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내리는 큐레이터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by 느린날들

나는 커피도 내리는 큐레이터다. 우리 갤러리는 일층은 카페, 이층은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층 갤러리에서 일층 카페 종이 흔들리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 처음에는 카페에 알바생이 있어서 내가 커피를 팔지 않아도 됐었다. 일이란 걸 해본 경력이 이개월 남짓이었던 그 친구는 카페에 손님이 영 없는 시간들을 버티지 못해 금방 그만 두었다. 그 친구를 뒤이어 일할 사람들을 구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사람이 쉽게 구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카페 인력이 공석이 되었다.


카페 업무가 익숙해진 것은 약 그 자리가 공석이 되고 일이개월 내외였다. 우리 갤러리 일층카페는 버튼식 커피머신을 사용하고 있다. 커피를 일일히 갈아서 추출하여 내리는 머신이었다면 시간이 좀 더 소요되었을지 모른다. 내가 마시는 내 커피 한 잔 정도는 아침에 호로록 뽑아서 마시기 때문에 커피를 파는 일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안 가서는 포스기 메뉴를 수정하는 방법을 유투브로 배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처음에 큐레이터 업무 외적으로 다른 잡일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속상해했다. 그러던 와중에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몇 번 반복되는 활자들과 누적된 페이지수, 흰색 표지 안에는 또다른 세상이 담겨져 있었다. 그 사람이 말하는 대다수의 것들을 명쾌하게 단번에 해석하지는 못했지만, 하나 배운 교훈이 있었다. 기회는 사람이 준다는 말이었다. 처음엔 무슨 말이야, 기회는 내가 만들어내는 거지, 라고 기회라는 개념을 창출의 영역으로 국한시켜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잘하면, 내가 잘나면 좋은 일은 늘 일어날 것이라고 한정지어 생각했다. 근데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채용되고 봉급이 올라가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나의 역량도 관건이긴 하지만 결국엔 상대방, 사람이 판단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결정하는 일이다. 내가 만들어온, 구성해온, 이끌어온 것들을 결국 판단하는 것은 다른 이였다.


그 책에서는 그런 말을 한다. 직장 상사의 시간을 단축시켜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단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작동해야한다고 했다. 윗 사람들은 다 보인다고 했다. 당장 나만 같아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어서 사람을 분류하기 마련인데, 나보다 연륜이 있으신 분들은 눈 감고도 보일 것 같다. 나의 잔꾀, 밍기적거림, 딴짓같은 것은 다 보이기 마련이다. 정갈하게 컴퓨터 검색기록을 지워본다.


처음에는 다른 업무들을 보는 것, 나랑 상관 없는 카페 일을 보는 것이 속상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그러려니 한다. 소규모의 직장이기도 하고, 하루라도 젊은 내가 더 움직이는 게 맞기도 하고, 잔잔바리 업무들을-업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잡일들-시키지 않으시려는 그 노력들이 보이기도 해서 귀찮은 일 쯤이야 내가 해도 괜찮다. 늘 카페 일이 들어오면 먼저 내려가보려고 하시는 직장 상사님들의 마음이 감사한 일이다. 그러면 어쩌다 한 번 귀가 밝은 내가 이층에서 일층의 종소리를 들을 때면 종종걸음으로 어서 내려가보는 것이다.


잡일을 깔끔하게 하는 것은 나의 인상을 임프레션 나에대한 느낌을 깔끔하게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좋게 보신 직장 상사분들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 내가 좋게 보였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하나의 물꼬가 트인 기분이 들어 무척 기쁘다. 신난 마음도 다시 한 번 정갈하게 다듬고 나홀로 맘 속에서 기뻐하는 일이다.결국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언젠가 기회의 문을 열어줄 것이라는 걸 요즘은 조금씩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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