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있었던 일로 인해 그는 여전히 심란한 상태였어. 우연히 일어난 아이들의 반란으로 인해 자존심은 상처 입고 명예는 실추되었으니까. 어쩌면 피해 가야 할 일을 피해 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어리석어 생긴 일일 수도 있었어.
지금까지 많은 아이들을 겪으며 그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아이들은 다들 비슷한 것 같지만 저마다 다르다는 거였어. 생각지도 못한 면들은 지닌 아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그것을 드러내 그를 당황스럽게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거든.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식으로 말이지. 간혹 그가 순발력 있게 아이들의 도발을 잘 헤쳐 나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 그런 때는 어찌할 수 없이 다다르게 되는 극한의 사태, 인간적인 결함 같은 것을 그도 동물처럼 드러내게 되지. 어쩌면 그런 아이와 그는 상극인지도 모르지. 불이나 물처럼. 금이나 목처럼. 토나 수처럼. 이를테면 피해야 할 상대인 셈이지. 축구를 들어 말하면 더 나을까. 잘하는 팀이지만 유독 어느 팀에게만 약한 경우라고나 할까.
이럴 때 그가 취하는 방법은 간단히 말해 접는 것, 다시 말하면 괄호를 치는 것이었어. 이렇게 판단을 중지하면 쉽게 문제가 풀리는데, 문제는 괄호를 해 놓고도 순간적으로 잊는 경우였어. 하이드 같은 경우가 그랬어. 그 애의 이름이 있지만 다들 ‘하이드’로 부르고 있었어. 영어 선생이나 학생들이나. 단지 원장만 그걸 몰랐을 뿐이지. 처음 하이드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영어 선생이야. 그 점에서 영어 선생은 그보다 좀 더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할 수도 있어, 아이들을 잘 파악하고 꼼짝 못 하게 만들었거든. 어쩌면 여장부 기질이 있었던 걸까. 아무튼 그는 분명히 하이드에게 괄호 표시를 해 놓았다가 어느 순간 잊어버렸어. 아마 천연덕스러운 녀석의 얼굴 때문이었을 거야. 선량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모습에는 누구든 경계심을 풀어버리는 거지. 게다가 하이드는 바이런처럼 어딘가 모르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미남자였거든. 바이런은 사진으로밖에 보이 못했지만.
이번 일만 해도 그랬어. 그가 좀 더 침착했거나, 요령이 있었다면 피해 갈 수 있는 일이었어. 원장에게 공정하지 못하게 학생들을 대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가 아이들을 때리기만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꾸중을 듣지 않아도 되었을 거야.
현장에 누가 있었던가. 하이드와 문기를 비롯해서 네 명이 있었지. 그는 몇 번이나 휴대폰을 꺼내는 녀석들에게 집어넣으라고 했어. 이런 상황은 늘 벌어지던 일이지, 그런데 녀석들이 들은 체도 하지 않는 거야. 그가 집어넣으라고 말하면 책상 밑으로 내리는 척하다가 다시 만지작거리고. 이것을 본 그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어.
"자식들, 지금부터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잡담하는 놈들은 가만두지 않겠다!“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그는 자습을 시킨 것이 잘못이라고 나중에 몇 번이나 생각했어. 금방 산만해지는 아이들에게 자습이란 괜한 짓이야. 선생 편하자고 하는 짓이야.
그가 보기에 아이들은 선생에게 겁을 내야 했어. 과거에는 선생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요즘 중2 정도 된 애들은 선생을 겁내지 않아. 이제 선생이나 부모가 만만하게 보이는 때가 됐거든. 그때까지 권력을 쥐고 부를 누리며 각계각층에서 목에 힘을 주던 사람들이, 고졸 출신이라고, 소탈한 노무현 대통령을 만만하게 보고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었듯이. 아마 그들은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고 있었어. 언론이고 검찰이고 곳곳에서 그분이 어떻게든 못되기를 바라고 마구 흔들어 댔어. 그래야 다음 차례에 자신들이 나설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녀석들은 일개 학원 강사인 그를 만만하게 보았어. 그것이 그를 좋아한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었어.
조금 숙연해지려고 할 때 분위기를 깨는 것은 꼭 하이드였어. 옆에 앉은, 체구가 작은 아이 어깨를 만지며 무어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너 왜 입을 열어?"
그는 하이드가 ADHD나 자폐가 아닐까, 생각한 적은 있지만 침묵을 지켜야 할 순간에 분별없이 입을 열 줄은 몰랐어. 이런 순간의 압박감을 하이드는 견디지 못할까. 그때는 그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괜찮냐고 그냥 물어봤어요?"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 왜 조용히 하라는데 입을 열었느냐는 말이다."
"괜찮냐고 물어본 것도 죕니까?"
그는 하이드 말에 당황했어. 전혀 예상치 않은 반응이었거든. 그 순간 영어 선생의 말이 떠올랐어. 저 녀석 별명을 제가 하이드라고 지어주었어요. 지킬 앤 하이드 멋지지 않습니까? 영어 선생 같으면 미리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교실을 잘 장악하여 어떤 저항도 봉쇄할 수 있을까. 물론 원장은 이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겠지. 나중에 그는 영어 선생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어. 그랬다면 사태는 쉽게 가라앉고 그도 나름의 정리를 하고 무덤덤한 일상으로 들어갔을 거야.
"이 자식이, 손바닥 내!"
부글거리던 그의 속이 끓어 넘치고야 말았어. 이제 그도 한계점에 다다른 거지. 다행이라면 그대로 하이드를 걷어차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는 거야.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는지 생각했어. 어쩌면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 게 아닌가 싶었지. 음, 한두 번이 있었던 거 같았어. 한 번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방과 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친구들 둘과 함께 걸어서 삼십 리 길을 걸어간 적이 있어. 그에게 이런 일은 대수롭지 않았어. 십 리 거리에 외가가 있었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그는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고 간 적이 많았어. 부모님이 미리 가서 외가의 일을 하고 있거나 보따리를 들고 심부름을 가기도 했지만, 그가 해질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으레 외가에 갔나보다 생각할 정도였지. 그런데 함께 간 녀석의 집에서는 난리가 났어. 그 애는 장손이었거든. 그 애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 아랫동네인 그의 마을까지 찾아 내려왔어. 그 애 어머니는 애가 타서 해가 져서 깜깜해진 밤, 같은 반 아이들 집을 찾아다녔어. 어떻게 애가 없어졌는데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요? 그의 어머니는 별말을 하지 않았어. 외가에 갔나보다 생각했지. 여편네가 괜히 툭갈이라고 했지. 아무튼 같은 마을에 하숙하던 담임 선생님께 연락이 갔고, 다음 날 전교생 앞에서 그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맹세를 해야 했어. 그리고 또 한 번은 하이드처럼 중2 때였어. 공부를 핑계로 학대를 일삼던 형을 피해 그는 가출 모의한 적이 있어. 이번에도 셋이 고향을 떠날 작정이었지. 그렇지만 일은 생각보다 커졌어. 한 녀석이 여러 명의 애들을 끌어들이면서 판을 키웠거든. 그는 가지 않기로 했어. 다른 녀석들은 어느 날인가 진짜 가출을 감행했어. 하지만 그 애들은 경찰에 잡혀 돌아왔고, 판을 키웠던 녀석이 주동자라고 진술하면서 함께 처벌받았어. 결국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와 가출자들은 팬티와 러닝만 입고 운동장을 수십 바퀴 돌고, 일주일 내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어. 그때 담임선생이 그에게 말했어. 도피하는 것은 비겁한 거라고.
"저는 억울하다고요!"
"입을 안 열었다는 말이냐?"
"저는 억울하다고요!!"
하이드는 그가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않고 제 변명만 해댈 뿐이었어. 더 이상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었어. 그는 탁탁 소리를 내며 타는 장작불처럼 속에 화가 이글거리는 것을 느꼈어. 순간 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가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생각을 했어. 아주 오래전에 하이드와 비슷한 녀석을 만난 적이 있었다 싶었지. 그렇지. 며칠 전에도 그가 손바닥을 내밀라고 했을 때 하이드가 버틴 일이 있었거든. 하는 수 없이 그는 하이드를 교무실에 데려다 엎드려뻗쳐를 시켰고. 만약 그때 옆에 원장이 없었다면 벌써 일이 터졌을 게 틀림없었어.
“어서 잘못했다고 말씀드려!”
원장의 말에도 하이드는 말이 없었어. 그는 하이드를 교무실에 둔 채 다시 교실로 돌아와 수업을 진행했어. 그때까지 그는 하이드를 괄호에 넣지는 않았어.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가 영어 선생에게 적발되고, 다른 녀석들과 함께 슈퍼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간 적도 있지만 그만한 나이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아직 바이런 같은 외모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거든.
그러나 이제는 사소한 애정이나 이해심도 바닥이 나 버린 상태였어. 그는 하이드에게는 제발 공부를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십 번 했어.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나 왕따 문제도, 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에게 강제로 공부시키는 데서 온다고 믿었지.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이번에도 그는 하이드를 데리고 교무실로 가서 엎드려뻗쳐를 시켰어. 달리 어찌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거든. 그런데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행동을 해버렸어. 비록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그랬다고 해도 엉덩이를 한 대 때린 후 발로 밀어서는 안 되었어. 이런 행동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아마도 군대에서 배운 것 같았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폭력적인 망동들. 그 잔재가 지금까지 남아 그를 지배하고 있다고나 할까. 군대 가면 사람 되어서 나온다고 누가 말했을까. 그는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을 증오하고 있었어. 군대를 나쁘게 말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금지된 일이었지만, 그때까지 배운 교육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은 확실했어.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나 시민으로서의 윤리나 생활의 원리로서의 민주주의 같은 것은 아예 집어던지는 게 좋았어.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거, 나이 차이도 몇 개월 나지 않거나 어린 선임의 사적인 지배까지 받아야 했거든. 거기 어디에도 인간이라는 건 없어. 그저 부속품일 따름이었지. 시키는 대로 짖을 뿐인 개였지. 그는 간혹 상하관계가 지나치게 엄격한 한국 사회는 군대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 하지만 조선 시대 성균관의 신고식을 알게 된 후로는 그게 유교의 악습이란 것을 깨달았어. 그래, 이건 통과의례이고 혹독한 성인식이야. 바누아투의 번지점프나 할례처럼.
그때 하이드가 벌떡 일어나더니 고함을 질렀어. 학원 전체에 울릴 만큼 큰 소리로.
“괜찮냐고 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요?”
얼굴이 벌게진 하이드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어. 어쩌지, 그 순간 그는 황당했던 순간으로 편집된 삶의 파편이 파노라마처럼 휙 스치는 것을 깨달았어. 하이드가 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러면 일이 커지는 거였어. 당연히 그에게 불똥이 튈 것이고. 틀림없었지. 그는 이런 상황이 싫었어. 비굴한 느낌이 들었고. 내버려 두면 어쩔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 그래, 스스로 이성을 찾을 시간이 하이드에게 필요할지도 몰라.
나중에 그는 하이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어. 일어났던 일을 하나씩 떠올리며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하기도 했지.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어. 세상 대부분이 일이 그렇잖아. 답이 있을 듯해서 가보지만 그새 저 멀리 가고 없지.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며 한곳에 머무르게 되었어. 어떻게 하이드가 영어 선생을 좋아한다고 고백했을까, 하는 부분이었지. 영어 선생의 어떤 부분이 하이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인가. 궁금했지만 하이드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지.
예견된 일이었지만, 곧 원장이 왔어. 원장을 보자 그는 숨이 막힐 듯 답답해지고 심장이 요란하게 쿵쾅거렸지. 하긴 학원 전체가 들었을 터이니 원장만이 안 듣는 일은 절대 없지.
“너 선생님한테 왜 이래?”
원장의 말에 타오르던 하이드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어. 순간적으로 당황했을까. 잠시 흔들리던 그네가 멈춘 것처럼 시간이 멈추었어.
“이리 따라 와.”
원장이 하이드를 데리고 교무실로 들어가며 일은 커지지 않았어. 그도 원장을 따라 교무실로 갔어. 원장은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에 주저앉았어. 그런 다음 부근을 기웃거리던 아이에게 문기와 다른 애를 부르러 보냈고, 푸, 하고 한숨을 쉬었어.
“사회 선생님이나 비슷한 점이 있는데, 둘 다 사람이 순하다는 것인데, 그때 중학교 2학년 때도 그렇고.”
그는 고개를 들어 무심결에 원장을 보았어. 그런데 붉으락푸르락 어찌할 줄 표정이라니. 무서움에 그는 뒤로 나자빠질 뻔했어. 여기도 하이드가 있었다니.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원장 얼굴을 보았지. 강한 턱, 큰 눈이 쏘아대는 레이저 광선, 앞부분이 벗겨져 금세 뜨거워지는 머리.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하얀 말 이빨. 한 번 보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어. 그는 공포감에 떨었고 어서 이 자리를 떠났으면 싶었어. 사실 원장은 언제 화를 낼지 예측을 할 수 없는 인물이었어. 한 번씩 던지는 유머에 속아 마음을 놓았다가는 곧 자신을 머저리나 등신이라고 욕하게 되지. 부드럽고 우아하게 던지는 말이나 유머는 여름날 잠시 다가오는 바람이었지. 어찌 보면 원장은 가면의 달인이었어. 금방 자신의 표정을 바꿀 수 있었으니까. 부드럽고 상냥한 언어를 구사하면서 한 번씩 웃음을 주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화가 나서 일그러진 얼굴로 독설을 퍼부으며 상대 마음에 비수를 박는 거지.
그는 속으로 치를 떨며 다음을 기다렸지. 이제 옛날이야기를 꺼낼 차례였어. 때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때렸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몇 년간 원장에게 시달렸으면 요령이 생길 법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어쩔 줄 몰랐어. 원장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수밖에 없었어. 한마디 했다가는 무슨 사달이 날지 몰랐거든.
“그전에도 보면 사회 선생님이 애들하고 레슬링을 하고 있어요.”
순간 초등부 수학을 가르치는 여선생 얼굴이 떠올랐어. 그녀는 삼십 대로 안경을 쓰고 파마머리였는데, 야물딱지게 아이들을 가르쳤어. 숙제를 내고 검사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 성적을 올려놓았지. 그녀도 비슷한 장면을 보았는지 이런 말을 했어.
‘그 순한 사회 선생님이 화나서 애들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절대 중학생 수업은 하고 싶지 않아요.’
어쩌면 나는 아이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불안해졌어. 간혹 남자아이들이 그에게 볼멘소리로, 선생님, 여자애들과 차별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따지기는 했어. 여자들은 좀 더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가 좀 더 부드럽게 대했던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심각하게 차별한 적은 없었어.
아이들을 차별 한 적이 있는가. 그는 자신에게 물었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거든.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누구는 때리고 누구는 안 때리면 안 되는 일이지. 그런데 그의 수업 시간에 차별을 말하는 아이들은 자주 떠들고 장난하는 아이들이었어. 그러면 지금까지 10번 떠든 애와 1번 떠든 애를 똑같이 처벌해야 하는가. 상습 행위자를 가중해서 처벌하는 것은 공정한 것이 아닌가. 고뇌하는 것을 보다 못해 그의 아내가 한 마디 던지기는 했어.
‘그냥 다 같이 때리면 안 될까.’
치사하지만 효과는 있어 보였어. 그러나 한 녀석으로 인해 전체가 다 맞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어. 이런 게 연좌제인 셈이지. 가족 중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불이익을 받는 빨간 줄 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애는 어떻게 될까. 왕따가 되지 않을까.
다음 날 아침. 아니 하루가 더 지났는지 몰라. 그가 교무실에 들어서니 문기와 하이드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어. 원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고함을 지르고 있고.
“네 놈들, 도둑질한 거 집에도 이야기하고, 학교에도 이야기할 거야.”
원장이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원장은 둘에 대해 모르는 게 거의 없었거든. 둘이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걸렸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 일당 중 한 아이는 이 일로 인해 학원에 나오지 않고 있었고.
둘이 무릎 꿇고 앉아있는 것을 본 영어 선생도 그랬어.
“이 녀석들 저한테 담배 피운 것도 걸렸어요. 언제부터 피웠냐고 물어보니 한 열흘 됐다고 했어요.”
그 애들이 담배를 피운다니, 그로서는 금시초문이었지. 그러나 물건을 훔친 후 하이드가 보였던 행동은 기억하고 있었어. 교실에서 마이쮸 통을 들고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장면이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물건은 슈퍼에서 나온 장물이었지.
“지금도 피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원장이 영어 선생을 보며 말했지.
“저한테는 다시는 안 피운다고 하기는 했어요. 다른 애들도 약속했고요.”
“이놈들 모조리 정리해야지.”
원장의 말투는 단호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어. 원장은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받았거든. 잘하는 아이든 못하는 아이든, 학습에 장애가 있는 아이건 가리지 않고. 그리고 선생들에게는 그랬지. 교육하는 사람은 어떤 학생이라도 잘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이지. 이런 원장의 태도는 그가 보기에 존경할 만한 생각이었어. 사실 우열반이나 특목고를 만든다는 것은 학생 전체나 사회를 위해서는 옳지 못한 일이지.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고. 아이들은 여러 성향의 아이들 속에서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아야 공감 능력도 생겨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좋은 인격도 갖추게 되거든. 분리하는 것은 주로 부자들이 하는 이기적인 짓이기는 하지. 가족이기주의랄까, 자본 이기주의랄까. 아무튼 부자들은 장벽을 치고 가난한 자들이 넘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지. 가난한 자들에게 물건을 만들어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말이지.
“저기 정이 보면 참, 마음이 그래요.”
쉬는 시간에 만난 영어 선생이 문득 그에게 그랬어. 그 애라면 그도 오랫동안 알고 있는 애였어. 키가 크고 마른 애였어. 학원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고. 원장과 같은 아파트였어. 원장 말에 의하면,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어머니는 정이를 낳다 죽었어. 이후 정이는 큰집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어. 아버지는 경기도 어디에서 직장에 다닌다고 했고.
“좀 그렇지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그도 알아챘어. 영어 선생도 원장처럼 정이를 아주 가엾게 여기고 있었어.
“네, 애타게 사랑을 갈구하는 애예요.”
과거의 그도 정이 불쌍하고 안 됐다는 생각을 했더랬어. 큰딸 영현이와 같은 학년이라 집안 사정을 곧잘 전해 들었고, 몇 번인가 유심히 보기도 하고. 영현이 몇 번인가 정이 집에 놀러 가기도 했을 거야. 그때는 공부가 아니라고 해도 학원이 꼭 필요한 때였어.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친구도 없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그러면서 둘은 좀 친해진 것처럼 보였어. 그러나 정이는 자신이 기대만큼 관심이 돌아오지 않자, 슬슬 수업 시간에 짓궂은 장난을 쳤어. 일부러 지우개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일부러 여럿이 작당을 해서 떠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학원과 비교하면서 불평을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영현이와도 멀어졌을 거야. 아버지를 힘들게 어렵게 하는 아이와 친구가 될 수는 없으니까. 지금은 그때 같이 다녔던 애들 대부분이 나가고 둘만 남았어. 정이와 영현이.
이후 정이는 여자 선생들과 가까이 지내려 했어. 집에서 먹을 것을 만들어 오기도 하고, 옆에 붙어 까불기도 하고. …이번에는 영어 선생에게 접근하는 중이었어. 그것이 그는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미워하지도 않았어. 정이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고 간혹 기대만큼 사랑이 돌아온다 싶으면 지나치게 충성스러운 모습도 보여 주었으니까. 정이도 괄호 안에 넣었느냐고. 그건 아니야. 꼭 그럴 필요가 없었어. 그 이후로 그를 힘들게 하지도 않고.
어느 날 그는 수업하다 말고 잠시 밖을 보았어.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도로변에 있는 학원이라 오래전에 지은 건너편 아파트가 한눈에 보였어. 붉은 십자가가 이곳저곳에서 빛나는 것도 눈에 들어왔고. 그러고 보니 한해가 끝나가고 있었어. 왜 요즘은 연말 분위기가 안 나는 걸까. 아마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거리의 음악이 사라졌기 때문일 거야. 영구가 부르는 캐럴이 무심결에 떠올랐어.
울릴까 말까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르네.
리어카에서 울려 퍼지던 영구의 캐럴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어. 저작권 때문이라고 했어. 그런데 그것들이 사라지면서 네온사인이나 교회의 크리스마스 장식도 빛을 잃었어. 예수를 모르던 사람들을 설레게 하지도 않았고. 그들은 이교도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 조상을 숭배하고 제사 지내던 사람들에게 기독교 자체가 이교였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