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일을 쉰 지 2개월이 되지 않아 몸이 근질근질해 재취업을 하였다. 근래의 밤들은 짧았고, 근래의 낮들은 길었다.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 적을 생각은 아니다. 그저 아침의 일기를 적듯이 무엇이든 적어 내리려고 할 것이다.
쉬는 것도 적성에 맞아야 하는 것 같다. 일이 없으니까 없는 대로 고됐다. 논문도 쓰는 둥 마는 둥 했고, 그저 그 시간들을 채워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은 조정 중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한 차례의 일정 기간 조정을 받고 나면 퀀텀점프를 해왔다. 지금도 그 2개월이, 아니 어쩌면 그 전 직장에서의 물장구와 같았던 기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남과 비교해 보았을 때 미약한 존재다. 하지만 나를 우선으로 두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무엇이든 흘려보내고자 하는 일이다. 미약한 내 인생, 남이 챙겨주지 않는다. 나 자신을 잘 살펴야 남도 살필 수 있는 법이다.
요새의 낮들은 긴장 투성이다. 공간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당황하지 않은 척하느라 무척 애를 많이 쓴다. 더 이상 커피는 팔지 않는다. 그저 큐레이터 본업에 집중하고 있다. 더 이상 부수적인 것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얼마 전엔 재밌는 일이 있었다. 치과에 가서 레진을 때웠는데, 하필이면 앞니였고, 하필이면 치내치-치아 안에 치아가 있는-상황이었다. 나이 지긋이 되어 보이는 치과의사 분은 맨손으로 내 잇몸을 동물니 보듯이 우아래로 잡고 흔들었다. 그래 뭐, 그 나이대에 이런 치과를 하려면 오랜 기간 익숙하시겠지 싶다가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구강세균 교환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웃기고 뜬금없지만 오랜 기간 같은 일을 하는 상상을 한다. 그때쯤이면 나도 작품을 보고 유연한 대처를 할까? 새로이 들어간 갤러리에서는 미술대학원 수업시간에 배운 작가의 작품을 다룬다. 하얀, 프래자일한 고무장갑을 끼고 작품을 만진다. 내가 00 선생님 작품을 만지고 있구나, 인지한 순간에는 어떠한 놀라움보다도 신기함이 앞섰다. 그동안 물장구를 친 것이 헛된 일은 아니구나, 재미지구나 싶다.
뭐, 장갑을 끼지 않고 대충 작품을 핸들링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었고, 그저 그 치과의사의 능숙함이 부러울 뿐이었다. 과정을 즐거이 작품에 유연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