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랑 Oct 09. 2024

욕심은 나의 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엄마적 사고' 

가을이 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날씨가 좋다. 나뭇잎 스치는 가을바람이 창문을 타고 방안을 가득 채우면 캠핑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런 가을바람에 취해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이불을 덮고 자면 그리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새벽녘에 추워서 잠에서 깼다. 창문을 반만 열어 놓을걸…. 으슬으슬 춥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뿔싸! 감기 초기 증상과 비슷했다. 새벽 온라인 모임에 줌(Zoom)으로 잠깐 참여하고 침대로 다시 기어들어 갔다.

 

 알람을 6시 30분, 7시, 7시 30분으로 맞췄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더 가라앉았다. 큰일이다. 오늘은 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7시 알람이 우렁차게 울렸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한숨 더 잤더니 7시 30분이 되었다. 출근하려면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마지노선이었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알람을 재빨리 끄고 눈을 감아버렸는데 5분 뒤, 알람이 다시 한번 우렁차게 울렸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천근만근 눈을 가까스로 떠 핸드폰을 잡았다. 습관적으로 화면을 열고 유튜브를 켰다. 어떤 알고리즘 때문인지 영화배우 진서연의 세바시 강의 ‘엄마적 사고’ 영상이 떴다.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온 후배에게 진서연이 해준 말’이라는 헤드라인의 쇼츠였다.

출처 Youtube 쇼츠_세바시_진서연

 “너는 너 자신을 엄마라고 생각해 봐. 너를 돌봐야 해. 절대로 너를 보호해야 해. 네가 너 엄마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 만나게 할 거야? 이 지경까지 오게 할 거야?” 


 후배는 엉엉 울면서 절대로 이렇게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했단다. 

 “엄마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면 잘 먹이고 싶고, 잘 재우고 싶고, 내 편이 돼 줘야 하는 것 같아요. 나 자신에게 주는 의무라고 생각해요.”

 진서연 배우가 차분하게 말했다. 


 짧은 쇼츠를 봤는데 기운이 났다. 좀 전까지 해롱거리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욕실로 가서 어느 때보다 빠르고 경쾌하게 씻었다. 차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엄마적 사고’ 세바시 쇼츠를 몇 번 더 돌려보았다. 내가 엄마라면 나 자신에게 뭐라고 말할까? 


 “애쓰고 있다. 너 자신도 좀 돌봐가면서 일해라. 그렇게 애쓰면서 살지 마라.” 

 이렇게 토닥토닥 말해줄 것 같다. 아들과 딸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 게 없는 엄마다. 그런 엄마 역할을 자신에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건 말 그대로 ‘심봤다’였다.     


 주말에 산책하다가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특징을 한마디로 하면 뭐야?” 

 무엇을 딱히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요즘 들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하고 싶지만, 늘 어딘가 아쉬운 구석이 남았다. 나는 돌아온 남편의 답에서 위로받았다. 


 “넌 욕심이 많지” 

 답변은 짧고 간결했다. 

 “푸하하.”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 욕심이 많아? 다른 사람들도 배우려는 욕심, 더 가지려는 욕심이 얼마나 많은데?”

 욕심은 누구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네 욕심은 좀 다르지. 성장의 동력이 되니깐.” 

 내가 질문하게 만드는 건 남편의 대화 스타일이다. 


 “욕심은 누구에게나 성장의 동력이 되지 않아?” 

 나는 당연한 듯이 물었다. 


 “아니지. 그냥 욕심만 많아서는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하지. 그 상황을 불평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너는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성장하고, 성장한 데서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잖아.”

 남편은 툭 던지듯 말했지만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24회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KLPGA 골프 대회가 블루헤런 GC에서 지난 10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개최되었다. 매 홀 눈앞에서 선수들의 골프 샷을 보니 TV로 시청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재미있고 긴장감이 돌았다. 나처럼 부부가 함께 또는 가족 단위의 갤러리가 많았는데, 골프 선수들의 팬클럽도 적지 않았다. 그중 대회 우승 후보로 예상되는 윤이나 선수의 팬클럽은 서로가 무척 친해 보였다. 윤이나 선수를 응원하는 미니 깃발까지 자체 제작하여 가방에 꽂은 열성팬들이었다. 3일 차 챔피언조인 황유민, 박도영, 윤이나 선수 모두 구름 떼 같은 갤러리를 몰고 다녔다.  


이날 압권은 김수지 선수의 8언더 기록이었다. 안 그래도 골프를 좋아하는데 현장에서 보니 기름에 불붙듯이 골프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다. 주최 측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중에는 선수들의 사인회도 있었다. 박현경 선수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황급히 뛰어갔는데 인산인해여서 사인받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다음 날 결승 대회를 앞두고 퍼팅 연습을 해야 한다면서 매니저(?)가 사인회를 종료하려 했다. 아쉬워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던 그때, 박현경 선수가 작은 목소리로 매니저에게 말했다.


 “저 시간 있는데요.”


 몇 명에게는 사인을 더해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포착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어이 모자 겉면에 큼지막한 사인을 받아내었다. 이 상황을 줄곧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나에게 엄지척을 들어 보였다.     

 “너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구나!” 


 원하는 것을 쟁취한 부인에게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눈빛이었다. 종결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오늘처럼 기회는 있을 수 있다. 조금 더 기다리면서 상황을 파악하다 보면 행운을 잡기도 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뉴욕 양키스의 요기 베라가 뉴욕 메츠 감독 시절이었던 1973년, 내셔널 리그 동부 디비전에서 꼴찌를 하고 있었다. 기자가 ‘이번 시즌은 가망이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자, 이때 요기 베라가 기자에게 쏘아붙이듯이 응대했던 말이다. 이 말은 회자하며 유명해졌고, 이후 요기 베라의 자서전에서 Yogi: It ain’t over라는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박현경 선수의 사인을 받고 남편과 나는 마지막 홀이 있는 동 코스 9번 홀로 갔다. 페어웨이와 그린이 다 보이는 곳에 1인용 방석을 깔고 나란히 자리 잡았다. 

그 다음 조에는 내가 좋아하는 박민지 선수가 있었다. 3일 차 경기에서는 1오버를 했다. 아주 훌륭한 점수다. 박민지 선수가 게임을 마치고 사인회를 위해 이동할 때 나는 용수철처럼 잔디에서 벌떡 일어나 사력을 다해 뛰었다. 홀로 잔디에 앉아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남편은 속으로 생각했단다. 

‘모자에 이미 박현경 선수 사인을 받았는데 어디에 더 사인을 받으려고 저렇게 뛰어 가지? 

박민지 선수 팬들이 엄청 많던데 과연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   


 몇 분 후 9번 홀로 돌아오니 남편은 내 얼굴 대신 모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못 받았지? 모자에 박현경 선수 사인밖에 없네?” 

 나는 말 대신 모자를 안쪽으로 뒤집어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모자 안쪽에는 박민지 선수의 친필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대~단하다!"

 남편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엄마적 사고’로 접근해 봐도 ‘와~아 내 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네 모습이 멋지다’라며 나를 응원할 거 같다.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에 이런 글이 나온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지.”    

Key Message

1. ‘엄마적 사고’로 나 자신을 돌봐주자.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2.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나 자신’에 대해 가끔 물어라. 장점이 강화될 것이다. 

3.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해보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이전 11화 질문의 목적을 파악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