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러 가면서 나는 혼자 씩씩거리고 있었어. 대놓고 부장을 상대로 따지지 못했던 것이 분했지. 온갖 생각이 악머구리 끓듯 머릿속을 휘저었어. 부장 놈을 어떻게 하지. 대놓고 따질 것을 그랬나. 아니냐. 부장은 무식한 놈이야. 고등학교도 가기 싫다고 하는 걸 아버지가 억지로 보냈다고 하니까. 나이라도 적으면 한 대 두들겨 패고 싶네, 이거.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어. 생계 때문이었어. 한 번의 화를 참지 못해 폭력을 행사했다가 일을 덜컥 놓을 처지가 아니었거든.
나이라는 것도 그래. 나이가 몇 살 위이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었어. 부장은 이를테면 고참이었고, 그가 아니면 MK주방의 일은 거의 마비에 이른다고 할 정도였어. 그런 부장에게 대든다면 그건 제 입으로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지. 나 저런 싸가지 없는 새끼와는 일 안 합니다. 어디선가 부장이 사장에게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본인 말에 의하면 부장은 7년 전 마누라와 헤어져 지금은 혼자였어. 정육점을 하면서 젊은 나이에 많은 돈을 벌어 해운대에 아파트를 사고 건물도 샀지. 형제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어.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지. 돈을 벌어도 주위 사람들은 돌아본다고 말이지. 그러면서 사회봉사를 하는 모임에 다니며 유력한 인사들을 만나기도 했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부장은 더 이상 힘들고 어려운 정육점 일에서 손을 떼고 싶어 했어. 정육점 일이라는 게 보기에는 그저 그렇게 보여도 일이 많을 때는 새벽부터 일어나 힘들게 일해야 했거든. 부인이 말리지 않았냐고? 물론 말렸을 거야. 하지만 부장은 더 이상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넘긴 부인의 말을 들을 처지가 아니었어. 그래서 인생 초반 끗발은 개끗발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힘들지 않게 여유 부리며 살아도 될 처지가 된 거지. 그랜저를 몰고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닐 형편이 된 거지.
결국 부장은 부인이 그렇게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해운대에 고급 살롱을 차렸어. 아마 좋은 목을 잡아서 했으니 세가 비싼 곳이었을 거야. 한동안 살롱은 잘 되었어.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이 문제였지만 부장은 잘 해냈어.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았지.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부장은 아주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알아냈어. 굳이 힘들게 일하지 않고도 하룻밤에 수천의 돈을 버는 곳을 말이지. 도박에 손을 댄 거지. 이후의 일은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며칠씩 씻지 않아 꾀죄죄한 얼굴로, 버지니아라는 외국 담배를 입에 물고, 한숨이나 비탄과 더불어 뿜어내는 연기로 가득한 방. 꼭 강원랜드 부근에서 일어난 일 같지만 그때는 강원랜드가 생기기도 전이야.
머지않아 불행한 일이 일어났어. 부장은 아파트 하나만을 겨우 부인에게, 위장이혼으로 넘겨주고 개털이 되었어. 그동안 부장에게 손을 벌렸던 형제나 친구들에게 제발 한 번만 도와달라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누구도 그럴 만한 처지가 아니었거나 외면해 버렸어. 손을 벌리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중에, 좋은 때를 만나 성공해서 그것을 나누어 줄 정도가 되기란 로또에 1등으로 당선되는 것만큼 어렵거든.
그때가 아마 7년 전 일일 거야. 이후 부장은 거의 폐인이 되었다가 죽기에는 아직 젊고, 다시 과거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을 거야. 이대로 죽으려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거지.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하잖아. 그중에 두 번이 지나갔다 치고 어쩌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기회가 올 줄 모르잖아. 90년대에 고급 아파트에 건물, 정육점, 그랜저에 아이들을 태우고 곳곳을 다녔던 시절. 나중에야 털어놓았지만, 부인 몰래 애인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다가 들켜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추억은 추억이었어.
내가 부장이라고 해도 수시로 그 시절이 생각나 견딜 수 없었을 거야. 꼭 꿈처럼 지나가 버린 시간.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돌아갔겠지. 그러나 세월은 돌이키기 어려워. 우주선은 타고 지구를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와도, 모조리 바뀐 세포를 과거의 것으로 교환한다고 해도. 아니, 죽은 사람을 납골당에서 꺼내 살려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지.
부장은 체구는 작았지만 깡다구가 있었어. 타고난 손재주나 일머리도 있고. 그에게 딱 맞는 곳이 MK주방이었어. 면접하던 날 부장이 사장에게 내걸었던 조건이란 이런 것이었어.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그날 일한 것을 그날 반만 주십시오, 라고 했어. 이 말에 사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어. 미리 가불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그날 이후 부장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빼고는 늘 중고주방에 나와 있었어. 철거를 하고 수리를 하러 다녔지. 그가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 아마 내가 거기 들어가고 1년이 지났을 무렵에야 본인 명의 통장을 만들었으니까. 술에 취해 하루를 견디어 냈지만 박기사와 잡담하면서 했던, 매일 고급 술집을 다닌다는 말은 허풍이었을 거야. 박기사에게 지고 싶지 않아 그랬지, 그럴 만한 돈도 없었을 거야. 나중에 우연히 알고 보니 그는 매일 술을 마시면서도, 하나 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보험을 들어놓았고, 자신을 위해서도 연금보험이나 생명보험을 들어놓았어. 아마 보험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거야. 아무튼 부장은 여기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어. 그가 아니면 MK주방이 돌아간다고 할 수 없었어. 예순다섯 살인 박기사는 늘 부장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고, 사장이나 어니스트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