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고스 Jul 18. 2023

부자들을 존경한다

나는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렇지 않다면 '뛰어나다'고 여길 순 있지만 존경심이 들진 않는다. 어릴 때 숱하게 요구받았던 '위인전 전집 읽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중에는 왜 위인이라 칭송받는지 모를 사람도 몇 있다. 기준은 이렇다.


"이 분 덕에 오늘날 내가 누리고 있는 건 뭐지?"


이 기준을 엄격히 들이대도 여유있게 통과할 만한 위대한 족적을 남긴 분들도 많다. 그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대상은 '부자'다. 미디어에서 그렇게 탐욕과 부패 덩어리로 묘사하지 못해 안달난 우리의 그 부자들. 부자라는 비슷한 허수아비를 여럿 세워놓고 지속적으로 '악인' 이미지를 은은히 각인시키며 대중들로 공통된 유사 기억을 공유하게끔 만든다. 부자는 항상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것 같고 항상 친인척을 등쳐먹을 것만 같다. 실제 재벌을 만나서 밥 한 끼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재벌'하면 막연한 다툼과 비리의 온상을 떠올린다.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당한다'.


나는 부자들이 암만 자기들끼리 상속 문제로 치고 박고 싸우건 돈 욕심에 환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건 관심 없다. 내가 그 자리여도 그럴테니까. 그것과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부자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라는 이로움을 준다. 특히 재벌은 국가의 기둥이다. 몇몇 정부가 정책으로 경제를 죽쒀놔도 한국은 대기업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들이 정부에 갈취당하는 상속세, 법인세, 증여세, 소득세는 우리의 공유 자본과 복지로 돌아온다. 그들이 이용하는 비즈니스석과 퍼스트 클래스 덕에 항공사는 적자를 면한다. 우리가 값싼 이코노미석에 앉아 전세계를 다닐 수 있는 건 부자들 덕이다. 


특히 故이건희 회장과 故정주영 회장을 존경한다. 내 삶에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는지 알 길이 없는 신사임당, 이이, 이황 같은 과거의 인물들 대신 지폐의 주인을 꿰차야 한다고 늘 느끼고 있다.


존경심은 감정의 영역이겠으나, 변덕스런 감정이나 유사 기억이나 첫인상 따위에 의존하여 존경을 결정한다면 그 분들에게 실례가 된다. 이성적 기준을 가지고 역사와 현재를 판단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산물(by-product), 선택과 집중의 값진 보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