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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Aug 18. 2024

나의 공방일지 8

영감이 추어탕집에서 숟가락을 던진 사건은 한참 동안 잊혀졌어. 출장을 갔다가 돌아가지 못했거든. 철거가 있는 날은 부근 식당에서 먹어야 하고, 먼 거리 배송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것. 그러다 그만 혼자 있는 MK주방에 남는 날이 하루 생겼어. 셋이 모두 나가고 없는데 어니스트가 점심값을 들고 왔어. 

  - 오늘은 혼자 가세요.

  모처럼 웃는 사장 아들이 이상했지만 뭐라고 대꾸를 하지는 않았어. 굳이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어. 혼자 어디로 갈까. 점심때마다 헤매는 전국의 족속들, 방황하는 자들. 망설였지만 아는 곳이 없었어. 게다가 추어탕 아주머니와 이미 정이 들었거든. 혼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식당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뻘쭘한 일이야. 혼자 추어탕집에서 식사하고,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는 것은 홀가분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어. 그래서 사람은 혼자 살기 어렵다는 건가. 다음 날을 기다렸어.

  - 박기사님 어디로 밥 먹으러 가면 될까요?

  그날 부장의 말투가 부드러운 게 이상하기는 했지. 그는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어. 무슨 일이 있었나. 나는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 조은집으로 갑시다. 거기 좋대.

  - 하루는 거기 가서 먹고, 하루는 추어탕집에서 먹고 하면 되지.

  부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그에게 물었어. 

  - 참 어제 김기사는 어디 가서 먹었어?

  - 추어탕집에 가서 먹었지요.

  - 뭐라고 안 해?

  - 그냥 잘 좀 이야기해 주라고 하대요.

  - 일단 오늘은 조은집에 가 보자고.

  이렇게 조은집이라는 불리는 식당으로 길이 트였어. 나는 식당을 바꾸는 데 반대였지만 말할 처지가 아니었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서열에 얽매이는 사회 속에 있었으니까. 음,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제 조금씩 정이 드는 사이였으니까. 조은집이 먹을 만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야. 추어탕집과는 달리 손님들도 얼마 있었고, 깨끗한 곳이었어.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없었지만 매일 나오는 기본 밑반찬에 국이 나왔어. 야채가 많으니 자연식에 가깝다고 할까. 우리 중에 채식주의자는 없었지만 고기가 적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여주인은 식당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으로 젊었어. 처음에는 몰랐지만 혼자 장성한 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어. 여주인이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박기사가 슬쩍 과장에게 그랬어. 부장이 잠시 자리에 없는 사이. 

  - 부장이 또 여자 소개해 달라고 조르는 거 아닐까 몰라. 추어탕집에서도 소개해 달라고 했는데 성사가 안 됐잖아요.

  - 잘됐으면 했는데.

  혼자 사는 남자는 빛이 나는 데가 없어. 어느 모로 보나 한 구석이 그늘졌어. 부장이 오자, 박기사가 화제를 바꾸었어. 대단한 순발력이었어. 거구의 남자가 둔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야. 거기에는 알바 아줌마도 있었어. 오십 대 후반으로 보였지만. 약간 다리를 절었어. 처음에는 몰랐지만 식당 아주머니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어.

  식사하고 나오면서 다들 깔끔하더라는 말을 했어. 이후로 점심 식사는 조은집으로 바뀌었어. 누구도 이의를 말할 사람이 없었어. 과장도 내심 추어탕집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아. 아마 깨끗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지. 그러나 과장은 그런 것을 말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좀 불편했어. 언제 추어탕집 여주인을 맞닥뜨릴지 몰랐거든. 우리가 뭐 죄지은 거도 아니고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말하기도 했지만 지하도 입구쯤에 오면 누구든 눈을 그쪽에 두지 않을 수 없었어. 마치 고양이처럼 슬슬 눈치를 보았다고 할까. 그러나 추어탕집 여주인을 만나는 날이 왔어.

  - 으이구. 이제 한 달은 안 오겠구만.

  나는 그녀가 무어라고 해도 들을 자세가 되어 있었어. 그런데 추어탕집 여주인의 말투는 서글픈 것이었어. 네 명의 고정 고객이 그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까. 나는 여주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 파마머리에 눈이 살짝 치켜 올라갔지만 피부는 고왔어.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혼자 결정할 일도 아니었어. 

  오는 내내 추어탕집과 조은집을 생각했어. 조금만 위생에 신경을 좀 쓰지, 싶었어. 조은집은 깔끔했지만 아직 낯설었지. 추어탕집에서는 반찬도 날라주고 마음대로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가던 부장도 얌전을 빼고 있었어. 이제 막걸리는 내가 꺼내오는 게 현명한 처사였어. 나는 음료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종이컵에 두 잔 따랐어. 부장이 한 것처럼 과장에게 맑은 술을 한잔 따라 줄까도 싶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기로 했어. 과장은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발개져서 스스로 삼가고 있었어. 박기사는 천성적으로 술 담배를 하지 못했고. 교회 다니는 것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어. 아무튼 함께 있는 동안 박기사가 한 번도 술 마시는 걸 본 적이 없어.

  - 벤츠는 언제 뽑을 거야?

  과장의 물음에 박기사는 웃으며 말했어.

  - 좋은 걸로 뽑았더니 시간이 좀 걸리요.

 벤츠라니? 그는 무슨 말인가 싶었지. 그것도 가격이 비싼 기종으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박기사도 왕년에는 아주 잘 나가던 사람이었어. 본인 말에 의하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었다가 추징당하고, 친구에게 보증을 잘못 서서 공장을 날려버렸지만 한때는 폭스바겐을 타고 다녔다고 그랬어. 공장을 운영했던 사장이라고? 과거에 타이어 가공회사를 운영했다는 말은 나는 놀라서 몇 번이나 입을 벌렸지. 먼발치였지만 주진에 있는 타이어 공장을 가리키며 화려했던 과거를 읊어댔으니까.

  - 바로 저기가 내가 가지고 있던 공장이야. 저것만 가지고 있었어도 이 고생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한 번은 타이어를 소재로 연구하고 있는 사진을 가져온 적도 있었어. 

  - 이것을 찍기 위해 그때는 고가인 카메라 캠코더를 샀는데,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줄 수도 있어. 타이어를 이용해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기도 하고, 가루로 내서 도로에 까는 일을 하기도 했어. …고산 시장 만나러 자주 다녔지. 그때 미송 넘어가는 길에 땅 좀 사두는 건데. 그랬다면 이 고생 안 해도 되는데. 그땐 알았어야지 친구가 사두라고 하길래, 그런 땅 뭐 하러 사두냐고 그랬는데.

  돈을 벌게 된 것은 공무원과 결탁해서 인도에 폐타이어 고무를 갈아입히는 사업을 한 이후였어. 미세먼지를 유발한다고 해서 지금은 거의 다 없어졌지만 처음에는 누가 보아도 괜찮은 사업이었지. 버리는 폐타이어 쓸 수 있는 곳을 제대로 찾아냈으니까. 지금도 박기사 주위에는 부자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 아파트를 사주고 차를 사주기도 했어. 그렇지만 생활비까지 받는 건 좀 그랬든지 MK주방에 들어온 거였어. 그렇게 살아오던 박기사에게 이런 일은 너무 가혹한 것이었어. 너무 측은해 보였다고 할까. 두꺼운 고무장갑 끼고 끝도 없이 수세미를 움직여 냉장고를 닦을 때마다, 어니스트가 욕지거리처럼 고함을 지를 때마다 이런 말을 내뱉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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