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호리호리하지만, 윤이보다는 작지만, 국이 만큼 키가 큰 동이의 입을 보았어. 얼굴 곳곳이 여드름 포화로 곳곳이 패인. 윤이와 국이를 비롯한 아이들도 동이를 보았지. 동이 목소리는 탁한 편이어서 날카로운 데가 없었어.
“화장실 가야 합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어. 그는 녀석을 보내주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안해졌어. 아이들이 줄지어 뒤따를지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라 원장이 안다면 언제 쳐들어올지 몰랐으니까.
“수업 시작할 때마다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서면 어쩌자는 거야?”
“이제야 마려운 걸 어째요?”
“안 돼. 급하면 싸.”
다급해서 이렇게 말했지만 그래서 될 일은 아니었어. 동이는 통을 하나 들고 교실 뒤편으로 가더니 허리띠를 풀려고 했거든.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당황스러웠어. 여학생도 한 명 있었으니까.
“알았다. 갔다 와라, 갔다 와.”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어. 동이가 허리띠를 잠그지 않고 걸어가는 게 아닌가. 그래, 이런 식으로 반항하려는 거지. 내가 침묵으로 원장에게 맞서는 것처럼. 더구나 동이 패거리는 학교 선배들에게 돈을 뜯기거나 빵셔틀도 하는 녀석들이었어.
“이리 와, 안 되겠다. 칠판 모서리 잡아.”
이제 더 이상 말로 통할 지경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어. 동이가 순순히 칠판 앞으로 걸어오자, 그는 냅다 엉덩이에 매를 휘둘렀어. 몇 대 때렸더니 넓적한 매가 부러졌어.
“갔다 와.”
동이가 문을 열고 나갔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어. 키가 크고 얼굴이 긴 녀석은 자못 의미 있게, 웃는 듯 마는 듯 이상하게 항의했거든.
“근데 선생님,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그래, 좋아. 말해주지. 여기는 여학생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있어. 허리띠를 풀고 가면 예의가 아니지.”
“아니 뭐를 잘못했냐고요?”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기로 작정했어. 다시 칠판 모서리를 잡게 하고 엉덩이를 때렸어. 매 맞는 소리가 북처럼 둥둥 울렸어. 그런데 자리로 돌아간 동이가 가방을 싸는 게 아니겠어. 그 순간 그는 가슴에서 쿵 하고 떨어지는 호박 소리를 들었어. 그러나 그는 고함을 지르지도 매타작을 하지도 않았어.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어.
“어머니가 오라고 했어요.”
동이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 그는 동이 뒷모습을 가슴 졸이며 한참 바라보았을 거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처럼. 녀석이 다시 돌아올까. 아니 오랫동안 바라보지 못했을 거야. 다른 아이들에게 눈치채일까 봐 겁이 났거든. 수업 시간 중에 돌아간 아이들은 대개 학원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우주선에서 떨어져 미아가 된 우주인처럼 거리를 떠돌다가 곧 다른 학원으로 갔어.
쉬는 시간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원장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어. 사실 나쁜 소식을 전하지 않는 직원은 조직에서 가장 나쁜 직원이지. 일을 못하는 직원보다 더 좋지 않아. 굳이 자신을 위해 꾸미지는 않았어.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드러날 일이었으니까. 듣고 나자, 원장은 화가 난 듯 몇 마디 질문을 했고. 그런 다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어.
“알았어요.”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그는 생각했어.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할까. 학원을 위해 일할까. 아이들을 위해 일할까. 오늘은 필시 일진이 나쁜 날일 거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달력을 보았어. 오행 중 불(火)이 많은 날인지 보려는 거지. 병오 일이나 정미 일은 그에게 최악의 날이 되기 쉬웠어.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가 운명론자라는 건 아니야. 오행을 보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믿으려는 게 아니라 행성들 중에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 좀 가까이 있나 멀리 있는지 보고 삶을 조정하려는 것이거든. 그런데 병오 일이나 정미 일은 아니었지만 역시 화(火)가 많은 날이었어. 그런데 그날 수업이 끝나기 전에 원장이 그를 불렀어. 원장의 표정은 생각보다 환해 보였어.
“동이는 월요일부터 다시 학원에 나오기로 했어요.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어요.”
“네, 그렇습니까?”
“어머니가 요즘 부모님과 다르게 참 생각이 있는 분이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홀가분해진 그는 하루가 지나기를 기다렸어. 내일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행복하군. 그는 자신에게 말을 하는 중이었어. 하지만 내일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어찌 알겠는가. 그래, 너무 크게 웃는 것은 좋지 않아. 그러던 마음이 또 금세 바뀌었어. 내일 일어날 일 때문에 지금을 우울하게 보내는 건 좀 그래. 그랬다가는 평생 즐겁게 살지 못해. 여보게 친구, 지금을 즐거이 여기라구.
그런데 다음 날 논술하러 갔더니 대뜸 원장이 부르는 게 아닌가. 원장은 의자에 앉고, 그는 선 채 원장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지.
“준이가 억울하다고 해요. 저는 웃은 죄밖에 없다고.”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가요?”
“네.”
발단은 중 1학년 준이와 친구들 둘이 수업 시간에 떠들어 그가 한 대씩 손바닥을 때린 데에 있었어. 가만히 두면 수업을 할 수 없고 다른 애들에게도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언제는 애들 떠든다고 그렇게 나무라더니 하룻밤 새 사람이 바뀐 것일까? 그는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한 거밖에 없었거든. 원장처럼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대로 손바닥을 한 대씩 때린 거였거든. 하긴 그런 방식이 원장 보기에 고지식하다거나 눈치 없다고 할 수도 있었어. 그렇지만 원장의 태도가 좀 이상했어. 1학년 여학생들에게 욕을 해대는 준이와 다른 녀석을 따로 불러 이야기하지도 않고. 대체 왜 그러지. 준수가 아이들 둘을 데리고 온 것 때문인가. 그게 아니면, 내게 잘못이 있었나. 공정하지 못했나. 그는 자신을 돌아보았지. 초등부 수학 선생 때문에 예민해진 건가. 그제 초등학교 쌍둥이 자매의 볼을 꼬집은 일로 학부모 항의가 있었고, 이 때문에 초등부 수학 선생은 원장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는 일이 있었거든.
원장의 차별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어. 원장은 영어 선생 말대로 색안경을 쓰고 사람을 보았거든. 예를 들어 원장은 그의 큰딸 영현에 대해서는 조금도 나쁘게 말한 적이 없지만 둘째 딸 영미는 내내 못마땅해했어. 그것은 영미가 고분고분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놀림 받은 친구 경이를 대신해 남자애들과 한 판 맞장을 뜬 이후부터일 거야. 원장 앞에서 5학년 남자애들은 질질 짜며 영미를 죽인다고 소리를 질렀거든. 이때 원장은 세상 어느 어머니보다 자애로웠어. 아이들을 다독거리며 이야기를 들어주었어. 남자아이들이 뭐라고 했을까. 그는 궁금했지만, 원장에게는 물어보지 못했어. 그런데 애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심하게 추궁하지 않는 한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자신들이 경이에게 뚱뚱하다고 놀리고, 욕을 한 것은 말하지 않고 영미가 그 애들에게 한 것들만 죄다 이야기한 거지. 그런데 이걸 다 오십이 넘은 원장이 다 믿었냐고?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원장이 그에게 한 말은 가관이었어.
“경이는 내가 오랫동안 본 앱니다, 학원에 온 지 몇 년 됐거든요. 절대 다른 애들에게 욕하고 싸울 애가 아니에요. 동생 연이가 그렇게 못살게 굴어도 그냥 울고 말지, 달리할 줄도 모르는 애거든요. 지금도 연이네 집 앞에서 운행을 시작하니까 애들 할머니도 자주 만나요.”
결국 원장 생각에는 남자애들이 아니라 영미가 문제였지. 남자애들이 경이를 놀리고 못되게 굴어도 영미는 가만히 있는 게 나았어. 경이가 어떤 꼴을 당해도 말이지. 이번 일을 통해 그가 알게 된 것은 그거였어. 원장에게 옳고 그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원장은 다른 것을 더 우위에 두고 살고 있었던 셈이지. 소극적이지만 정의에 대한 고전적인 관념을 가진 그와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지. 다른 말 할 필요가 없어. 흔히 하는 말로 영미는 원장에게 찍힌 거지. 눈엣가시처럼 말썽을 일으키고 신경질이 나게 하는 존재가 된 거지. 본인도 모르게.
원장의 의식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보기에 입구는 커 보이지만 갈수록 좁아지는 동굴이 모습으로 그려졌어. 모든 것에 열려있는 것처럼 개방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미 과거의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새로운 정보나 감정들이 들어가 운신하기 어려워 보였지. 이것을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좀 구조가 달라. 어쩌다 한 번 그 안에 들어간 정보는 좀체 나갈 곳을 찾지 못했거든. 그래서인지 원장은 오래전 일도 쉽사리 잊지 못하는 성격이었어. 자신의 감정을 자극한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한 번씩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소한 것조차 펼쳐내서 그것이 닳아 없어져 형체를 잃을 때까지 문질러 댔어. 사람 머릿속에 의식을 저장하는 창고의 용량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때, 과거의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새로운 것들이 들어가기 어렵지 않겠어. 아무튼 원장은 자신의 감정을 자극한 일을 내내 잊지 못했어.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처럼 꽁하게 오랫동안 기억했어.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말이지.
이후 원장은 지금까지의 방침을 바꾸어 강사들이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못하게 했어. 의외의 일이라 다들 할 말을 잃었어. 따르기는 해야겠지만 아이들을 어떻게 통제할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 그는 학원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했어. 감히 아이들을 때리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때 말이지. 누군가를 때리는 것은 그 자체가 폭력이라고 여길 때였지. 그때는 어떻게 아이들과 수업을 한 것일까. 이제 아이들에게 매를 들 수 없다고 생각하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어. 이제 그도 이 일에 둔감해져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매를 휘두르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