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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Sep 08. 2024

나의 공방일지 11

 - 전라도 놈인 갑지. 경상도 사람은 안 그래!

  아니 그러니까 나는 자신이 전라도 놈이 아니라고 한 적은 없었어. 그렇지만 부장의 말이 마음에 거슬렸지. 내 장인이나 장모님도 경상도 태생인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나를 전라도 놈이라고 말한 적은 없었어. 하긴 뭐 부장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일 수도 있어. 무의식적으로 하는 욕지거리였으니까. 그것을 가지고 싸울 수는 없었고. 모른 척하고 지나갈까. 전라도 놈이 아닌 것처럼 위장을 하고. 그런데 나는 이미 사람들에게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을 밝혔어. 나이가 오십을 넘겼는데 더 이상 고향을 숨기고 경상도 땅에서 살기 싫었거든. 차라리 고향을 밝히고 박해나 질시를 받는 게 나으리라 싶었던 것인지 모르지. 

  경상도에 사는 동안 이런 일은 자주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한 번씩 일어났어. 섞여 사는 동안 그들은 내가 전라도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것이지. 전라도 깽깽이 새끼들. 내가 그 욕에 인상이 찌푸려졌는지 모르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거나. 그러나 나는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문제 삼지도 않았어. 적어도 경상도에 살려면 그 정도는 감안하고 살아야 했으니까. 그 뒤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냐고? 아마 일어났을 거야. 다시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었는지. 

  어쩌면 전라도 사람의 자존심도 없느냐고 책하기는 했어. 그러나 경상도에 살고 있는 남자가 전라도 명예를 걸고 싸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기는 했어. 고향에 살 때에도 다른 동네 사는 녀석이 혼자 우리 동네 앞을 지나면 불러서 두들겨 패고, 반장 선거할 때는 같은 동네 아이들끼리 뭉치는 게 다반사였으니까. 반일감정이라는 것은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가 만들어 낸 것이니 당연할 수 있다 싶지만 같은 나라에 살면서 지역을 나누어 패싸움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조선시대 선현들이 보셔도 소인배의 행태라고 했을 게 분명해. 이번에 사달이 난 것은 재활용 센터를 옆에 두고 친하게 지내던 남자가 부산 MK주방에 작업대를 하나 배달시킨 바람에 생겼어.

   그날 박기사는 분명 이렇게 말했어.

  - 내가 배달을 갔는데 재활용센타 사장이 옆집 중국집 사장 욕을 하더라고. 나쁜 놈이라고. 평소에 지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고철값도 안 받고 주었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말이야 하면서. 처음에는 그 사람이 뭐 때문에 그런가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드라고. …지가 중국집을 하고 있으니, 자루가 긴 국자가 나오면 주고, 숟가락이나 젓가락이 나오면 주고 했는데, 옆에 있는 형님네 가게에서 작업대 하나 사주지 않은가 말이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쓰기는 못 쓰지.

  6년째 MK주방에서 일하는 왕고참, 쉰다섯 살의 부장이 기어코 한마디 했어. 평소에는 입에 밴드를 붙인 것처럼 말이 없다가도 일만 시작하면 잔소리하지 못해 입이 근질거리는 부장이 말이지. 

  - 전라도 놈인갑지 뭐. 경상도 사람은 안 그래.

  이 말에 다른 사람들은 말이 없었어. 셋 다 경상도 사람이라 그랬을까. 그러나 나는 망치로 솥뚜껑을 때렸을 때 나는 소리를 머릿속에서 듣고 멍해졌어.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일본인에게 나라를 빼앗긴 심정이 이러했을까. 이승만에게 죽은 조봉암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박정희에게 죽은 최종길 교수가 그랬을까. 하늘이 무너져 세상이 새까매진 멘붕 상태였지. 이건 전라도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 전에 분명히 사람들 앞에서 내 고향이 성원이라고 했는데, 부장이 잠시 잊었단 말인가.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 이런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시 이 인간이 일부러 나를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주정뱅이 자식이 말이야. 

  나는 이십 대부터 경상도에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어. 이렇게 대놓고 욕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어. 아니야, 나를 겨냥해서 하는 게 아니야.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뒤에서 나를 욕하던 녀석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이건 아닐 거야. 그냥 진정성 없이 뭉뚱그려서 하는 거야. 

  …아니, 사실일 수도 있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생각이 그칠 줄 몰랐지. 그것이 내 아킬레스건인 것처럼. 간혹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라도 욕을 하는 경상도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어. 나는 처음에는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 사람처럼 확신을 갖지 못했고, 시간이 가면서 나와 상관없지만 나와 관련된 것을 붙들고 하는 욕임을 확신하게 되었지. 그러나 개인적인 적대감과 다른 집단적인 적대감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몰랐어. 게다가 개별적으로 발산되는 사소한 공격에 거의 무방비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나는 그들끼리 전라도 욕을 하면 드러내놓고 사과를 요구하지는 못했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나는 전라도 사람이 아닌 것처럼 모른 체 하는 거였어. 유대인이, 주변에 사는 독일인이나 게슈타포 앞에서 그래야 했던 것처럼. 아니야, 잠깐. 그들은 어쩌면 내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전라도 욕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맞아, 그것을 즐긴 거였어. 내가 모른 체 할 줄 아니까. 아니 달려들면 한 대 패줄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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