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유서가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유서의 두 번째 장

by 강유원

묵묵히 숨이 멎길 기다렸다. 호흡을 걸고 당긴 러시안룰렛의 룰을 따른 것이다.


내 삶은 늘 익살이길 바란 애처로운 과장이었기에 마지막 과장을 늘여놓자면, 나는 숨이 멎길 간절히 바랐다.


부디 오해 없길 바라며 덧붙이자면, 이는 절대 내 삶이 불행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생애 처음으로 논리를 구사하려는 내 이야기를 멋대로 오해해 슬퍼하는 일이 적길 바란다.


행복이라는 개념이 주는 인위적인 추상이 싫어 잘 쓰지 않지만, 불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구체적인 이미지는 꽤 효과적인 감상을 남기기에 이를 빌려와 쓰자면, 삶이 불행해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내게 삶은 충분히 고통스러웠지만 불충분히 불행했기에, 누군가 이를 행복이라 불러도 나는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별이 쏟아질 듯 흩뿌려진 하늘을 볼 때면 압도되기보다는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애틋한 시간을 보낼 때면 시간이 멈춰 고여있기보다는 바로 그다음 숨에 시간도 따라 끝나길 바랐다.


그러니 유서를 쓴다면 남겨진 것들이나 내가 남기고 가는 것들에 대해 쓰기보다는 한순간 툭 하고 끊긴 내 시간과 호흡이 주는 그 절묘한 안정감에 대해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이 유서가 말도 안 되는 수식어들로 지루하게 늘어지는 이유는 내가 끊고 간 단면에 차마 손대지 못하고 하염없이 그것만 바라볼 이들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익살을 부리고자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한 유서에 남겨진 이들과 남기고 간 것들에 대해 쓸 공간이 있어 다행이다.


나를 위해 썼고 나는 이미 수백 번도 더 읽은 유서가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누군가에게 수천 번 읽히며 더 이상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남겨질 것이라 생각하니, 이제는 유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짧은 단어는 이미 맥락을 알 수 없는 차원으로 넘어가버린 듯하다. 개념조차 파악할 수 없는데 내용이 어떻게 맥락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유서는 점점 더 종잡을 수 없는 글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동의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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