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물감일까?

같은 캔버스 위, 우리라는 그림

by 느린날들

체감상 살이 쪘다. 집에 있는 체중계는 수명을 다한 지 오래다. 산틋한 발걸음인지 부은 다리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챈다. 몸이 붓고 살이 조금 찐 것 같다. 근래에 방심하고 식사마다 탄산이나 달달한 음료를 제일 뻔히 아는 나 자신을 속이며 마신 탓이다. 당이 떨어진다는 명목으로 갤러리에 자주 들어오는 빵과 과자들을 한입 씩 한 그 이유다. 이 또한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극명한 사실이었다.


몸의 변화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감각이 예민한 사람 이어서인 것 같다. 이층에 위치한 갤러리는 내부 공사를 했다. 여닫는 투명한 유리문을 설치했는데, 그 유리문을 열고 있으면 아래층에 위치한 카페의 문에 달린 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매번 듣는 것은 아니고, 바람이 흔든 것은 못 듣겠지만, 사람이 힘주어 문이 열리나 실험한 정도의 세기는 종종 들린다. 청각이 유난히 발달했을까?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 줏대만 강했는데 이제는 사회에서 좀 굴렀다고 고집을 부릴 때에도 은근하게 연출하는 사람. 이렇게 묘사하니 꽤나 변태 같은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럴걸? 누구나 본인이 진실되게 욕망하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태생도 그렇고 외동딸이라는 환경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자라는 동안 대단한 일들은 없었지만 손에 뻗으면 늘 원하는 것이 있었다. 몸을 감각하는 방식, 나를 인지하는 방식은 사람을 읽는 방법에도 대입이 되었다.


심성이 착하기야 하다만 어떨 땐 모난 나의 마음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 부모님이 그렇고 귀여운 나의 애인이 또 그렇다. 함께하고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을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시간이 된다. 마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쩌면 유 씨와의 만남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냥 퍼뜩 그런 생각이 든다. 길고 긴 겨울의 끝에는 귀여운 봄이 기다리고 있다고. 나의 사계절은, 서른은 겨울을 지나 만연한 봄이 되었다.


그 사람과 본 밤 벚꽃은 쪽빛 하늘과 유난히도 잘 어우러졌던 것만 같다. 유 씨의 손을 잡고 끌다시피 지나가던 행인에게 다가가서 굳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용기 내어 말했던 일, 또 다른 날에는 튤립 정원에서 먼저 다른 행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는 이내 부끄러워 발만 동동이다 금세 핸드폰을 뺴앗은 일, 같이 있으면 웃음이 나는 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일들은 그림을 그릴 때 옅게 채색을 여러 번 하는 일과 같다.


유명한 사주가는 우리에게 앞으로 78년 동안 행복할 것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은근하게도 믿어버리고 싶은 말이었다. 우리라는 사람은 아크릴일까, 분채 일까와도 같은 사색과 복기, 사유를 즐기다가도 번뜩 정신이 들어 현생에 복귀하는 것이다. 생각의 발산은 늘 즐겁다. 우리는 아마도 캔버스 위로 유화라면 두터운 마띠에르가 생길 때까지, 동양화라면 한지에 자리하는 분채가 띡한 컬러가 될 때까지 함께 있을 것이다. 그 사람과 나의 생각의 순서는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어떠한 재료더라도 같은 재료일 거라고 감히 단정 지어 말해보는 것이다.


혼합재료도, 꼴라쥬도 같은 캔버스에 그리면 작품이다. 굳이비 따지고 있는 내가 퍽 웃기다. 우리는 관계를 규정지은 이래로 같은 캔버스에 조금씩 그림을 그려나가는 중이다. 78년 정도 후면 완성될 그림을. 그 길고도 긴 기간에 아름답고 두터워질 작품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젯소부터 물에 개며 정갈한 마음으로 붓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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