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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Sep 22. 2024

나의 공방일지 13

산업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나고 자란 고향에서,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농사를 지으며 죽을 때까지 살았을 거야.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을 운명이었던가 봐. 

  그들은 전국 각지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했어. 다른 지역도 그랬지만, 전라도 사람에게는 생계와 자식들 장래가 달린 중대한 문제였어. 수도권으로, 성남 같은 곳으로, 아니면 험지인 경상도로 향했지. 내 누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있지 않아 부산 공장에 취업해 돈을 벌었어. 하필이면 경상도 땅인 부산이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 고향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고향 마을에서 재만 하나 넘으면 바로 경상도 땅이었으니까. 물나드리 장에서 만나 물건을 사고 사돈을 맺기도 했었지.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도 되잖아. 굳이 도시로 나갈 필요가 있었을까? 이렇게 물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시대가 그랬어. 귀촌이나 귀향하는 사람들이 있던 시대가 아니야. 친구나 친척들이 떠난 고향에 모지랭이처럼 남아 있기는 어려웠지. 자신들의 꿈도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병산에서 살았고, 이후에도 그 주위를 맴돌았지만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어. 나는 여러 곳에서 전라도 욕을 하는 경상도 사람을 만났어. 그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고 더러웠지. 다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어.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들어 욕을 하는 거야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 하지만 그 지역을 몽땅 싸잡아서 욕하는 것은 찌질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평안도 사람들이 얼마나 차별을 받았으면 홍경래 난을 일으켰을까 백 번 이해가 갔지. 

  물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그렇듯 전라도 사람들이 독한 마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 홈구장이 아닌 원정경기를 하는 야구선수를 보면 알 수 있지. 좀 더 다른 각오로 살지 않으면 절대 살아남기 힘들거든. 그런 이유로 그들은 미국 이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흑인들에게 힘들게 돈을 벌었지만 베풀지는 못했을 거야. 안 그런 마미도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이런 감정이 시작되었는지 몰라.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백제와 신라 때부터 생긴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맞는 것 같지 않아. 그때 생겼으면 고려 시대에도 그런 감정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는 자료가 있어야 하잖아. 아마 그건 지역감정 물타기일 거야. 나는 박정희 정권 때 의도적으로 전라도 죽이기를, 그것도 정책적으로 실시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방송에서 깡패나 조폭은 무조건 전라도 말을 쓰도록 지침을 내렸다는 것은 리영희 평전을 읽는 중에 알았고. - 전국 각지에 조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도 나와 있어. 대통령 선거에서 천신만고 끝에 김대중을 이긴 후부터 말이지. 김대중이라는 정적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90년대, 내가 처음 발을 디딘 병산만 해도 전라도 사람이 많이 있었어. 아니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벌레처럼 바글거렸어. 그때 내가 본 경상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부러움 자체였어. 그들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대기업 직장이 있었고, 자고 일어나면 땅이나 집값이 올라 어쩔 줄 모르고 있었어. 한 마디로 거기에는 물자와 돈이 흘러넘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말들이 귓전에 들리는 거야.

  전라도 사람들 참 독해. 경상도 사람들은 절대 전라도에 가서 살지 못하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에 와서 살 수 있어. 왜냐하면 우리가 그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 말에 나는 몇 번이나 생각했지. 박정희가 왜 하필이면 대구와 부산에 공장을 많이 세웠을까. 학교에서 배울 때는 바닷가에 공장을 많이 지은 이유를 공장용수 때문이라고들 했어. 공장 폐수를 바다에 버리기 위해서였을까. 수출하기 쉽게 하려고 한다고도 했고. 항구가 가까우면 운반비가 적게 드니까. 

  아무튼 죽기 전까지 박정희는 전라도와 전라도 사람들을 지독히 미워했고, 선거에 이용했어. 전라도를 죽이려 든 독재자였지. 그러다가 박정희가 죽었을 때, 억압과 굴종의 시대가 지속되기를 원하지 않던 대부분 국민은 두 손 들고 환영했어. 박정희 시대에 출세하거나 돈을 번 사람들을 빼고. 이때 경상도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몰라. 아마 대부분 국민이 그랬던 것처럼 울고 싶었을 거야. 나도 그랬던 것 같아. 그날은 마침 소풍날이었어. 소풍 준비를 하고 초등학교 운동장에 갔는데 분위기가 이상했어.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수군거리면서 다들 울상을 짓고 있었거든. 사실 나도 그 소식에 눈물이 날 것 같았어. 그때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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