기내를 청소하면서 유실물이 있는지 추가로 확인한다고 했다. 승무원이 습득한 유실물이 있는지 확인하였으나 없다고 했고, 청도에서 타고 온 비행기는 1시간 후에 홍콩으로 다시 출발한다는 설명이었다. 청소 시간이 워낙 촉박하여 유실물을 발견 못 할 수 있고 다음 도착지인 홍콩에 도착하여 청소하다가 찾을 수도 있다고 했다.
유실물이 접수되면 통상 항공사 홈페이지에 등재되기까지 2~4일이 소요된다는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핸드폰에 있는 수많은 사진과 은행 거래 등 개인정보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항공사 직원에게 부탁하여 남편과 통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인천공항으로 와달라 전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스스로 자책을 많이 하고 있으니 나를 보거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남편마저 나에게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놓고 다니냐?’ 같은 말을 한다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기에 사전에 보호막을 쳤다. 남편이 오려면 1시간 30분이 남았다.
‘기내 포켓에 넣어놓은 핸드폰을 왜 안 챙겼을까? 유심칩을 사용하지 말고 자동 로밍을 해야 했었나?’
꼬리를 물고 길어지는 생각을 싹둑 잘라내었다. 자책만 더 해질 뿐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다른 쪽으로 신경을 돌려야만 했다. 자책 대신 나는 책을 읽기로 했다. 여행 가면서 들고 갔던 책인데 귀국해서 공항에서 읽게 될 줄이야!
의외로 활자가 눈에 잘 들어왔고 책 내용도 재밌었다. 밑줄까지 그어가며 책을 읽었다. 책에 빠져들 때쯤 잃어버린 핸드폰이 다시금 또 떠올랐다. 책을 50분쯤 읽었을까? 유실물센터로 가서 중간 상황을 물었더니 비행기는 홍콩으로 출발한 직후였다. 청소하면서 핸드폰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직원은 ‘이젠 좀 가라’는 눈빛으로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직원의 표정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정신을 부여잡고 말을 이어갔다.
“청소할 시간이 매우 짧았잖아요. 홍콩에 도착해서 청소하다가 발견될 수도 있잖아요.”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강요라도 하듯 질문 아닌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만큼 나는 간절했다. 당연히 기내에 놓고 내렸다고 생각했는데, 없다고 하니 도착 후 한 번 들른 화장실이 떠올랐다.
‘혹시 화장실에 놓고 왔나?’
내 기억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공항 유실물센터로 찾아갔다. 편명과 상황을 다시 이야기하니 다음 날 오후 4시 이후에 전화로 확인을 해 보라고 했다.
항공사 유실물센터와 공항 유실물센터를 방문하고, 비상 연락처를 남기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핸드폰을 잃어버렸고 핸드폰의 향방은 알 수 없었다. 내일 이후나 되어야 그나마 핸드폰을 되찾을 수 있을지 말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D항공 유실물센터 직원의 눈치가 보여 더 이상 그 사무실에 머무를 수 없었다. 딱히 할 것도 없어 좀 전까지 들고 있던 <김씨네 과일>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20분이 흘렀을까? 책에서 시선을 45도 앞으로 떼니 남편의 신발이 시야로 들어왔다.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오느라고 고생했지? 와줘서 고마워.”
“핸드폰 찾았어?”
남편은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었다.
“유실물로 접수도 안 되었데. 그 비행기는 홍콩으로 이미 출발했고.”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핸드폰 분실로 망연자실해 하는 나에게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나와 보폭을 맞추어 주차장까지 함께 걸었다. 남편을 보니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인천공항 주차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길, 남편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별말 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네가 아까 전화로 미리 말했잖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그건 그렇지. 그래도 나에게 싫은 소리 안 해줘서 고맙다고.”
“신은 참 공평하다. 네가 이런 실수를 다 한다니. 일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잖아.”
남편의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뭘. 철두철미해?”
칭찬 같은 남편의 한마디가 쑥스러운 마음을 간지럽히더니, 몇 시간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남들은 네가 이런 실수를 전혀 안 할 거로 생각할 거야. 완벽해 보이는 너도 허당끼가 다 있네.”
씩, 미소 지으며 위로를 건네는 남편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런데 아…. 머리 아파. 핸드폰에 개인정보도 많고, 연락처도 다 있고, 그 많은 앱은 언제 다시 까냐?”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처럼, 널 뛰는 춘향이 마냥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했다.
남편의 지혜로운 말이 이어졌다.
“금번에 정리해. 쓰지 않는 앱들도 정리하고, 전화번호도.”
연락처에 저장해 놓은 수많은 사람 중 내가 자주 연락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몇 명일까? 깔아놓은 앱 중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앱들이 꽤 많기도 했다.
집에 있는 수많은 옷 중에 딱 10벌만 고르고 다 버려야 한다면 나는 어떤 옷을 고를까?
나 혼자 원룸으로 이사 가야 해서 필요한 물건 5개만 딱 가져가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까?
나는 모으기는 잘해도 버리지를 못한다. 온라인에서도 다르지 않다. 사진은 열심히 찍지만, 선별해서 삭제하는 것은 무척 더디다.
휴대폰 분실 사건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좀 잠잠해지라는 의미 같기도 하다.
올해는 1월 1일 W프로젝트 오프라인 모임을 시작으로 거의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에서 매달 2회 강의하고, 7월에 공저 책이 나오기까지 퇴고에 시간 할애가 많았다. 6월 중순부터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면서 매주 한 편의 글을 발행하여 지금까지 11편이 모였다. 아이들 신학기 선생님 상담, 자녀 학원 스케줄링, 친구들과의 국내외 여행, 공저 책 북콘서트 참석 등 많은 스케줄을 테트리스 깨듯 소화했다.
남편의 조언대로 앱과 연락처의 정리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잠잠히 돌아보며 앞으로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 같다.
덧셈보다 뺄셈의 가치를 깨달을 때다.
Key Message
1. 통제 불가능한 변수에 끙끙대지 않는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나는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처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다. 자책보다는 항공사 유실물센터를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나에게 빨리 연락이 오게끔 조처했다. 그 이후는 변화된 상황에 따라 대응하면 될 일이다.
2. 벌어진 사건의 원인 규명보다는 대처에 집중한다.
남편이 공항에 도착하려면 90분은 더 있어야 했다. 수중에는 가방 속의 책과 신용카드뿐!. 이런 상황에서 가장 생산적인 행동은 무엇일까? 핸드폰 분실의 원인을 곱씹어 보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스트레스만 더 쌓일 뿐이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쇼핑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을 안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구를 만나면 힐링이 되고, 몰입해서 읽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