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히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종교에 대한 단상

by 느린날들

요새 낮이 길어져서인지, 반복해서 늦은 시간에 잠에 들어서인지 평소에 무척 피로하다. 피로가 마일리지처럼 누적이 되는 것 같다. 일정 기간이 지나고 소멸되는 마일리지처럼 한 번씩 잠을 푹 자주어야 피로도 소멸될텐데, 반복되는 출근들과 되돌이켜보면 강행군이나 다를 바 없는 일정의 데이트,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젊음과 혈기가 가득한 대학가로 저녁에 수업을 가는 일들을 일상적으로 수행해온 나를 되돌아본다. 아마 유 씨는 더할 것이다. 장거리 운전이나 나보다 긴 근무시간, 체력적으로 강도 높은 수술과 신경쓰일 일들이 하나둘이 아닐 진료들까지, 감히 예측해본다.


종교는 없지만 불교든 기독교든 좋은 말씀은 가슴에 담아두고 산다. 스님이나 목사님이 해석하신 내용을 기반으로 생각하기보다 종교 그 자체의 그분들의 말씀을 나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즐긴다. 대단한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살아가는데 윤활유를 쳐주는 역할정도였다.


우리 엄마는 다-종교인이나 다를 바 없다. 절에 가면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좋은 터를 지나가면 본인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십자성호를 그리시며, 나에게는 늘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은 한 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문을 열어두신다며 나를, 달래신다. 특정 종교에 대한 커다란 불신이나 커다란 믿음 또한 없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신 일지 자기자신일지, 그 기도들과 그 묵념들에 대상은 있을지 무념하게 유추해보다가도 포용력 강한 소망의 크기를 가늠해보면 약간은 애틋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대한 것에 움직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트리거로 발전기를 굴리기도 하는 것이다. 다채로운 종교의 말씀들은 삶과 사랑, 사람으로 귀결되는 것 아닐까, 일맥상통한 것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대략 생각해본다. 고될 때만 찾게 되는 문구들이 어쩌면 나도 사소한 것들을 극복해내며 삶과 사랑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의 일은 어떨 땐 지치고 소모적이다. 그래도 사람이 살아내는 일이기에 순간을 찰나를 침을 꼴깍 삼키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해보는 일이다. 의도적으로 스페이스를 만들어 나를 지킨다. 부대껴 열받은 일들은 흐트러진 나의 마음을 다시 정리정돈하여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종교적 확언에 위로와 의지를 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다. 나의 몫을 어느정도 위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난 오히려 그 부분에 있어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익을수록 벼는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데, 무언가를 믿는다는 일은 사실은 내가 빈 깡통임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빈 깡통이 텅텅빈 소리만 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정교한 날을 괜시리 세워보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삶과 사람에 무력하여 인정하는 일로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는 일인 것이다.


지금 내가 정신 집중을 요하는 일은 나에 대해 이 모든 일들이, 이 모든 사람들의 일말의 관심으로부터 시발되었다는 것이다. 무념하게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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