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취사선택

by 느린날들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기도하며-무슨 일이라고 하면 좋은 일을 말한다-갈 곳도 없으면서 외모를 가꾸었다. 한편으로는 머릿속에서 늘 가던 카페에서 좋은 일이 많이 생겼던 것을 상기하면서 그 카페에 가면 좋은 일이 또 생길까와 같은 것들을 상상했다.


우선 다이어리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SNS를 보다가 다이어리를 싸게 파는 곳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다이어리를 실제로 구매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당분간은 글을 쓰지 않았다. 했던 얘기 반복이라는 내 글을 읽을 사람이 있을까, 나조차도 복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잠시 펜과 노트를 멀리했다. 글을 쓰는 일은 안개가 낀 상태에 라이트를 비추는 일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 라이트를 계속해서 바라보면 눈이 피로해지는 일과 동일하다. 글쓰기는 나의 문제 상황들을 분명하게 해 줄 수 있는 빛과 같은 도구이지만, 무엇이든 과해서 좋을 것은 없다. 대략 이쯤으로 설명해 둔다.


복잡한 마음들이 한차례 머릿속에서 소동을 치르고 나서 정신을 차려 폰에 울린 메일 알람을 들어가 보았다. 내가 원해서 지원한 곳에서 면접에 참여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메일이 왔다.


미소가 절로 났다. 어쩌면 미소를 넘어 싱글벙글한 웃음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광대와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난했던 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일정은 꽤 뒤였다. 그래도 좋았다. 허투루 시간을 보냈다는 아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 날들을 또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Writing a journal. 영어학원에서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 내가 했던 대답이었다. 막상 일기장 하나 꾸준히 쓰는 것이 없는 것 같아 하나 장만하러 가는 길에 생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북촌방향의 성준의 독백이 생각난다. 수많은 우연들이 그물을 이뤄 한 가지의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의 내 모습과 겹쳐 보인다. 나는 이 하나의 사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작동했을 거라고 단순화하여 그 사유들을 취사선택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결론 내리고 싶지는 않다.


면접을 앞두고 있는 내 모습처럼 상황과 여건을 개방해두고 싶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굳건하게 답을 내리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놓아주고 싶다. 이 일기장이 마음에 든다. 남은 백지의 페이지들이 나 같아서, 지금이 마음에 든다. 마치 나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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