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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뮹재 Dec 21. 2021

서부식당

충남 보령 백반집

 

 보령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몇 날 며칠 전부터 보령에서 무엇을 먹으면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이집 저집 찾아보았다. 백반기행에서 보령편만 2편을 찍어서 찾아보니 대부분 둘 이상은 가야 먹을 수 있는 요리 위주의 식당이었고, 혼밥 하기 적당한 '진짜' 백반집은 딱 한 곳이었다. 그곳이 바로 보령 동부시장에 위치하고 있는 서부식당이었다. 이른 점심 11시에 찾아갔는데 작은 시장 길바닥에서 할머니들이 노상으로 손수 기른 정이 가득한 농산물들을 팔고 계셨다. 방해되지 않게 조심조심 시속 1km로 지나 공영주차장에 수월하게 주차를 하였다. 시장 크기도 아주 작아서 3분도 안 걸려 식당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사장님이 주방 일을 한창하고 계셨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 하길래 아침부터 일하느라 배고파서 일찍 왔다고 너스레 떨면서 자리에 앉았다. 자리라곤 테이블이 딱 3개뿐. 이마저도 삶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일찍 와서 반찬을 만들어야 되니 좀 오래 기다려 달라 하셔서 얌전히 앉아서 할머니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식당을 두리번두리번 구경하였다.



 허명만 씨의 사인이 있길래 사진은 찍었건만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는 지금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숨어있는 어머니의 맛을 찾으셨다는데, 나이대를 고려하였을 때 나에게는 할머니의 맛을 찾은 것이 맞는 것 같다. 커다란 주전자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길래 물어보니 보리차라고 하셔서 한잔 호로록 마시니 나 때문에 서두르셨는지 곧 찬을 내어 주셨다. 밥솥에서 밥을 퍼주시는데 고봉밥을 담으면서 밥 더 퍼주신다길래 얼른 그 정도도 많다고 정중히 사양하였다.



 커다란 오봉에 옹기종기 반찬들과 밥, 찌개가 모여있는 것이 참 사이좋아 보였다. 그다음으로 후각으로 게의 풍미가 훅 들어왔다. 원래 대천해수욕장에서 게국지를 먹고 싶었는데 혼자 가서 게국지 소자를 3-4만 원 주기 아까워서 아쉽게 포기했건만 여기서 게국지에서 풍길법한 풍미를 느끼니 기분이 좋아지고 입안에 침이 가득 돌기 시작했다. 얼른 한 숟갈 후룩 맛보니 게국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해물맛이 가득한 된장찌개였다. 땡초가 들어있어서 그런지 맵싸한 맛이 시원하게 느껴졌는데 그때쯤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할머니: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지금까지 장사 준비 했슈~ 정신 없어 죽갔슈~ 시간이 왜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구만유~ 세수를 쫌 해야갔어~"


나:  "시간이 빨리가면 그만큼 시간을 잘 쓰고 계신거죠~"


할머니: "찌개는 짜지 않아유?"


나: "짜진 않고 저한텐 쫌 매운대요?"


할머니: "오이소박이 갓 무쳐서 맛있어유~ 많이 드시고 부족하시면 말혀요~"


맥락이 맞진 않지만 정이 담긴 몇 마디 나누고 할머니는 세수를 나는 식사를 계속 이어나갔다.




 오이소박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반찬이 거의 오늘 하신 것 같았다. 생선구이도 뜨겁게 김이 모락모락 겉은 바삭하고 살들은 야들야들 아주 맛있었다. 뼈째 오도독 다 씹어 먹을 수 있는 정도였고, 계란말이로 보이는 반찬도 할머니 스타일로 약간의 채소가 들어가서 무심하게 부쳐 낸 계란전에 가까웠다. 두부도 신경을 한 번 더 써주셔서 따뜻하게 프라이팬이 지져 주셔서 먹기 한층 더 편안하였다. 다른 반찬들도 특출난 맛은 없지만 부담 없이 말 그대로 편안한 맛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의 손맛은 잘 모르지만, 그 맛을 대리로 느낄 수 있었다.




 반찬들이 조연이라면 된장찌개는 주인공이었다. 앞서 게냄새가 그득하게 나는 향을 언급했다만, 맛도 일품이었다. 게는 어찌나 오래 고았는지 껍질이 야들야들 해질 정도였다. 그만큼 국물이 진하고 시원하였다. 특이한 것은 게 다리 관절인 줄 알았는데 먹어보니 새우를 먹기 좋게 토막을 내어 넣은 것이었다. 처음 보는 요리법이었다. 두부와 고추 파 같은 채소들도 투탁 투탁 어찌나 많이 들어있는지 두부를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아 오기가 생겨서 두부를 남김없이 다 먹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찌개 안에 고추를 잘못 먹어 매웠는데 먹다 보니 매운맛이 전혀 나지 않아 내 혀가 적응을 했는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적당히 매콤하게 시원한 국물에 연신 감탄을 하였다.



 오래간만에 나온 반찬을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어치우니 사장님께서 "배가 많이 고프셨나벼~ 밥 더 잡수시지~" 정겹게 말해주셔서 뱃속 가득 마음속 가득 포만감을 가득 채워 나왔다. 맛이 특출나지 않지만 각박한 현실에서 누군가에겐 어머니, 누군가에겐 할머니의 손맛을 부담 없이 소탈하게 즐길 수 있는 좋은 맛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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