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살아내기

by 느린날들

또 며칠, 지지부진한 날들을 보냈다. 휴일에 출근한 선배는 점심을 또 걸렀다. 더 이상 어떠한 것도 마음에 동요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어떠한 일도 그렇다. 배우들은 내 앞에서 나를 감싸고 노래를 부른다. 손으로는 입을 막고 있지만, 어디서 본 듯한 재롱에 커다란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그저 나는 기계적으로 놀란 척을 하고, 이 사람들 또한 기계처럼 나의 놀란 감정을 즐기는 듯한 액션을 취한다.


나는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였다. 세부전공은 연출로 영화를 한 편 연출하고 졸업하였지만, 당시 입시의 100점들과 함께 학부 생활을 하였다. 이 정도 끼는 주변에 흘러넘치던 것들이었다. 공연을 관람하다가 잠시 쉴 수 있는바에는 다 회차 관람자나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유희를 일로써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마 나 홀로였을 것이다.


공연에 커다란 감흥을 갖지 못하는 나는 경험에 회의적이다. 우연하게 옛 애인을 마주한다 할 지라도 심장이 일렁이지 않는다. 더 이상 슬프거나 설레지 못한다. 어떠한 것에도 동요할 수 없는 내가 되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약 일여 년 전의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다. 일이 바빠, 처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여서 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바툰 데드라인에 맞추어 업무를 처리하는 나의 모습. 어떠한 것을 첨예하게 살펴보는 나의 모습, 필요할 적에 친절한 나의 모습과 같은 것들은 내가 꿈꿔오고 바라왔던 것들이었다.


일에 체여 많은 것들을 놓치고 지냈다.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에는 다양한 이면이 있었다. 사랑하고 애정하는 애인에게는 모질고 투박한 말들을 내뱉었고, 그나마 생활을 같이 하는 아버지와는 마주할 일조차 없었다. 아버지, 가끔 아침을 차려주신다. 전쟁 같던 그의 30여 년의 직장 생활이 미온할 정도로 살림을 잘 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끔 넌더리가 난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다 잘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싶어서일 것이다.


오늘은 나의 귀여운 연인에게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간단하고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회신이 왔다.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들에 굳이 엄마 보고 싶다, 정작 당사자에게는 닿지 않을 말을 내뱉었다. 며칠 전 회식에서는 취미가 뭐냐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이렇게 당사자들에게 전하지 못할 말들을 글로써 적어내리는 것이 내 취미다.


엄마가 부질없이 보고 싶다. 만나고 마주하고 또 신경질을 낼 것을 알아도 보고 싶은 신기한 유일한 사람이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 나이 드시도록 고생을 하시는지는 글쎄, 하나님은 아실까. 무교에 가까운 내가 감히 염두에 본다.


혼자인 것이 지겹도록 익숙해졌다. 우리 세 가족은 각자 하루를 살아내기 바쁘고, 연인 또한 그 위치에서 몫을 다 해내는 것이 기특할 정도이다. 나만 잘하면 돼, 나만. 수많은 다짐들이 켜켜이 쌓여 가슴 딥다운 제일 밑에 있는 나의 마음의 방의 불을 차단하려고 해봐도 삐져나오는 창문 틈 새, 실낱같은 외로움이 아무도 속이지 못한다.


지겹도록 살아내야 했던 일들이었다. 모르겠다, 현실의 나는 글을 떠난 나는 어쩌면 꾀를 부리고 있을 사람일지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그래 부진한 사람일지 모른다. 하루에 소모할 수 있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고, 나는 강강강강 대신 페이스 조절을 선택하였다. 그게 미지근한 하루들을 살아낼 나의 꿀팁이다. 치고 빠지기,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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