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로컬 푸드 식당
주말이었다. 평택에 사는 친한 선배 집에 놀러 갔다. 첫날은 집에서 바비큐로 LA 갈비와 새우를 배 터지도록 배부르게 먹고, 둘째 날은 평택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아침에 재와 콩 양과 함께 산책을 하며 아직은 뜨거운 가을 햇살의 영향으로 시원한 물회로 결정했다. 선배가 재를 배려해 인터넷 검색으로 반려견 동반 가능한 물회 식당으로 찾아보았고 전화로도 확답을 받은 뒤 식당으로 향했다.
태풍 영향권 밖의 고기압 영향권이어서 그런지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쨍쨍 날씨가 좋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서해 바닷가에 위치한 식당으로 30분가량 운전해서 가보니 어촌의 정겨운 항구보다는 물류, 산업의 항구 느낌에 가까웠고 썰물이 빠져나가 뻘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삭막해 보였다.
도착해서 보니 정말 오래된 간판 큰 조기구이 집이었다.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날 것의 인테리어. 혹시 몰라 재를 컨넬 캐리어에 넣은 채로 들어가니 건물 내부와 가건물 형식으로 천장과 창문이 있는 외부가 이어져 있었고 외부에 사람들이 2-3팀 정도 조개구이를 먹고 있었다.
사장님에게 강아지가 있다니 직접적으로 강요하진 않지만 다른 손님들 눈치가 보이셨는지 내부에 자리를 잡아라고 추천해 주셨다.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인심 좋은 시골집이지만 제대로 케어 받을 순 없고 오롯이 본인이 강아지를 관리해야 되므로 반려동물 동반은 추천하지 않는다. 또 창밖 풍경이 시원한 바다 풍경이 아니고 테이블이나 의자 또한 편하지 않아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추천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물회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회와 조개로 화려하게 구성되어 있는 메뉴판 구석에 작게 물회 중 20,000원, 대 30,000원이 보였고 물어보니 이것은 회나 조개를 먹은 손님들이 추가로 시키는 메뉴이고 우리는 15,000원짜리 식사용 물회를 먹으라고 하셔서 2개 시켰다. 또 국수로 먹을지 밥으로 먹을지 결정하라길래 무슨 말인가 의아해서 둘 다 먹고 싶어 국수에 공깃밥을 추가해서 주문하였다.
입이 심심해지고 이 식당에 잘못 왔는가 가슴이 불안해질 즈음 때맞춰 애피타이저로 보이는 전과 김치가 나왔다. 전은 특별한 것 없이 딱 봐도 심심풀이 입가심용 정도로 보였고 맛을 보니 바삭하게 잘 구워져 고소하고 호박이 들어가 호박전의 맛에 가까웠다. 그러곤 김치를 맛봤는데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파김치인지 열무김치인지 맛보았는데 보기에는 삭아서 약간은 쉰 맛이 예상되어 보기만 해도 침이 고였는데 입에 넣자마자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쉰 맛은 전혀 없고 아주 잘 익어서 시원하고 아삭하며 간이 약간 짤 정도로 맛이 있었다. 그래서 전과 함께 먹으니 따로 간장에 찍어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서로 궁합이 잘 맞았다. 선배도 내 말을 듣고 김치를 맛보니 마찬가지로 놀라서 우리 둘이 느꼈던 이 집에 대한 의구심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오히려 주방장의 내공에 메인 메뉴인 물회가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되었다.
기대감에 한껏 기분이 고양되어 있을 때 물회가 나왔다. 따로 추가적인 반찬은 없고 물회와 국수사리만 나오는 걸로 봐서 이집 물회의 구성은 김치2종+전+물회+사리 인듯 했다. 국수사리의 양이 적당히 맛만 보는 정도의 양이 아니라 그냥 비빔국수로 식사할 정도로 풍족한 양이었다. 그래서 사장님이 국수로 먹을 건지 밥으로 먹을 건지 선택하라는 질문의 이유를 알았다. 아무튼 붉은색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초장 육수 베이스가 아니라 멍게에서 나온 물로 이루어진 육수의 비주얼이 또 하나의 문제를 제시하였다. 나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숟가락으로 순수한 육수 그대로 한입 맛보았는데 바다의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신선한 편이어서 비린내는 나지 않았지만 흡사 타액의 걸쭉한 식감과 비슷해 살짝 거부감이 생겼다. 아마 멍게에서 나온 물 때문에 그런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아 이제 본격적인 식사를 위해 국수사리를 양껏 넣고 양념을 골고루 비볐다. 소면이 푹 삶겨져 왕창 한입 입에 가져가도 부드럽게 술술 넘어갔다. 회도 큼직큼직하게 들어가 있어서 씹는 맛이 쏠쏠했는데 조금 더 작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큼직큼직이 다소 투박한 쪽에 가까워서 어떤 부분은 너무 두꺼워서 이가 약한 사람이 먹기에는 불편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전날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이 사이에 뭔가 끼어있어서 그런지 물회를 먹다 보니 회를 씹을 때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튼 나에게는 괜찮은 맛이었다. 선배는 여느 먹어 오던 초장 or 고추장 베이스의 새콤달콤한 물회가 아니어서 실망한 것 같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천편일률적인 것보다 맛은 뛰어나지 않지만 개성이 뚜렷한 음식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어 좋았다. 이런 나에게 선배가 이집 물회의 맛을 표현해 보라 하였다. 문득 든 나의 생각은 이 집의 물회는 뱃사람들이 오전에 열심히 땀 흘려 일을 하고 점심은 물회나 먹을까? 결정해서 가진 재료로 투박하게 만든 느낌으로 노동 뒤에 먹는 생계형 맛인 것 같다 하였고 선배도 공감해 주었다.
면을 후루룩 얼른 먹고 밥을 반 그릇 씩 말아서 먹는데 확실히 육수에서 바다 맛이 강하게 올라와 국물채 마시듯 먹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양념장에서 정성과 내공은 충분히 느껴졌다. 간간이 느껴지는 양념장의 맛은 그냥 고춧가루나 다진 마늘 간장 설탕 참기름으로 이루어진 갖은양념이 아니라 산초나 계피 같은 한국적 향신료의 맛이 은은하게 베어 있는 걸로 봐서 주인장님이 신경 쓰셔서 만든 것 같았다. 그렇게 세뇌 비슷하게 자기최면을 열심히 걸어가며 완국 하려고 했지만 멍게가 너무 생으로 들어있어서 멍게가 입안에 들어가면 뭉글뭉글한 식감과 강한 바다의 향으로 자기최면에서 틈틈이 깨어났다. 아마 씨는 한두 숟가락 먹고 못 먹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개인적으로 멍게 해삼은 기호식품이 아니다. 그래도 선배가 신경 써서 애견 동반이라고 찾은 집이었기에 열심히 먹었다. 국물은 도저히 다 못 먹고 남겼지만.
자리를 얼른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질 무렵 불행인지 다행인지 바로 옆 테이블에서 조개구이를 엄청 구우셨는데 처음에는 어디서 홍어를 먹는 줄 알았다. 시큼한 냄새에 선배에게 어디서 냄새 안 나냐니까 선배는 모르겠다 했지만 나의 개코에서는 점점 더 강하게 느껴졌고 숨을 100% 못 내 쉴 정도로 심해졌다. 보니깐 연탄불에 직화로 조개를 굽는데 일산화탄소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도저히 못 참을 정도여서 선배에게 나가자고 하였다. 나와서 보니 일하시는 분이 신선한 조개를 수족관에 넣은 걸 보니 이 집은 확실히 조개구이를 먹어야 되는 집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재방문 의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