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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Sep 15. 2024

나의 공방일지 12

 내 말투는 누가 들어도 이상했어. 강원도인 같기도 하고 이북 사람 같기도 하고. 그간 나는 부끄럽지만,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살았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이리저리 흔들리던 사십을 살짝 넘기고 중반 이후부터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던 거 같아. 

  스스로 전라도 사람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얼마나 나쁜 짓인가 생각하기 시작했지. 조센징이나 유대인임을 스스로 밝히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와 같았을까. 일부러 고향 마을, 언어를 속이는 것이 고향에 대한 배반인 것 같기도 했고. 

  어느 모로 보나 전라도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고, 이것이 내내 나를 고통스럽게 했어. 뭔가 마음이 껄쩍지근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왜 내 고향을 말하지 못한 자가 되었을까.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나는 고향을 잃고 세상을 헤매는 자인가.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지. 마치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길동이처럼. 

  들리는 말도 나를 슬프게 했지. 전라도 놈들은 남의 등쳐먹기 좋아하고, 배신 잘한다, 사회 나가서 전라도 출신들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등등. 그런데 이런 일이 경상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거였어. 경상도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수도권에서만 자랐음에도 그런 소리를 어른들에게 종종 들어온 사람들의 증언이 있거든. 어떤 남자의 얘기야. 3년 가까이 사귀던 여자 친구를 바래다주고 돌아서던 순간, 그녀의 아버지와 마주쳤어. 놀란 남자가 인사를 하자, 그녀의 아버지가 내뱉은 첫마디가 뭔지 알아? 

  - 너 전라도지? 

  - 네?

  - 이 새끼 전라도 맞아. 억양이나 말투가 전라도 새끼야 이거.

  지역 차별주의자들은 그러지. 전라도도 보수당 안 찍어주는 건 똑같지 않냐고. 우리랑 다른 게 뭐가 있냐고. 이는 노예로 끌려와 수많은 차별과 핍박 속에서 살아온 흑인들이 오바마를 지지할 때, 그들에게 공화당을 지지하지 않는 건 너희도 마찬가지가 아니야, 너희들과 우리가 다른 게 뭔데? 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 

  어떤 남자의 얘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조심스럽게 고향이 성원이라고 밝혔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어땠나 말하기는 힘들어. 애써 사람들은 자기 표정을 감추려고 했거든. 그 신호는 자기네들끼리는 거리낌 없이 드러내놓고 표시해도 되지만, 아닌 사람에게는 발설하기 뭐한 것이라는 표시이겠지. 아무튼 사람들은 드러내 놓고 어쩐지, 너는 전라도 놈이었어, 라고 말하지는 않았어. 참 성원에 가면 산도 좋고 물도 좋지요? 이렇게 관심을 표하기는 했지만.

  - 나는 성원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자신이 꼭 유대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전 세계 곳곳을 떠돌며 삶을 유지하던 디아스포라 같아. - 이런 비유를 경상도 사람들은 싫어하지만. 야비한 샤일록도 유대인이었지. 같은 백인이었지만 그들도 차별의 대상이었지. 아일랜드인이나 이탈리아인들처럼. 독일군에게 죽거나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이 유대인만은 아니었다는 말이야.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떠올라. 나도 유대인이 되어 그 안으로 들어가 고통을 당하고. 게슈타포 눈을 피해 사람이 숨을 수 있는 곳에는 다 숨었어. 벽장 정도가 아니라 지하실, 굴에도 숨었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숨어서 보낸 시간. 중학교 때 읽은 안네의 일기가 떠오르네. 지옥에서도 청춘은 빛날 것 같은 기록. 그들은 게슈타포에 발각되기도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의 밀고로 잡히기도 했어. 밀고의 대가로 재산을 차지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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