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복잡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의 시계

by 느린날들

아침에 일어나 어제저녁에 마시다 남은 300미리짜리 생수를 들이켰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헬스장에 갔다. 시끄러운 머릿속 볼륨을 좀 줄여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운동을 가야 그날 저녁에 피로한 채로 잠에 잘 든다. 얼굴에 포 뜨듯이 놓았던 주사자국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릴 수는 없었다. 삼십 분을 걸었다가, 뛰었다.


뛰는 동안에는 트레드밀에 설치된 티비를 켜지 않는다. 운동에 집중이 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쳇바퀴를 뛰는 햄스터가 된 기분이어서 티비는 틀지 않는다. 대신 노래를 듣는다. 플레이리스트 제목은 ‘신날때’이다. 이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때는 신났을 때 듣기보다 신나고 싶을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이다. 주로 해외 힙합 노래들이나 블랙핑크 노래들이 들어있다. 몰랐는데 나는 블랙핑크 노래를 꽤나 좋아한다.


대체로 리듬감이 있는 노래를 들으면서 빠르게 걷기 3분, 숨차게 2분을 뛴다. 오래 뛰지는 않는다. 몇 번의 인터벌을 지내면 30분이 된다. 그러면 미련 없이 트레드밀에서 내려온다. 이제는 계단을 탈 차례다. 지하 2층, 지상 12층 토탈 14층을 두 계단씩 천천히 올라온다. 어느 날은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과 11층에서 계단을 타고 가면서 마주한 일이 있었다. 못 본 척하고 12층까지 올라간다.


계획대로라면 씻고 점심을 먹고, 약속한 전시회에 가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늘어졌다. 머리가 복잡한 탓이었다. 뛰고 온 김에 머릿속 노이즈까지 줄여보려고 했는데, 도움은 됐을지 몰라도 여전히 시끄러웠다. 이모저모를 못할 것 같아서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는 노트북을 켰다.


다 내가 조급한 탓이었다. 모든 일에는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인내심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어서 무언가를 넘기고 싶고 달성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일이 이토록 힘든 일이라는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닫는다. 나는 늘 내가 늦었다고 생각해 왔다. 되돌이켜보면 학업도, 돈을 버는 일도, 무언가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소요가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한참을 물장구를 치고 나서 한 차례 크게 도약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인생에는 나의 시계가 있는 법인데, 자꾸만 휩쓸려서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내가 바랐던 것들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 내 일,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재정립해본다.


나는 아기를 낳고도 일에 복귀하고 싶다. 전업주부의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시간이 많으면 소비를 하게 되고, 소비보다는 생산의 영역에서 삶을 꾸려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내가 만든 것들을 좋아라 한다. 내가 만든 상황과 나의 작업결과물, 내가 쓴 글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늘 삶은 여러 가지로 에너지가 분산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는 애기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애기를 놓고도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을 만들어두고 싶다.


아기를 낳으면 본질적으로 경력이 단절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디에 재취업을 하기보다 내가 일자리를 창출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계획하는 어떠한 일에도 이런 구조들이 다 포함된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다만 그 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외로워서 결혼이 하고 싶다기보다, 그리고 실제로 나이 먹어서 혼자면 외로울 거 같기도 하고, 같이 할 팀이 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족을 꾸리는 행복을 나도 알고 싶다. 나는 나대로 발전기를 굴리고 그걸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를 누르는 사람보다 내가 동동대고 이모저모 하다가도 지칠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늘 입이 닳듯이 얘기했던 그릇이 큰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생각을 바꿨다. 늘 무언가를 달성하듯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비하인드에는 동동거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먹지 않기로 했다. 되면 좋고 안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해야 내가 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되면 좋고 그렇게 될 거지만 안돼도 어쩔 수 없다. 최선은 다 해야겠지만, 거기까지가 나의 롤이다. 운이다. 진인사대천명이다. 이게 정말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인지 다시 정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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