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단상
어젯밤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치더니, 습기 섞인 바람과 빗방울 덕분에 아침 공기는 전날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자고 일어난 탓인지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나는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섰다.
걸으며 유튜브를 켜는 건 늘 하던 루틴이었다. 출근길이라도 ‘뭔가를 들으며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공부든 뉴스든 자기계발 영상이든 입력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다.
그런데 몇 분 걸었을까.
오늘만큼은 문득 빗소리만 듣고 싶어졌다.
영상을 끄자마자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선명하게 귀를 채웠다. 뚝뚝, 때로는 찌지직…. 빗방울 소리의 음률이 제각각이었다. 그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며 걸으니 이상하게 마음 한쪽 편이 따뜻했다.
그 소리를 두고두고 듣고 싶어서 핸드폰으로 빗소리를 녹음했다.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소리가 그날따라 나를 부드럽게 감싸는 듯했다.
나는 늘 여러 일을 동시에 하며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걸을 때도 유튜브 영상을 듣고, 커피를 마시면서 눈으로 책을 읽고, 회의 중에 다른 사람이 발언하면 메일을 확인하곤 했었다. 두세 개의 일을 동시에 해야 '열심히' 사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27년을 일하며 내 하루는 늘 일정과 목표로 빼곡했다. 팀의 방향을 잡고, KPI를 달성하고, 타 부서와의 업무 조율은 팀장의 숙명이다. 그러다 보니 팀장으로서 ‘더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를 압박했다.
심리학자 엘렌 랭어(Ellen Langer)는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려 할수록 만족감과 집중력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멀티태스킹은 능력이 아니라 부담이라는 연구 결과도 많다.
실제로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의 실험에서도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처리하려 한 집단은 하나에 몰입한 집단보다 생산성이 40%나 낮게 나타났다. 나는 그동안 그 사실을 여러 번 들었음에도 ‘현실이 그렇지 않잖아~’라는 핑계로 멀티태스킹을 당연한 방식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업무도 한 번에 하나만’을 연습 하고 있다. 작업 하나를 마무리할 때마다 마음의 공간이 조금씩 넓어졌다. 예전처럼 여러 일을 동시에 붙잡지 않아도 하루는 충분히 온전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스스로를 잔잔하게 응원하는 방식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산 위에서 다양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빗방울을 들으며 다짐했다.
“지금, 이 순간, 한 가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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