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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Aug 22. 2024

15. 학원 그만두고 싶다

  15. 학원 그만두고 싶다

몸살이 겹쳐 힘이 들지만, 쉴 수 없었을 때 원장이 했던 말이 그에게 떠올랐어. 저는 학원 차리고부터는 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가 없어요. 그 뒤로 그는 아프거나 힘들다는 말을 원장에게 할 수 없었지. 수학 선생이나 영어 선생에게도.


  아픈 순간에 생각하는 것은 모조리 아픈 것투성이야.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늘 아팠던 것처럼 여겨지니까. 청소년기에도 힘들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힘들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그건 속임수였어.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도 일어나고, 나쁜 일도 일어나지. 희망이란 단어를 가슴에 품든 안 품든 말이지. 그러면 희망이란 말은 소용이 있는가. 아마 있을 거야. 희망이라는 말을 떠올리거나 입으로 발음함으로써 좋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좋은 기분을 불러들여 현재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거지. 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사유인가.  


  요즘 그는 자주 원장에게 혼나고 있었어. 어제도 원장에게 혼났는데 화가 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는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화풀이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거든. 아니, 무슨 말을 했다가는 예기치 못한 사달이 날 것 같아 불안해 그랬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오늘 다시 혼이 난 거야. 다른 이유도 아니고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떠들어서야. 교무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가 참을 수 없어 뛰어 들어온 거지. 그는 원장이 나가고 난 뒤 견딜 수 없이 우울해졌어. 아무리 인생이 되풀이라지만 그는 늘 그대로였어.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원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 해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하고. 그는 자신이 ‘일못’이 아닐까도 생각했어. 어디에 가더라도 존재한다는 일못. 하긴 모든 사람이 다 일을 잘할 수는 없지. 불만이 없이 살 수도 없고, 또 욕심 많은 사람들 대신 좋은 사람들로만 가득 찬 세상이 만들어질 리 없고. 사람은 몇천 년 전이나 달라진 게 없다잖아. 이집트 벽화에 쓰여 있다는, 요즘 젊은 놈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말처럼.  


  “죄송합니다.”


  그는 점심때 낙지 정식을 먹으러 가서 원장에게 사과했어. 그래야 자신의 기분이 아니라 원장이 마음을 풀 것 같았거든. 원장이 그를 쳐다보았어. 그런데 원장은 그가 바라는 것처럼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라고 말해 주지 않았어. 원장은 단지 심각하게 듣는다는 표정으로 답례를 했어. 그 면상에 그는 왜 나더러 그만두라고 하지 않지요, 너무 이상하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그는 더욱 우울해졌어.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원장은 월급도 제날짜에 주지 않았어. 학원비 들어오기로 한 게 늦어진다면서 조금씩 나누어 주기도 하고. 그가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아예 잊고 있었던 것처럼 하루를 넘기기도 했어. 이후 그는 월급 날짜가 되면 꼭 문자를 넣었어. 얼마라도 받아야 살림을 할 수 있었으니까.


  오후 내내 그는 불만스러운 시간을 보냈어. 어쩌면 희망이 없이 이런 상태가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해졌고. 물론 이것은 맞지 않아. 늘 그 상태가 이어지지는 않지. 감정의 속임수일 따름이지. 그랬다가는 지구상에 살아있을 사람이 없지. 단지 늘 그 상태가 이어질 것처럼 비관적인 감정이 회오리를 치며 더 깊은 골을 파는 거지.


  시험대비기간은 늘 길었어. 아이들에게도 강사들에게. 예상외로 너무 길어져 힘들다는 것도 있지만 정작 그가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거였어. 감기에 걸려 아플 때, 아프냐고 물어봐 주지 않는 거였어. 물론 직장이라는 게 서로의 마음을 보살펴 주는 곳은 아니지. 의도적으로 실적과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지. 경쟁이란 나쁘게 볼 만한 게 아니야. 선의의 경쟁이라는 게 얼마나 좋은가 말이야. 언젠부터인가 누구에 의해서 유포된 세뇌 용어처럼 말이지. 하긴, 원장이 이런 걸 물을 사람은 아니었어. 그간 지내온 바에 의하면, 절대 그럴 리 없지. 물어보았다가 혹 난처한 상황을 만날까 겁이 났을까. 그로서는 알 수 없지만 원장 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 게 틀림없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학원을 그만둔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어. 내가 당장 그만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원장의 배려로 학원에 같이 다니는 내 아이들은 어쩌지? 다른 학원으로 같이 가면 되겠지만 내 처지가 쉽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이보다 어려울 때가 있었던가. 많았지만 어떻게든 지나왔고 그 시간은 고통의 기억으로만 남았지. 그러고 보면 오래 사는 노인들이 존경스럽군. 꼭 이 나이까지 살겠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닐세. 사람 사는 게 꼭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어찌하다 보니, 하루하루 살다 보니 이 나이까지 온 거지. 그는 노인들이 했을 법한 말들을 생각해 냈어. 그렇지, 하루하루 견디며 사는 거지.


  고등부 수업을 하면서는 더욱 아래로 가라앉았어. 아마 조신 설화를 공부하는 중이었을 거야. 그는 조신 설화에 대한 핵심을 칠판에 적고 읽었어. 알다시피 조신이라는 사람은 원래 강릉에서 장원을 관리하는 사람이었어. 나중에는 승려가 되었지만. 그런데 이 사람이 우연히 만난 군수의 딸을 보고 홀딱 반해버린 거지. 이후 조신은 낙산사 관음상 앞에서 정성을 다해 빌었어,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그렇지만 그녀는 상대가 있어 얼마 후에 결혼을 해버렸어. 조신은 울면서 부처님을 원망하다가 잠이 들었어. 꿈인가 생시인가 그녀가 나타나, 제가 사랑한 사람은 오직 당신이라고 말하지. 조신은 기쁜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가 그녀와 함께 다섯 남매를 낳고 사십 년을 살았어. 이것으로 해피엔딩이 되었다면 독자로서 마음이 아프지 않았겠지만, 이 이야기는 아니야. 이후 사랑했지만 가난했던 두 사람은 자식들을 데리고 10년을 걸식하게 돼. 큰아들은 굶어 죽고,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한 두 사람을 열 살 먹은 딸이 빌어 먹였는데 그만 개에게 물려. 결국 두 사람은 자식들을 나누어 헤어지기로 했어. 그러면서 잠이 깨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그는 갑자기 울컥하는 걸 느꼈어. 꼭 자신의 일처럼 느껴진 거지.


   다음 날도 그는 조신의 이야기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며 시간을 보냈지. 그런데 오후 무렵에 둘째 딸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분을 날아가게  만들었어. 사실 그가 학원에 버티고 있는 것은 두 딸 때문이기도 했어. 자신의 수입으로는 학원을 보낼 처지가 아니었지만 그가 강사였기 때문에, 물론 원장의 배려도 있었지, 학원 혜택을 보게 된 셈이었으니까.  


  키가 작아 꼬맹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둘째 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랬어.


  “전체 과목 중에 하나나 둘이 틀린 것 같아요.”


  “오 마이 갓, 갓가리 갓!”


  그러나 날아갈 듯한 기분은 그가 중1 수업을 시작하면서 사라지고 말았어. 1학년은 여학생이 두 명이고, 남학생 네 명이었어. 여학생 두 명 중에는 그의 첫째 딸 영현이고. 한 명은 나중에 등장하겠지만 정이라는 애였어. 이 반은 늘 여학생이 적은 반이었는데 둘은 다른 여학생이 들어오기 전까지 친하게 잘 지냈어. 서로 집을 오가기도 하고 같이 시험공부를 하기도 하고.  


  준이라는 아이가 두 친구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분위기도 좋았어. 준이는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크게 웃거나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았고. 그런데 어느 날 준이가 두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어. 두 녀석이 들어온 후 차분하던 분위기는 확 바뀌어 버렸어. 한 마디로 그 애들은 굴러온 돌이었어. 수업 중에 휴대폰을 수시로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잡담하거나, 샤프나 지우개를 던지기도 하고. 그는 새로 온 아이들이라 조심스럽게 주의를 주었어. 그 애들에게도 적응기라는 게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새로 온 아이들은 좀 별난 데가 있었어. 대부분 이제 막 학원에 발을 디딘 애들은 조금 움츠리거나 눈치를 보는 데 애들은 그런 구석이 전혀 없었어. 그가 주의를 주어도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았어. 한마디로 그때뿐이었어. 그는 또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어. 녀석들을 한 명씩 교무실로 데려가 주의를 주어야 하나. 집에 전화를 돌려야 하나. 그러면서 이런 애들을 데려온 준이가 원망스러워졌어. 자식이, 웬 이런 애들을 데려온 거야. 수시로 이런 맘이 들었지.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준이가 스스로 아이들을 데려오겠다고 나섰을 리 없었어. 원장이 먼저 준이에게 알랑방귀를 뀌었을 거야. 한 사람 데려오면 얼마씩 준다고 꼬드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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