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노트북을 켜본다. 일을 하고 지낸 지는 이제 약 한 달 정도 되었다. 뻣뻣하기만 했던 몸이 조금은 녹는 것을 느낀다. 아침에 적던 일기들도, 쥐어짜 내던 논문들도 잠시 멈춤 상태이지만 지금 이자체로도 현재에 충실하다고 느낀다. 퇴근 이후에 시간들을 채워보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약 두세 달 전에 종이 신문과 함께 끊어둔 책 구독 서비스를 놀리기 싫어서였다.
근데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소설이었는데, 몇 자 읽지 않아서 눈물이 흘러버렸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소진이 된 상황에서 눈물까지 흘리려니까 영 고된 것이 아니었다. 뒷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녹초를 넘어 해초가 된 내 몸으로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버스의 뒷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보면서 울음을 참는 내 모습이 사연 있어 보일까 퍽 웃음도 났다.
아침에는 굳이비 주문해 둔 종이신문은 넣어두고, 폰으로 동일하게 스캔이 된 어플 속 신문을 클릭한다. 그게 지금의 내 유일히 놓지 못하는 루틴이다. 일을 하지 않았을 적에 가졌던 열댓 가지 루틴들, 하루를 채웠던 습관들이 미약하게 잔존한다. 이제는 하루를 채우려 부단히도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귀가하면 발목 밑으로 감각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자체로도 만족스럽다.
세상은 내가 썼던 두 권의 책처럼 절절하거나 슬프지 않아도 그만이다. 생각보다 삶은 단조롭고, 드라이하고, 유추 가능하다. 또 어쩔 때에는 변주 가득하고, 한 치 앞도 예측 불가능하지만 대략적인 것은 우리가 약속하고 살 수 있다. 그 대략적인 것들을 하루하루 메워가는 것이 지금 내 발목 밑의 아림과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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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최근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는 제일 쉬운 방법은 사진첩을 보는 일이다. 나는 이 말을 라디오에서 줏어듣고 흘려보내지 못하고 있다. 가끔씩 계절이 바뀔 때 즈음마다 생각이 나는 말이다. 괜스레 사진첩 한 번 보고, 내 계절을 가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