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도둑 9

by 양산호

***

오전에는 그래도 활기가 있어보였는데 아내는 축 쳐져 있다.

“내 놓은 아파트가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아내의 말에 나는 그나마 낙천적으로 유도한다.


“조금만 기다려 보면 나갈 거야.”

“……마음이 심란해 죽겠어.”

사실 내가 위로를 받고 싶어 전화했는데 아내도 그럴 여유가 없다.

“일은 언제 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졌다. 아내도 내게 기대했던 것을 얻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무언가 좀 더 다른, 그러니까 이 상황이 역전될 만한 놀라운 일, 아내는 그걸 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것도 줄 수 없다. 혹 아내가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이 사무실 문을 통과해 의자에 앉은 직원들을 보자 두려움으로 서서히 바뀐다.


행여 이들 중 누군가가 연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이곳을 그만두어야 할 거야. 매일 내가 은행직원과 함께 부산거래소로 가지고 가는 것은 몇 천, 몇 억의 어음들이니까. 궁박한 처지에 떨어진 나는 믿을 수 없는 인간이 될 거야. 신용의 증발과 함께 내 안에 더불어 살고 있는 짐승의 욕심이 언제 머리를 들지 모르지. 그건 나도 모르지.


‘미안한 말이지만, 이젠 이곳을 그만두었으면 하네.’

그 말을 하는 자는 누구일까. 지부장일 거야. 고개를 떨군 채 이 말을 듣는 자는 나이고. 부르르 경련을 떠는 내 얼굴이 보인다. 지금껏 나는 한 번도 좋은 역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주의를 듣고 야단을 맞았을 것이고 거기에 대고 무어라 할 말이라고는 해본 적 없을 것이다. 아이의 손을 피해 움츠려들기만 하는 민달팽이 모습이 보인다.


한참만에야 민달팽이가 고개를 들고 혼잣말을 한다. 나도 주위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뭔가 멋지게 보이고 싶을 때가 있기는 있지. 그러나 나는 누군가를 혼내거나 나무라는 위치 가까이 가 본적이 없어. 그런 사람 옆에 당당히 서 있던 적도 없고. 나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어. 불온한 씨앗을 품고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만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씨앗. 그런 내가 가까이 가면 사람들은 싫었을 거야.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걸까.


아직 직원들이 눈치 챈 것 같지는 않다. 답답해진 가슴이 겨우 들썩이며 숨이 쉬어진다. 나는 몇 번 숨쉬기 운동을 하고 자리에 가서 앉는다. 계약 기간은 2년인데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하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두려울 건 뭔가.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이들은 나를 이곳에서 더 일하게 해주지 않는다. 한동안 노동자의 권리가 올라갔었다.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나 아이엠에프가 오면서 노동자의 권리는 퇴보를 시작했다. 하나 둘 수당이 사라지고, 정년 때까지 일하던 풍토가 사라지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남은 정규직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모른 체하고.


다시 밤이 왔다. 나는 서랍을 당겨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을 꺼냈다. 그는 명문 귀족출신이었지만 지리학을 연구하고 사회주의 아나키즘 운동에 투신했던 혁명가였다. 그와 같은 아나키스트들은 ‘혁명이 기존의 권력을 해체하면 모두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본성에 의해 조화로운 자연 상태로 복귀 한다고 보았다.’ 일체의 권력을 부정했고, 사상의 통일을 거부했다. 그는 아마 인간 본성을 아주 대단한 것으로 보았나 보다. 하긴 인간 본성에 불성이 있다면 그건 가능할지 모르지.


나는 국가의 폐지를 바라는 자이다. 국가는 도덕과 문명이라는 구실 아래 인간을 노예화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며 약탈한다.… 나는 재산의 개인 상속도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이런 바쿠닌의 말은 루소의 사회계약설을 공격하고 있었다. 사회계약설은 역사적으로 거짓말이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노트를 한 권 꺼냈다. 내가 쓴 단편소설이다. <가장 재수 없는 도둑의 죽음>이라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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