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가까운 사람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기는커녕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들은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아픈 것은 못 참는다’라는 말이 꼭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20년 넘게 친하게 지내고 있는 회사 동료가 최근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녀는 상사로부터 귀띔받자마자 상기된 목소리로 나에게 제일 먼저 연락해 왔다. 나에게 처음 연락해 준 것이 고마웠고 나는 그녀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전했다.
<진짜 ‘내 편’인 사람을 구별하는 신박한 방법>이라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 전기가 통한 것처럼 짜릿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려보았다. 이런 통찰력 가득한 말을 짧은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의 깊은 내공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좋은 뉴스를 전하면 잘 생각해 봐라. 왜냐하면 사람들은 진심으로 기뻐해 줄 사람에게 좋은 뉴스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주저함이 없이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을 전달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당신 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복잡하게 얽힌 머릿속 실타래가 한순간 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올해 7월 초, 6명의 저자와 함께 공저 책을 출간했다. 공저는 내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내가 책을 냈다고 하면 누군가는 축하와 응원을, 누군가는 질투를, 누군가는 부러움을, 누군가는 ‘공저는 별거 아니야’라면서 깎아내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저자들을 위해 대구, 안산, 서울 3곳에서 릴레이로 북콘서트를 열었다. 서울 북콘서트에 나는 회사 동료 3명을 초대했다.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전하기가 매우 쑥스러워 망설이다가 북콘서트 날짜를 목전에 두고서야 매우 촉박하게 일정을 알려주었다.
동료 A는 고3 아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게다가 북콘서트 당일, 아파트 매매를 치르는 빡빡한 일정인데도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했다. 동료 B는 남편이 골프 약속이 잡혀 있어 독박육아를 피할 수 없는 주말인데도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오겠다며 다짐을 거듭했다. 동료 C는 내가 쓴 글을 두 번이나 읽고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리뷰까지 남겨주었다.
북콘서트에 초대한 동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가 ‘내 편’으로 분류한 사람들이 맞다. 나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고, 꽃다발을 들고 버선발로 달려올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신입사원 시절에 조직장은 의외로 외롭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때는 직급도 높고 직원들이 모두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일 텐데 왜 외로울까, 하고 생각했다. 조직장이 된 지금에서야 그 말뜻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점심 약속이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 불쑥 점심을 같이 먹자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마음이 든든하다. 골치 아픈 회의로 머리가 지끈거릴 때 가볍게 커피 한잔 나누고 산책할 수 있는 후배나 선배가 있다면 힘든 회사 생활도 버틸 만하다.
오늘 오후 그런 후배와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생겼다.
“네가 만약 큰 상을 받았거나 승진했다고 가정해 봐. 그럴 때 누구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거야?”
“부모님, 남편, 아이들이요”
“직장동료나 친구들은?”
“자랑한다고 느껴질지도 모르니 약간 주저할 것 같아요. 그런데 선배한테는 주저함이 없이 연락할 수 있어요.”
“나에게는 왜 주저 없이 연락할 거야?”
나는 알면서도 괜스레 물었다.
“선배는 저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것 같아서요.”
맞다. 나는 그 후배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면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다. 그녀와는 최근 3년 동안 아주 깊이 친해졌다. 처음부터, 늘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다. 오해의 순간이 몇 번 있었으나 오히려 고진감래의 시간이 되었다. 서로에게 솔직하게, 힘든 일을 상담해 주다 보니 어느덧 남들에게 터놓지 못할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나를 잘 따르던 후배 D가 있었다. 일 잘하고 판단력 좋고 책임감도 있는 재원이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직언을 자주 건넸다. 그때 나는 추진력이 좋고 논리적이며 부서 간의 협상을 잘 이끌었지만, 평판은 늘 ‘세다 혹은 강하다’였다.
맞는 말이라고 상대방이 모두 수긍하지는 않는다. 특히 직원이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때, 부서 간의 협력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었을 때, 나는 이치에 바른말을 부드럽게 전달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말이다.
D는 내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신호를 보냈다. 미팅룸에서 회의하다가 내 목소리가 좀 커지면 탁자 아래에서 내 발을 차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내 발을 차는지 잘 안다. 부드럽게 보이는 것이 좋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나에게 인식시켜 주는 그녀의 소소한 배려가 나는 고마웠다. 그 후배를 위해서라도 입지를 잘 잡고 싶었다. 그 친구에게 언젠가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열렬한 팬이다. 그녀 또한 나의 빅팬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팀장으로 일하면서 주변에 ‘내 편’이 많다면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KPI를 달성하고, 분기마다 직원들과 성과 면담을 하고, 연 2회 공정한 성과평가를 제출해야 한다. 머리 아픈 일이 넘치지만, 나의 빅팬들 덕분에 휴식을 취할 수 있고, 그들의 응원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그들은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이다.
당신은 누군가의 열렬한 팬인가요?
당신의 빅팬은 몇 명이나 있나요?
Key Message
1. ‘내 편’을 구분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상대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고 싶다면,
최근에 나에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을 주저함 없이 바로 말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라.
2. 지인의 좋은 일에 마음을 다해 축하해 주자.
내 주변 사람이 잘 되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 사람으로부터 생산적인 자극을 받게 되니,
나 역시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