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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ul 06. 2024

상사의 장점을 끌어당겨라

  실장님과 직원 인사 관련 미팅을 하던 중의 일이다. ‘내가 한번 이야기해 주려고 했다’라고 운을 띄우시더니 ‘나한테만 잘하지 말고 A 이사에게도 잘하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사의 피드백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아. 저는 실장님과 이사님 모두에게 잘하는 것 같은데요.”

 실장님은 나의 반응에 잠깐 멈칫하시다가 좀 전까지 논의했던 사원들의 인사 발령 주제로 화제를 돌리셨다. 미팅이 끝나고 실장님의 피드백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두 달 전쯤 A 이사님이 보낸 카톡에 답장을 늦게 한 적이 있었는데, 심하게 질책하셨다. 사정이 있어 답장이 늦었다고 상황을 설명했지만, 핑계로 여기시는 듯했다. 과거에도 내가 답장을 늦게 한 적이 있다면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 역시 A 이사님과의 대화로 기분이 상했다. ‘상사의 카톡에 바로 답을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다’라는 논리에 그만 질려버렸다. 그 뒤로 A 이사님이 보내는 카톡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경을 써 신속하게 답장했고, 지적받을 만한 행동을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잘되게는 못해도, 못되게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직장인이라면 들어봤을 것이다. 문장을 곰곰이 되새겨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A 이사님과 카톡 사건이 있고 나서 몇 주 후 실장님이 퇴근길에 전화를 주셨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할 건데 하랑 팀장이 적격인 것 같아. 한 번 해봐. 하랑 팀장의 경력에도 도움이 될 거야. 영어로 진행되는 것이어서 신경이 쓰이겠지만 하랑 팀장의 영어 실력 정도면 문제없을 거야. A 이사가 해도 좋은데 영어가 약해서…. 내가 A 이사에게는 직접 이야기할게.”     

 무엇보다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나의 CDP(경력개발관리)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셨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가 많아서 할지 말지를 고민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셨던 건지, ‘예스’라는 답변을 끌어내려 노력하셨다. 나로서는 싫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현재 일이 많기는 하지만 경력에 도움이 되는 일임은 자명했다.

 ‘이 프로젝트를 A 이사가 하고 싶어할 텐데….’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실장님이 알아서 주신 기회 아닌가. 굴러들어 온 기회를 내가 스스로 박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며칠 뒤, 실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지난번 프로젝트 말이야. 임원이 하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서 A 이사가 하기로 했어. 영어는 B 과장이 지원해도 되고 말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면 그렇지. A 이사가 이 프로젝트를 놓칠 리가 없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겼다. 실장님의 피드백과 연관하여 다시 생각해 보니 나의 대응에 있어 아쉬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장님, 그 프로젝트는 A 이사가 하는 것이 더 적정해 보입니다. 제가 부 PM으로서 A 이사를 지원사격 하겠습니다.”

 내가 만약 이렇게 말했다면 실장님은 분명 ‘이번 프로젝트를 A 이사가 한 번 맡아봐. 하랑 팀장이 부 PM으로 써포팅할 거야’라고 전했을 것이다. A 이사를 포함하여 삼자가 모두 윈윈(Win-Win)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내가 예상하건대 실장님은 A 이사에게 프로젝트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나를 추천했을 것이다. A 이사는 임원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므로, 내가 하는 것에 대해서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이사라 해도 실장님의 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비추기는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실장님은 A 이사가 ’하랑 팀장을 좋게 보지 않는구나‘라고 유추하셨을 수 있다. 특정 사람에 대해서 ‘일을 맡겨 보면 어때?’라고 물었을 때 그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중립적인 게 아니고 부정적인 시그널에 더 가깝다.

 내가 A 이사의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그 프로젝트를 후배에게 넘겨주는 것보다는 내가 하겠다고 어필했을 것 같다. 사람들과의 관계와 조직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음에도 실장님이 제안해 주신 것에만 혹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올해 승진한 이후로 나를 지켜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별한 의도가 없는 나의 행동과 말에 의도가 있을 거라고 넘겨짚는 사람들도 여럿 생겼다. 카톡에 늦게 답장하고 A 이사가 참석하는 회의의 일정을 몇 차례 변경한 일들로 A 이사님 역시 내가 승진 이후로 예의가 없어졌다고 미루어 짐작하신 듯했다.


 “부서장이 된 것은 일 잘한다는 인정을 회사와 상사로부터 받은 겁니다. 부서장이 되고 나서도 일로써만 평가받으려고 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에요.”

 1:1 멘토링을 진행 중인 타 회사 임원의 해답은 명쾌했다. 윗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일을 잘해서 상사를 기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에게는 지배적이었다.


 내 부서원들부터 다시 살폈다. S 차장에게 일을 맡겨 놓으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가져오지만 먼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 K 차장은 일도 잘하고 회사에 떠다니는 카더라 통신도 자주 전한다. 본인이 나를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나 역시 K 차장을 더 유능한 직원으로 생각하며 나중에 기회가 될 때 팍팍 밀어주고 싶다.


 임원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 이유는 나의 부서가 추진하는 일에 윤활유 같은 도움을 받거나 고춧가루를 뿌리지 못하게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또한 일을 잘하는 방안 중의 하나다.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은 나보다 잘 난 점이 반드시 있다. 그 장점을 빨리 찾아서 외워야 한다. 이해하는 것과 암기는 다른 분야다. 외우지 않으면 상사의 장점을 까먹게 되고 평가하려는 나쁜 습관이 불쑥 올라오기 쉽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존경은 쉽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고 나 스스로 먼저 공감하고 입 밖으로 자주 표현해야 내 표정에서 존중과 존경의 마음이 묻어 나온다. 



 ’일 잘하는 상사에게는 고개를 잘 숙인다’ 같은 자랑은 하수의 말이다. 나보다 못나 보이는 상사에게도 고개를 잘 숙일 수 있어야 고수다. 그 사람을 임원으로 임명한 데는 내가 보지 못한 장점을 회사가 알아봤기 때문이다. 그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손바닥을 펴서 맞잡는 것을 악수라 한다. 아무것도 움켜쥐고 있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나는 위협적인 사람이 아니고 당신에게 호의가 있다는 것을 보이는 행동이다.

 ‘나는 당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고 당신을 매우 존중한다’라는 악수의 제스처가 자연스러울수록 좋다. 상사와 잘 지내야만 내가 책임지고 있는 부서에서 추진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지원 받을 수 있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협조를 구할 수 있다. 직원이 부서장에게 바라는 것은 마이크로 매니지먼트가 아니다. 항해하다가 암초를 만났을 때 위기를 잘 극복하게끔 리더십을 발휘하고 바로 위 상위자의 힘도 빌려와서 활용할 수 있는 관계관리의 역량이다.

 상사에게 손바닥을 펴는 악수의 마음을 보여라. 




Key Message

1. 임원과 관계관리를 잘하는 부서장들의 특징을 파악하라.

2. 상사가 부족해 보여도 상사는 상사다. 사람 보는 눈은 회사가 나보다 정확하다.

3. 임원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 이유도 궁극에는 일을 잘 추진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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