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허연 의사 선생님은 그가 혀를 잘못 놀린 탓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웃기는 했지만. 이건 일종의 직업병이었어.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질병인 셈이지.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자체를 사랑했어. 마치 이 일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말이지. 그러나 그 일을 감당하기에는 힘이 든다고 할까. 자신의 것을 빼서 주어야 하는 약한 존재라고 할까.
혀는 가르치는 일의 정점이었지. 그것을 움직이지 않고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는 거지. 아무튼 그는 혀를 움직일 때마다, 입안 이곳저곳에 혀끝이 닿을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픔을 느꼈지. 그것이 지옥이라고 느낄 정도로. 그래, 지옥이 대단한 것 같지만 그냥 이게 지옥이야.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 천국이고. 그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지.
“헤르페스에요.”
이 신은 날개 달린 모자와 신을 신고 뱀을 감은 단장을 짚으며 죽은 사람의 망령을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헤르메스와 얼마나 닮아있을까. 아랫니 중앙 부분 치아가 고르지 못한 탓으로 그의 혀는 끝부분이 둥글지 않고 각이 져 있었어. 혀끝에 생긴 하얀 구멍. 어찌 보면 옴팡진 뱁새나 쥐의 눈 같기도 했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돼요. 비타민은 잘 먹고 있지요?”
“네,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하루에 천 밀리그램 한 알 먹고 있어요.”
“그러면, 두 알씩 먹어요. 그래도 되니까.”
“2개나요?”
“네.”
그는 학원에 나가기 전까지 과묵한 편이었어. 누군가 묻기 전에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어.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도 있었으니까. 이런 그가 신기했는지 어떤 사람은 장난스럽게 그랬어. 입에서 똥 냄새 안 나냐고. 그는 수다쟁이 같은 그자를 한 번 보며 그럴 뻔했어. 입에서 지옥이나 아수라 냄새가 안 나냐고. 그러나 입으로는 담담하게 그랬지. 아직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다고.
“저번처럼 혀에 약을 좀 발라주시면 안 됩니까?”
“알부칠 말이군요. 여기 앉아요.”
그는 육십 대 후반의 의사가 시키는 대로 등받이가 있는 진료 의자에 앉았어. 코가 큰 의사는 체구가 마른 편이었는데 돈을 버는 데 그다지 열심이지 않았어. 의사는 환자들을 만나 자신의 의술을 베풀고 싶어 했어. 그래서 감기약을 절대 독하게 짓는 법이 없었어. 감기는 가만두어도 낫는 병인데 부러 항생제를 쓸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인지 노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고 그의 감기는 잘 낫지 않았어. 보험 안 되는 약은 잘 처방하지도 않아 약국도 불만이 많았어. 그러나 의사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어. 수입이 부족하면 큰 병원에 마취하러 다녔거든.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의사가 대형병원에 있을 때 한 번 의료사고가 있었던가 봐. 그냥 소문일지도 모르지만 의사는 환자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좋아했어.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기도 하고.
학원으로 돌아온 문기 뒤에는 새로 들어온 아이들 몇몇이 낯선 얼굴을 쳐들고 있었어. 꼭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어 학교에 갈 때처럼 가슴이 울렁거렸어. 그중 짓궂은 어린애처럼 장난기 어린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상기라는 애가 앉아 있었어. 문기 등 뒤에 숨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거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스마트폰은 이제 아이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어. 하물며 아이에게서 스마트폰을 뺏는 것은 고릴라에게서 새끼를 빼앗는 것이나 다들 바 없다는 교과서 만화가 등장했을까. 그에게 원장이 한 말이 생각났어. 상기에 대한 거였지.
“상기는 엄마 아부지가 장애인입니다. 집안에서 저 혼자 말을 하고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엄마 아부지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폰도 지 맘대로 좋은 거 사고, 몰래 돈도 갖다 게임 하거나 놀러 가는 데 쓰고. 참 나쁜 놈이요, 그놈은.”
그는 원장의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시간이 말해 주겠지. 새로 온 아이들로 인해 분위기는 좋아 보이지만 얼마 가지 못할 것이고. 문기가 하는 짓을 새로 온 상기나 바이런처럼 미남으로 보이는 하이드가 따라 하지 않을 리 없어. 며칠 후 이렇게 행동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임을 감지하면 본색을 드러내게 되지. 단지 며칠, 장소나 인물이 눈에 익는 동안 잠잠한 거지. 이런 것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할 거야. 동물보다 조금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본성은 몇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게 없으니까. 아니 동물보다 더 낫지 않을 때도 많지.
수업을 시작한 지 20여 분이 지나자, 그는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들고 다니던 유머 공책을 뒤적였다. 그 안에는 그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각종 유머가 들어있었어. 수업 중간에 유머를 하는 것은 효과가 좋았어. 그가 개그맨처럼 유머를 풀어내면 너무 재미있어 아예 바닥에 뒹굴던 초등학생도 있었어. 그런 뒤 그는 중간중간 아이들 표정을 보며 완급을 조절해야 했어. 그중에 가장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안득기 시리즈였어.
경상도 어느 시골 학교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 5학년 초등학생 안득기가 졸다가 선생님께 불려 나갔다.
A : 니 이름이 뭐꼬?
B : 안득깁니다.
A : 안드끼나? (큰소리로) 니 이름이 머냐꼬오? 듣끼제?
B : 예!
A : 자슥바라. 니 이름 머라꼬 안 무러보나?
B : 안득깁니다.
A : 정말 안드끼나?
B : 예!
A : 그라모 니 성 말고, 이름만 말해 보그라.
B : 득깁니다.
A : 그래. 드끼제? 그라모 성하고 이름하고 다 대보그라.
B : 안득깁니다.
A : 자슥바라. 드낀다캤다, 안 드낀다캤다. 니 시방 나한테 장난치나?
B : 샘요. 그기 아인데예.
재미있는 유머로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상기가 아예 스마트폰을 드러내놓고 게임을 본격적으로 할 태세였어.
“그거 스마트폰 아이가?”
그의 장난스러운 말에 상기는 능글능글하게 웃었어. 어느 모로 보나 당당한 모습이었고. 지금까지 눈치라고는 보지 않고 살아 온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지.
“쉬는 시간인데 게임 하면 안 됩니까?”
“누가 쉬는 시간이라고 그래.”
그는 유머를 접고 수업을 계속하기로 했어. 화가 난 그는 녀석의 팔을 한 대 툭 때렸고.
“참 나!”
그에게 상기가 갈색 뿔테 안경을 낀 눈을 부라리기조차 했어. 그는 애써 동그란 눈을 무시하고 수업을 계속했어.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 다녀오자마자 그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상기가 곧장 집으로 가버렸다는 거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어. 그다음에 일어날 일이 훤하게 보였거든. 마치 불을 보는 것처럼. 일단 원장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그를 부를 테고, 무슨 일인지 물을 거였어. 다음에 상기 집으로 전화를 하고, 애를 달랠 게 분명했어. 그것은 다음 수업에도 영향을 미쳤어. 그 생각으로 인해 집중이 되지 않고 마음이 산란했거든. 어쩌지 내가 먼저 그 녀석 집을 찾아가 봐야 하나. 아니야. 전화를 먼저 해 보는 거야. 하지만 시간이 없지 않은가. 쉬는 시간이 겨우 5분인데. 무슨 말을 하지. 급기야 그는 제기랄, 당장 그만두고 싶어졌어.
결국 그는 저녁에 짬이 났을 때 상기에게 전화를 걸었어.
“여보세요?”
“왜요? 무슨 일인데요?”
“괜찮냐?”
상기는 전화를 건 사람이 그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어. 그는 모욕감을 느꼈지만 즉각 끊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아이들이란 부모나 선생님을 끊임없이 테스트하는 존재야, 이런 생각도 하고.
그날 학원 일이 끝나기 전, 쉬는 시간에 원장이 그를 불렀어. 그는 상기에 대해 물을까 두려웠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어. 원장은 복도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었어.
“여기 앉으세요.”
이후 원장이 말을 시작했지만 알아듣기 힘들었어. 목소리도 작았지만, 아이들이 옆에서 쉼 없이 떠들었기 때문이었지. 원장은 아마 퇴직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 같았어. 그 말에 그는 귀가 솔깃해졌어. 겨우 퇴직금이라는 단어는 알아들었지만 무어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어. 왜 하필 이런 곳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할까. 불만이었지만 퇴직금이라는 단어는 귀가 번쩍 뜨이는 단어였어. 상기의 일을 추궁하는 것이 퇴직금을 주겠다니. …1달 월급이 150만 원이니까, 15만 원이면 일 년에 180만 원이 적립되는 거지. 원장이 평소 이런 말을 자주 하기는 했어.
“저는 10년 동안 학원 생활 했지만 퇴직금이 없어 남은 게 없어요.
게다가 학원 일은 늘 불안하고 아슬아슬하지 않은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니. 그는 이런 직장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퇴직금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하긴 학원 원장들 사이에 강사들에게 퇴직금을 주는 원장이 간혹 있었어. 어리석고 바보 같다는 주위의 비아냥거림을 견뎌야 했지만.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원장이 톤을 낮추어 시끄러운 곳에서 말할 때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어. 뭔가 그를 꼬드기려는 뜻이 있었던 거지. 마지막으로 그가 원장을 만났을 때 그가 퇴직금에 대해 물었거든. 그런데 원장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 그건 서두를 필요가 없겠어요. 곧 드러날 테니까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