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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Aug 15. 2024

14. 선생님, 그러다가 학원 생활 피곤해집니다

14. 선생님, 그러다가 학원 생활 피곤해집니다

“선생님 사진 아니에요!”

  승용차 뒷좌석에 앉은 윤이가 그랬어. 묻지도 않았는데.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어. 진이와 중학교 1학년 준이라는 애가 덩달아 웃었어. 그는 원장 부탁으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주며 퇴근하는 중이었어.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어. 자신이 모르는 일로 누군가가 옆에서 웃는다면 즐거울 수 없지. 그는 운전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을 거야. 그때 그의 눈치를 보며 빙그레 웃는 중학교 1학년 준이 얼굴을 보았어. 뭐라고 말하기 곤란할 때의 표정도 함께. 알 수 없는 기류가 차 안에 흐르는 것을 눈치챈 그는 윤이 손에 든 폰도 보았어. 분명 합성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형한 사진이 틀림없었어. 대상은 그였을 테고.


  아마 이때쯤일 거야.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스마트폰은 놀라웠어. 그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있었어. 플래시가 내장된 카메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MP3, 전 세계 사람들이 연결된 트위터, 페이스북. 이후 스티브 잡스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 그때까지 게임이나 음악이 든 스마트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놀라운 혁신이 들어있었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 한 사람, 두 사람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어. 학원에서 가장 빨리 스마트폰을 산 사람이 누구인지 그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원장의 스마트폰을 빌려 게임 하는 광경은 눈에 그릴 수 있었지. 파란색 덮개가 있는 갤럭시 스마트폰이었지. 그 매혹이 얼마나 빨리 세상을 홀렸는지 몰라. 그도 마찬가지로 어느 시점에 스마트폰으로 가지게 되었어. 집에 하나 있는 그 스마트폰을 아이들이 지치지 않고 가지고 놀았고. 스마트폰은 지금까지의 폰과는 달랐어. 폰으로 옮겨진 인터넷 컴퓨터 이상의 것이 있었어. 그러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게 그득했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배우는 부모들도 생기고. 지금도 그는 카톡, 하는 소리에서 느꼈던 신기함을 기억할 수 있어. 한 마디로 신 세상이었어. 그때까지 몰랐던 생활의 기술을 알게 됐고, 내비게이션이나 국어사전, 한자 옥편을 구입해 깔기도 했으니까.  


  준이를 내려주고 돌아서는 길에 진이가 그랬어.  


  “국쌤 같은데.”


  그 말에 윤이는 서둘러 말을 하지 못하게 손으로 진이 입을 막는 시늉을 했지.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심심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는 윤이의 장난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해졌어.   


  “아니에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윤이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려고 했어.  


  “하지 마. 운전에 방해 된다.”


  냉정히 말하며 그는 생각에 잠겼어. 수업 시간에 한 윤이 말이 떠오른 거였어. 그의 머리칼이 곤두설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어.


  “선생님, 앞으로 학원 생활 피곤해집니다.”


  이 말에 그는 아무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었어. 너만 스트레스받는 것이 아니고 나도 마찬가지야. 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 받는 스트레스처럼 말이야. 그런데 어머니한테는 그것이 사랑이고 행복일 수 있지만 나에게 윤이 말은 과연 그런 것일까 잘 모르겠어.


  애써 그는 태연한 척하고 운전만 하고 있었어. 시간이 흐르기만 하면 해결된다는 표정으로. 곧 진이가 내리고 윤이도 내리겠지. 시간이 바뀌고 공간이 바뀌면 생각도 바뀔 거야.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니 윤이를 아프게 한 건 그가 먼저였어. 수업 시간에 문제를 풀다가 뒤를 돌아보는 윤이에게 이렇게 말했거든.  


  “뒤돌아보지 마. 뒤돌아보면 네가 아니?”


  그는 자신이 했던 말이 갑자기 후회스러웠어. 이미 흘러가 버린 말이 돌아와 그를 후려치는 느낌이었어.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 윤이는 겉모습과 달리 마음이 크지 않았지. 사소한 말에도 서운해한다고 할까. 그래서 매번 그와 윤이 사이에는 사소한 것들이 끼어 있었어. 몇 번이나 그는 윤이와 가까이 지내지 않으려고 한 적이 있어. 다른 아이가 세 번의 경고 끝에 손바닥을 한 대 맞게 되었을 때, 옆에 던 윤이가 맞지 말라고 부추겼으니까. 윤이가 무어라고 했느냐고? 아마 이랬을 거야. 네가 맞으면 우리도 다 맞는 거야, 버텨! 이 말에 그는 화가 났고 아이들을 강하게 몰아붙였어. 연관된 아이들이 모두 손바닥을 맞았지. 그러다 마침내 돌고 돌아 윤이 차례가 되었어. 그는 어땠을까.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까. 아무튼 그는 딱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윤이의 손바닥을 때렸어. 이것을 윤이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어. 다음 시간에 윤이는 항의의 표시로 책을 내지 않고 버텼어. 그는 화가 나서, 어서 책을 펴야지, 라고 말하는 대신, 넌 여기 왜 앉아 있냐고 고함을 질렀고. 그런데 그 순간 윤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어. 문밖에 들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피부가 하얗고 볼에 점이 있는 윤이가 서글프게 우는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자기 일인 양 지켜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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