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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Sep 01. 2024

나의 공방일지 10

 - 그 사람이 감방에서 나오면 같이 사업을 하기로 했어.

  - 언제 나오는데요?

  - 얼마 안 남았어. 저번에 면회 한 번 갔다 왔어.

  - 나한테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배신하는 일은 없을 거야. 얼마 전에 벤츠를 사준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야.

  - 그래요?

  - 부장님도 나중에 부를게요.

  - 저야 뭐, 여기 있으나 거기로 가나 상관없어요.

  부장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박기사를 따라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어. 부장도 술집이 망한 후 어려운 과정을 겪은 일인이었거든. 이혼을 하고 7년 가까이 돈 한 푼 없이 힘들게 살았다고 했어. 늘 월급을 당겨서 미리 살았으니까. 

  잠시 후 둘이 자리를 떴을 때 과장이 내게 말했어.

  - 혹시 사장님은 아실란가 모르겠다. 부장이 없으면 일이 안 되는데. 

  -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요.

  - 그렇지.

  부장이 없다면 지장이 없을 수 없었지. 수리를 할 수 있는 기술자가 없는 중고재활용업체의 어려움을 늘 듣고 있었으니까. 

  - 과장님이 수리를 좀 배우시지.

  - 배우려고 여기 아래로 내려왔다가 며칠 만에 다시 올라갔어. 나이도 있고 재주도 없는 것을 보고 부장이 안 배우는 게 좋을 거 같다고 그랬어. 사실 부장도 여기 와서 배운 게 많아. 그전에 전기공사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냉동은 처음이었어. 애들 고모부가 여기 수리를 맡아서 했는데 병산으로 가게 얻어 가기 전에 부장을 가르쳤지. 눈썰미도 있고 손재주도 있어 금방 따라 하더라고. 

  부장에 대한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지누만. 부장은 늘 해장으로 막걸리를 마셨어. 점심에는 식당에서 반주를 먹었고, 저녁이면 주위 친구들과 술을 먹었다고 했어. 그것이 세월을 견디는 그만의 방식이었는지 모르지. 잘 나갈 때 버릇을 버리지도 못한 거 같았어. 어제저녁에는 어느 비싼 술집에 가서 얼마를 썼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다음 날 아침이면 박기사에게 늘어놓는 것을 보면 그랬지. 박기사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까. 박기사도 술을 마시지 못하지만 노는 게 고급이었으니까. 한 번은 고깃집에 회식을 가자고 해서 따라간 적이 있어. 고기를 구워주는 여자들이 있는 고급 한우집이었지. 부장이 박기사에게 물어보더니 기본으로 나온 한 판을 다 먹은 후 비싼 소고기를 시켰어. 과연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었지.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지. 그 돈으로 삼겹살을 먹었다면 얼마나 푸짐하게 먹었을 것인가. 

  아무튼 부장과 박기사는 잘 어울려 보였어. 아침에 출근하면 난로 앞에 앉아 둘은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있었어. 나나 과장은 둘 사이에 낄 틈이 없었어. 

  며칠이 지났어.

  아침에 출근하니 부장은 간밤에 어떤 술집에 가서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박기사에게 자랑하고 있었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인생의 낙이라고는 없는 홀아비가 월급의 대부분을 술로 탕진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어. 이런 생각이 들자, 그가 가엾어지더군. 그는 꿈도 희망도 없는 주정뱅이일 따름이었어. 

  - 처음에 내가 신용불량자가 되어 한동안 폐인처럼 살다가, 일을 하기로 작정하고 국제시장부터 더듬어 올라왔어.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을 일밖에 없으니까. 국제 시장에 갔더니 바로 하루 전에 사람이 들어와 일하고 있더라고. 허탕을 치고 나니 오기가 생기더라고. 그다음에도 그랬고 그다음에도 그랬지. 어디에도 내가 일할 곳이 없었어. 무슨 이유론지 그 일자리는 사라지고 없었어. 포기하고 말까 싶기도 했지만 다시 또 오기가 생기면서 위로 올라왔는데 결국 부산 끝자락까지 왔어. 면접을 보면서 사장에게 내가 그랬지.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지금 있을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으니 그날 일한 거 반씩 매일 좀 달라고 했지. 내가 얼마나 이상한 요구를 한 건지 알지.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잠시 내 모습을 응시하던 사장이 그렇게 해준다고 하더라고.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던 건지 모르지. 행운이 온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은 믿지 않기로 했어. 행운 같은 것은 없어. 운명이 있다고 하면 몰라도. 내 몸을 움직여 닥치는 대로 살 뿐이야. 사장은 아마 내가 전기도 만질 줄 알고, 용접도 할 줄 알고 한다고 하니 잡고 싶었을 거야. 그런 기술 있는 사람 누가 이런 곳에 와서 일하겠어. 사대보험이 되는 것도 아니고, 보너스를 주는 곳도 아닌데. 그다음 날부터 여기 출근해서 일했어. 여기서 점심 먹고 저녁에 여인숙에 가서 자고. 그런데 일을 하다가 보니 직원이 다 나가버리고 나만 남아서 도저히 일을 못 하겠더라고. 여기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지겨울 때가 있지. 혼자 무슨 일을 할까, 고생만 되고 그만둘까 했는데, 사장이 전기세만 내고 살라고 원룸을 하나 내주더라고. 전에 대금을 못 받아 받은 거라고. 그러고 나서 구직난이 심해지면서 직원들도 또 들어오고, 시간이 지나면서 월급도 올려주고 대우가 살만해졌지. 딸내미 결혼하면서 중간에 퇴직금도 찾아 쓰고. 그래서 어찌어찌 붙어 있는 게 벌써 육 년이 지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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