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 아니라 뇌의 생존 전략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서가 사고의 폭을 넓히고, 언어 능력을 키우고, 삶의 깊이를 만든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막상 책을 펼치는 일은 쉽지 않고, 완독은 더욱 어렵다. 책장은 채워가지만 책은 읽지 않는, 이 묘한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책을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인지적 노력(cognitive Effort)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의 사고 체계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시스템 1: 빠르고 자동적이며 거의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스크롤, 영상, SNS를 소비할 때 사용하는 사고.
시스템 2: 느리고 깊이 있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분석, 추론, 이해가 필요한 활동에서 작동하는 사고.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시스템 2는 본질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일을 싫어한다.”
즉, 뇌는 가능한 한 시스템2를 쓰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래서 평일 저녁, 업무와 사람 관계로 이미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책보다 영상에 손이 먼저 가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뇌의 생존 전략’이다. 이는 회사에서 깊은 사고가 필요한 전략적 과제는 미루고, 빠른 실행만 반복하는 리더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디지털 환경은 우리의 집중 시간을 산산이 쪼갠다. 뉴욕대학교 애덤 알터(Adam Alter)의 디지털 중독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의 평균 집중 지속 시간은 47초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알림, 짧은 영상, 빠른 피드백, 알고리즘…. 이 모든 환경은 우리의 사고가 짧은 단위로 끊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에 익숙해진 뇌는 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어려워한다. 반면 책 읽기는 길고 지속적인 호흡을 요구한다. 독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독서가 요구하는 집중의 리듬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의력이 파편화(fragmented)되었기 때문에 책을 읽기 어려운 것이다. 내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고 즉각적인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지연 보상(Delayed Reward)’이라 부른다. 영상은 3초 만에 재미를 준다. SNS는 즉각적인 자극을 준다. 하지만 책은 20~30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재미’나 '통찰'이 온다. 인간의 뇌는 즉각적인 보상을 선호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독서는 본질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다. 우리가 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보상이 늦게 찾아오는 활동을 본능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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