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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하는 팀장, 멈춤의 미학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뇌는 오히려 내부를 정리하고 감정을 회복한다

by 하랑

오늘따라 남편은 회식, 딸은 친구네 집, 아들은 학원 일정으로 가족 모두 약속이 있었다.
집에 곧장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문득 혼밥이 하고 싶어졌다.
하루 종일 ‘누군가와 연결된 상태’로 지냈기에, 이 시간만큼은 나 혼자 있고 싶었다.

식당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훑던 중 먹고 싶은 음식이 있었지만, 2인분부터 주문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소고기덮밥을 시켰다.


주문을 마치고 나니 머릿속엔 자연스레 회사 일이 떠올랐다.
회의 중 빠뜨린 보고, 내일 아침 제출할 자료, 그리고 직원의 요청 사항까지.
음식이 나오자마자 카톡이 울렸다. 조직장 채팅방은 퇴근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림이 잦아들었다.
식당에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의 대화가 백색소음처럼 스며들었다.

천천히 밥을 씹었다.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하루의 긴장을 내려놓는 의식 같았다.



밥은 다 먹었지만, 바로 집으로 향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늘 그렇듯 노트북을 열까 하다가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한량처럼, 아무 목적 없이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소개팅 중인 커플, 통화 중인 직장인, 노트북으로 강의를 듣는 학생들.
모두 분주한데, 그 속에서 나만 잠시 정지된 듯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를 처음 명명한,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뇌는 오히려 내부를 정리하고 감정을 회복한다.”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사라지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그 시간 덕분에 생각의 결이 고요하게 정리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멍을 때리다가, 브런치 앱을 열었다.
내가 쓴 글에 달린 댓글을 읽고, 감사한 마음으로 답글을 달았다.
의무감이 아닌 즐거움으로 하는 소통이었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 자유로움이 묘하게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취미도 아니고,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의 경쟁도 아니었다. 그저 나의 속도로, 나의 리듬으로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한 시간쯤 그렇게 있었다.


팀장으로 일하며 늘 ‘책임’과 ‘효율’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조직의 방향을 잡고 문제를 해결하며, 때로는 감정노동까지 감내한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은 자주 뒤로 밀린다.


“내가 이 자리에 있으니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이 말은 리더들이 스스로를 다독일 때 가장 자주 떠올리는 문장이다. 그 말속에는 ‘조금은 쉬고 싶다’는 작고 정직한 고백이 숨어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 본래의 속도를 되찾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야?”
“이제 가는 중이야.”
“얼른 와.”
짧은 대화였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혼자 보낸 시간이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가족에게, 조직에게, 다시 돌아갈 힘을 주었다. 우리는 종종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혼자 있음은 단절이 아니라, 균형을 되찾는 시간이다.

리더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의 혼밥은 조용한 쉼이었지만, 내일을 견디게 할 단단한 숨이었다.

잠시 멈춤으로,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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