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을 때 원장은 이빨이 하얗게 드러나도록 침팬지처럼 웃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성난 황소 같았어. 보이는 족족 그대로 들이받을 기세였어. 오죽하면 유치원을 운영하는 사모님이 제발 그만 성 좀 내라고 했을까. 그걸 그가 어찌 알게 됐느냐고? 어쩌다 한 번씩 그는 원장의 신상에 대해 들었어. 그가 물어보아서가 아니라 기분이 내키면 원장이 신상을 한 번씩 털어놓기 때문이었어. 그가 물어보았느냐고? 그럴 리가. 그도 이상하다 싶기는 했지. 그가 보기에 원장은 인정을 쓸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섬세하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거든.
“저는 아내에게 꽃 선물을 안 해요. 한 번은 신혼 때인가, 꽃다발 선물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 거예요. 그 뒤로 저는 꽃을 안 사요. 그건 내 마음을 처박았다는 뜻이거든요.”
원장의 말에 그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어. 아마 원장에게는 들어줄 상대가 필요한가 보다, 생각했을 따름이었지. 무어라고 대꾸하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 더구나 그는 원장보다 10살까지는 아니지만 나이 차이가 좀 났어. 옛날 어느 누가 열 살까지는 친구라고 했다지만,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말을 거스르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를 통과해 왔어. 나이에 따라 음식을 먹는 순서 같은 것이 정해지는 사회를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는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감탄했다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이지. 장유유서가 존중되는 사회는, 즉 말대답을 할 수 없는 사회는 나이가 무기인 사회, 그러니까 한쪽은 말하기만 하고 한쪽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인 사회지.
원장은 젊은 시절에 공황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어. 절에서 성명 수리학을 배운 것도 그즈음이었다고 했어. 어쩌면 그는 수도를 닦는 길로 나가려고 했을지 몰라. 사랑하는 여자도 없었고, 딱히 세상에서 자신이 할 만한 일을 찾지 못해 방황할 따름이었거든. 어떻게 해서 거기까지 흘러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어떻게 해서 절을 나오게 된 것처럼 알려진 바가 없어. 자신의 입으로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았으니까. 행자승으로 주지의 공양을 거들다가 자신의 길이라는 확신이 들면 터를 잡으려고 했던 건지도 몰라. 그러나 우연히 학원에 나가 일을 하게 되었고, 고향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현재의 사모와 결혼을 했어. 아니 순서가 바뀌었을 수도 있어. 결혼을 먼저 하고 학원을 나중에 나갈 수도 있어. 서로가 간절히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수줍은 한국 남자들이 그렇듯이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친구니까 반말로 그랬지.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면 결혼하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니까. 아무튼 그 일은 의외로 원장의 적성에 잘 맞았어. 물 만난 고기처럼 원장은 집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일에 열중했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신명이 났다고 해야 하나. 원장이 가르치는 반은 성적이 오르고 인원도 많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어. 그 이면에는 물론 원장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지. 학부모들하고 전화를 해서 사정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고, 학원에 오지 않으려는 아이를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돈가스를 사주며 달래서 데려오기도 하고. 울산에서 처음으로 토요일 수업을 시작한 사람이 원장이었어. 이건 본인의 입으로 한 말이니 확실한 거지. 그것 때문에 동료 강사들에게 왕따를 당할 정도라고 했으니까. 이후 다른 학원들도 어쩔 수 없이 벤치마킹을 하게 됐는데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었어. 토요일에 쉬고 싶어도 경쟁 구도에 놓인 학원들은 따라가지 않았다가는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처지가 되거든.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때 원장도 좋은 선생님이었던 셈이지. 어쩌면 원장이라는 자리가 좋은 선생님의 기질을 앗아가 버렸는지도 모르지. 하여튼 원장은 결혼하고 학원에 다니면서 승승장구했어. 차츰 월급도 많이 받게 되었고, 직급도 부원장이 되었어. 학원 하나 차릴 정도의 돈도 모았지. 그 사이 원장 사모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어. 어린이집을 다니며 차츰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어. 장차 어린이집 원장이 되리라는 꿈을 지니고.
원장은 초등부 수업이 끝나자 운행을 하기 위해 열쇠뭉치를 들고 나갔어. 그런데 7시 무렵 중등부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나타난 원장은 매우 화가 난 모습이었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몰라요. 아니 사회쌤은 둘이 그러고 있는 것도 몰라요. 같이 탄 애들이 싫어하는 데도.”
그는 무슨 일인가 싶었지. 나중에야 그는 알았어. 영지가 훈이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는 걸 말이지. 옆에 국이나 동이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견딜 수 없이 화난 표정을 짓고 있고.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사회 선생은 공부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많았어. 인터넷강의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그 기질은 현실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어. 원장이 한 번씩 말하는 것처럼 융통성이 없이 답답하기만 했어. 한 마디로 공부를 현실에 써먹을 수 없었던 셈이지. 그 이후 훈이와 영지는 볼 수 없었어. 학원에서 사라지고 난 이후 그는 사회 선생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돌잔치를 할 때에야 보았어. 그것도 영지만 보았어. 그때 처음으로 그는 학원과 학교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학원에서는 교통사고나 죽음처럼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과 이별하게 된다는 걸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