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도둑 10

by 양산호

…그런데 이런 태도가 큰 문제로 대두된 적은 없었어. 부모님은 그 당시 대부분 부모들처럼 아이란 제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며, 낳아 놓기만 하면 저절로 자란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 가축에게 먹이를 주듯 자식에게도 그랬지.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았어. 그들은 자신들의 무관심을 은폐하기 위해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고 사소한 잘못에도 벌을 가함으로서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고정적으로 사고하는 동물로 만들려고 했거든.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자식은 자신의 눈으로 쉽게 세상을 보았을 것이고, 어느 때 부모의 모습이 진짜인지 헛갈리지 않고 알 수 있었으니까.


이런 그가 그리고 있던 부모는 어떤 모습일까. 나중에 그가 결혼을 해서, 부모들이 곧잘 하는 말처럼, 자신이 부모가 된 후에 아내에게 한 말을 생각해 보면 자식에게 요구사항이 많은 것은 아니었어. 글쎄, 그는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부모란 아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한다고 말이지. ― 그는 이 부분을 줄로 그었다가 다시 살려 놓았다.


아무튼 그는 어머니에게 응석 한 번 부려본 적이 없었어. 그가 내성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머니 쪽이 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거든. 어머니는 늘 농사일로 바빴고, 말없이 무능한 남편을 꼬드겨 술을 마시지 않고 일을 하도록 해야 했으니까. 그러니 자식에게까지 건너 올 사랑이 없었다고 봐야 하나. 그렇지만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어. 왜냐하면 어머니가 어린 그에게 했던 얘기들이 산더미처럼 많았거든. 그러니까 어머니는 자식에게 얼마든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뒤에 에미가 있다는 애정을 확인시켜줄 수도 있었어.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단 한 번도.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시집살이의 고통에 대한 넋두리와 시댁식구와 이웃에 대한 험담만 했어.


그게 무슨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야. 한국에서는 딸이 결혼해서 시댁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당부를 하거든. 얘야, 시집에 들어가서 살면, 무슨 말을 들어도 못 들은 척 귀머거리 3년, 무엇을 보아도 못 본 것처럼 3년, 어떤 일을 알아도 함부로 말 하지 말라고 벙어리 3년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이지. 이런 말을 생각해 볼 때 그가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어. 시집살이를 시작하는 며느리는 일단 그 집의 가장 낮은 계급이 되는 거야. 군대로 치면 열외도 없는 이등병 막내라고 할 수 있지. 어린 시동생의 시중까지 도맡아야 했으니까.


호칭도 그래.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으로 불렀는데 결혼하면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했어. 여동생은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고 말이야. 얼마나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에게 무참히 짓밟혔으면 그럴까 싶었지. 아마 대부분의 며느리는, 그때까지 배운 지식을 모조리 세팅해야 하는 신병과 다를 바 없었을 거야. 자신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의심해야 할 정도의 극한상황까지 갔을 것이고. 아무리 좋은 감정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행운으로 좋은 시댁에 들어가 살았다면 모를까.


단지 그녀의 잘못이 있었다면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어른이 아니라 아이였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품게 된 한이 너무 커서, 달리 말하면 자기를 지나치게 애처롭게 보아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여유가 없는 처지였다는 것일 거야.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댁 사람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은 모두 몹쓸 사람이 되었어.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굳이 그것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어머니의 얘기가 모두 옳은 줄 알았어.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지.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에는 사랑이나 자비 대신에 왜 그런 미움이 들어앉게 되었나요, 라고 한 번도 묻지 않았어. 또 왜 어머니에게는 좋은 친구가 있어 이런 얘기를 들어주지 않나요, 라고 캐묻지 못했어. 그가 하는 역할은 늘 정해져 있었어.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즐거워하거나 존경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었어. 그녀도 바라는 것도 자식의 이런 태도였을 거야.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야.


그러다 보니,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어머니에게 할 기회가 없었어. 그는 입이 있었지만 늘 귀에 신경이 가게끔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무슨 일이 있구나. 엄마한테 얘기해 줄래?”

이런 말들을 훗날 그는 오로지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에서 보았어.

“괜찮다니까. 엄마한테 이야기 해 봐. 다 들어줄 테니까.”


이런 말들은 그가 어머니에게 간절하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어. 그렇지만 한 번도 이런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어. 당연히 그가 입 속에서 뱅글뱅글 굴렸던 말들은 한 번도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지. 그것은 어디로 갔을까. 받아들여진 적이 없는 그의 말들. 그것은 허공으로 흩어지는 대신 가슴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였을 거야. 단지 아이와 어머니만이 몰랐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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