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접을 잘 부리는 성격 탓에 이런 글도 적어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박할 때는 글을 적는다. 요새는 상황과 여건이 유순해져서 절박할 일이 많지 않았다.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재정비하고 싶을 때에는 글을 적는 것이 제일이다.
요즘의 나는 어떨까?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나의 중심축은 어디일까, 논문을 한참을 적다가도 투자공부를 멈추지 않다가도 문득 드는 생각이다. 얼마 전엔 시골에서 삼촌이 올라오셨다. 큰 병원에 가보라는 지역병원의 의사 선생님 말씀에 서울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첫날은 유난을 떤다고 나가서 잤다. 주말에는 대구에 내려갔다. 대학원 엠티 행사에 참석하고자였다. 그 사이 삼촌은 병원에 다녀오셨다.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하다가 수술을 할지, 수술을 바로 해야 하는 상황인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당분간은 병실이 나기까지 서울 우리 집에서 지내실 것 같다.
어렸을 때의 삼촌의 모습은 몸만 큰 장난꾸러기였다. 늘 수줍어하던 소녀 같은 나에게 야야, 하고 장난을 치며 친가에서 제일 친밀하게 지냈던 윗세대였다. 고대병원이 제일 일찍 입원할 수 있다고 했고, ebs 명의에 방영된 의사 선생님도 계시다고 했다. 장난꾸러기 같은 삼촌이 풀이 죽어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늘 삼촌을 바라보는 열 살짜리 소녀였던 나도 풀이 죽었다.
요리를 기깔나게 하지는 못해서 고모가 음식을 좀 갖다 주시기로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고기나 이런 것들을 해동해서 구워주는 일 밖에는 없을 것 같은데, 같이 지내는 일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촌은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반복되는 항암치료와 주사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요새는 자꾸 꿈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며칠 전 꿈을 꾼 내용이다.
꿈에서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나와서 손을 잡아주었는데 그 손이 너무 작아서 엄마손 같지가 않았다
엄마 보고 싶었어 하니,
또 속았니 하고 어떤 할머니가 괴롭혔다
자꾸 꿈에서 나를 괴롭히는 할머니가 나타난다. 나는 할머니에게 내버릇하지 못하는 화도 내보고,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도 해본다. 논문을 쓰는 일이 일을 쉬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동아줄과 같다고 생각하는데 은연중에 스트레스로 다가왔을까? 그 할머니가 참 밉다.
교수님께서 논문을 쓰면 주변에 스트레스를 흘리고 다니는 거나 다를 바 없다고 하셨는데 진짜 그런 상황인 걸까,? 논문을 쓰는 것 자체, 쓰기 위한 텍스트들을 정독하는 것 자체는 늘 나에게 있어서 힐링요법이나 다를 바 없다. 나를 채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년 반을 호로록 대학원을 다녔지만, 졸업하기 전에 내가 이거 하나는 이해하고 간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어쨌든 창작하는 것이니까 쓰면서 토할 것 같을 때도 종종 있지만.. 그래도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야외에서 4km, 걷고 뛰었다. 바레는 취소하였다. 운동하는 느낌이 나지 않아서다. 바를 잡는 일은 우아하고 고상하지만 땀이 전혀 나지 않는다. 매트 필라테스는 곡소리가 넘친다. 적합한 운동이다.
요즘에는 좋아하는 팝송에 맞추어 후렴구나 해서 플랭크를 하는 것을 촬영하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작년에 친했던 친구와 함께 사주를 보니 2025년도에 내가 유명해질 거라고 했다. 플랭크를 하는 영상을 올리면 여간 관종으로 보일 것이 아닐 텐데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유명해질 상인가,
요 며칠 비가 왔다. 낙엽이 가을 낙엽만이 낙엽이 아닌 것일까? 러닝 하는 공원에 비에 젖은 낙엽들이 바닥에 천치 널려있어서 발을 조심히 내딛는다. 회복의 과정은 생각보다 순탄하다. 논문도 발산하고 있고, 머리에 열이 오를 때에는 몸을 움직이면 그만이다. 내가 잘해왔던 것은 필터링을 거는 것이었는데, 레이어가 자꾸 단층으로 겹을 벗어내는 일을 조심해야겠다고 침을 꼴깍 삼키며 단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