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뮹재 Dec 24. 2021

대풍관

통영 굴 코스 맛집


요 근래 미세먼지 하나 없는 청명한 날씨가 며칠 이어졌다. 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문득 떠오르는 곳이 통영이었다. 몇 년 전 미세먼지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시기에 출근하면 늘 잿빛 하늘을 쳐다보며 기분이 우중충 해졌었다. 그러던 중 통영에 출장을 갈 기회가 생겨서 방문하였는데, 청명한 코발트색 하늘과 바다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코로나 이전) 폐 속 깊숙이까지 숨을 들이 마시는데 폐포가 적극적으로 혈액에 산소를 공급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몇 년이 지나 현재에도 통영은 여전할까. 씨에게도 내가 느낀 그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아침 일찍 간단한 채비를 하고 통영으로 향했다. 도로가 공사 중이어서 시냇물 흐르는 속도의 느낌으로 무사히 통영에 도착했는데 역시 그대로였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통영 홍보물을 접하게 되었는데 통영의 색을 코발트블루에 비유를 하길래 적극 공감하였다. 오전에 도착하여 해넘이까지 보고 만찬으로 여행을 포만감 가득 가진 채 마무리하기 위해 대풍관으로 향했다. 길 안내를 받고 도착하니 주차장이 만차여서 인근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오니 대기 인원이 엄청 많았다. 예약 키오스크에 전화번호를 남기니 36팀 정도 웨이팅이 있었다. 다행히 카톡 메시지로 내 순번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어서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옆 꿀빵 거리와 전통시장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실컷 구경을 한 시간 정도 했음에도 30-40분 더 기다려 입장할 수 있었다. 전화 예약이 가능하다면 예약을 해야겠고 그게 아니라면 일찍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손님들이 가득 차 있고 상당수의 종업원들이 부랴부랴 일하시는 모습이 흡사 주식시장, 전통시장을 보는 것 같았다. 다소 산만한 분위기였지만 손님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어느 정도 정해진 시스템처럼 유동적으로 주문과 서빙이 이어졌다. 곧바로 굴 요리로 상이 가득 채워졌다. 몇몇 굴 요리에 대한 맛 평가를 하자면..



생굴&반각

  가장 먼저 신선한 굴을 오롯이 느끼고 즐기기 위해서 생굴을 먹어 보았다. 시원한 식감에 입안에서 요리조리 물결치듯 장난하는 굴에 비린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아주 좋았다. 특유의 굴향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서 손님이 많아 재료 소진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져 신선한 굴이 제공되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레몬즙을 뿌리거나 초장이나 간장에 따로 찍어 먹지 않아도 신선한 바다의 짠맛이 간을 충분히 해주었다.



굴 무침

 다음으로 굴 무침을 먹어보았다. 식전 샐러드 느낌이랄까. 아삭한 채소와 달콤새콤 한 초장 그리고 말캉말캉한 굴의 조합이 괜찮았다. 밑반찬도 그렇고 간이 잘 되어있어서 굳이 흠을 꼽자면 반찬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낸 느낌이 났다랄까.  개성 있거나 독특한 맛은 아니지만 결코 맛없다고 말할 수 없는 보편적인 맛이었다.



굴전&굴튀김

 그리고 굴 전과 굴 튀김을 맛보았다. 씨의 철학이 음식은 나오자마자 뜨끈할 때 먹어야 된다는 것이다. 무슨 음식이든 포장을 해서 받아 차에 타면 부스럭부스럭하며 하나씩 꺼내 먹는 귀여운 습관이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튀김은 무조건 지금 먹어야 된다며 거의 반강제적으로 나에게 먹였다. 나는 굴 구이나 생 굴로 굴을 충분히 즐긴 다음에 심심풀이 간식 정도로 먹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먹고 나니 바로 먹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튀김이 기름에 풍덩 빠져 어찌나 잘 튀겨졌던지 기름은 흥건했지만 튀김옷의 바삭함과 오동통하게 익은 굴 안에 품고 있는 충분한 수분이 씹으면 씹을수록 잘 어우러져 풍미가 배가 되었다. 뭐든 튀기면 맛있다는 속설이 기정사실화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굴 전을 먹어보았는데, 이건 전보다는 거의 경단에 가까웠다. 어찌나 두툼한지 먹기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하나 먹어보니 걱정이 싹 사라졌다. 일단 두꺼운 외형에 비해서 부드럽고 촉촉해서 입안에서 잘 씹히고 목 넘김도 수월했다. 겉바속촉이라는 말로 표현이 끝날 정도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워낙 대량으로 만들어내니 아기자기 세밀하게 개성 있는 맛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먹어보면 맛있을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특히 굴 전을 워낙 튼실해서 양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을 싹 사라지게 하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요리였다. 식사 마지막까지 야금야금 먹어서 결국 남김없이 다 먹었다.



굴 구이

 어느덧 마지막으로 굴 구이를 언급하고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처음 가성비 고려했을 때 중간가격대의 B코스를 주문했지만 주변 자리에서 하나같이 금빛 양푼이에서 튼실한 굴을 꺼내 먹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역시나 한 단계 위인 A코스를 시켜야 나온다 길래 재빨리 A코스로 변경하였다. 껍질째 큼직한 굴들이 담겨서 부르스타에 찌듯이 열을 가해졌다. 종업원께서 몇 번 보시고는 하나 까주시면서 이제 먹어도 된다는 신호를 주셨고 목장갑을 경건하게 끼고 하나씩 신중히 가보았다. 그 안에는 오동통 큼지막한 굴이 날 좀 꺼내주세요 하며 얌전히 누워있었다. 얼마 전 대구에서 굴 구이를 먹은 적이 있는데, 그곳은 센 불에 굴을 구워 굴이 많이 쪼그라들어 있었던 반면 그것보다는 약한 불에 정해진 시간에 맞춰 구워서 그런지 흡사 굴 구이와 굴찜 중간값 정도 되었다. 한입 먹어보니 말해 무엇이었다. 다소 거리낌 한 느낌이 있는 물컹한 생굴의 식감을 한순간 탈바꿈해 주어 폭신한 식감이 아주 매력 졌었다. 멸치나 새우등 해산물은 끓이면 특유의 감칠맛 나는 육수를 내듯이 굴도 열을 가해주니 그 특유의 시원하고 풍미 깊은 육즙을 잘 머금고 있었다. 어찌 보면 맨 육수만 먹는 느낌에 심심한 감이 생기면 초장이나 고추냉이 등 갖은 소스에 찍어 먹으니 시종일관 심심하지 않았다. 통영 와서 굴 먹길 잘했다 생각 드는 순간이었다.

 먹다 보니 여기도 굴 저기도 굴 굴에 살짝 물려 사이다도 시켜서 같이 먹었는데 소주가 확실히 당겼다. 하지만 운전을 해야 되기 때문에 과감하게 술을 포기했다. 굴밥까지 야무지게 비벼 먹었는데 국 밥에는 기호성에 상관없이 참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참기름 맛만 나서 별로였다. 하지만 이미 뱃속 가득 만족감이 가득 차 있어서 불평불만 없이 자리에서 무거워진 몸을 가벼운 마음으로 들고 일어섰다. 계산할 때도 음료수는 서비스로 결제 금액에서 제외해 주셨다. 역시 박리다매로 장사하는 사람의 시원한 장사 수완이 조금은 부러웠다. 200번째 손님은 식사 무료로 시켜드리는 이벤트도 있었다. 그건 많이 부러웠다. 하지만 굴을 맛있게 먹었기에 돈이 아깝지 않았다. 통영에 여행 가는 지인들에게 추천해 줄 법한 그러한 식당이었다. 왜냐 실망하지는 않을 테니깐.



The end.

작가의 이전글 서부식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