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리기 시리즈
잘 아실지 모르겠지만 매년 9월에 열리는 시드니 마라톤 대회는 런던, 보스턴에 이은 세계 3대 마라톤 대회입니다. 제가 92년 보스턴대학교 석사 유학시절 UCLA출신으로 같은 학과 한국 친구가 있었는데, 석사기간 동안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석이 목표라며 매주 아름다운 찰스강을 달리며 연습을 하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물론 다음에 성공적으로 완주를 했지요. 그 친구 덕분에 저도 조깅이란 걸 하기 시작했는데, 참 몸이 무거워서 달리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달기리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입니다. 남자로서의 첫 번째 체력의 한계기 오는 시기입니다. POSCO를 그만두고 미국계 은행에서 대기업담당 외환딜러를 하면서 잦은 술자리로 인해 6개월에 몸무게가 8K가 늘어 88K까지 되면서 몸과 마음이 다 무거워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때 은행 동료들 대부분 조선호텔등 은행인근 호텔에서 달기기/수영 등을 한다는 걸 알고, 저는 경제적 능력은 안 되었지만 가장 저렴(?) 한 옵션인 코리아나호텔 연간회원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2K도 달리기가 힘든 체력이었고요. 그리고 살면서 달리기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매일 속도와 거리가 늘기 시작하면서, 몸무게도 다시 줄어들고 하던 차에, 친한 POSCO동기가 10K 마라톤대회에 나간다 하여, 저도 따라 가 본 것이 여러 대회까지 참가할 정도로 마니아가 된, 달기기 시작한 약 2년 정도가 아닌가 기억합니다.
서울마라톤, 동아마라톤, 중앙일보 마라톤 10K 대회 완주를 했고요, 그다음 해에 친구 따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대회 하프에 처음 도전하여 완주를 한 것이 마지막 대회였습니다. 한 번도 10K 이상을 달려 보지도 못하고, 연습도 많이 하지 못한 채로 참가한 경기에서 너무 고생을 했고, 완주 후 양발 모두에 쥐 나 나서 극한 고통을 경험한 후, 달리기는 당분간 쉬자고 한 것이 그만 그 후로 정말 오래 쉬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운동이라는 골프의 유혹에 빠져, 그 힘든 달리기는 기억에서 지워져 갔습니다. 역시 막대기 하나 쥐고 공이라도 찾으며, 드넓은 초록빛 잔디밭을 걷는 골프가 최고의 유혹이었습니다.
제가 자발적 은퇴를 하고 48세에 호주에서 다시 공부를 하면서, 20대 학생들과 학점경쟁을 하기에는 체력과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더 많은 공부시간으로 승부를 보려 했고, 그러다 보니, 몸무게가 다시 늘고 배가 나오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다시 시작한 것이 "걷기"입니다. 일주일에 3일은 최소 1시간 이상씩 걸었고요, 동료들과 박사과정을 한 대학교가 소재한 Lane Cove National Park을 걸으며, 자연 속에서 눈과 머리를 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은 2시간 정도 걸리는 집까지 걸어서 왔고요. 정글 속에서 수많은 도마뱀(Water Dragon)도 만나고, 까마귀는 물론 이름 모를 큰 새들과도 윈치 안게 조우하면서, 정말 머리와 생각, 그리고 모든 것이 맑아지는 경험도 많이 했습니다. 제 몸이 푸른 빚 아바타가 되어가는 기분.
이런 새로운 환경 속에, 골프는 2008년 퇴사하면서 절연을 했고, 호주에 도착 후 주변에 천혜의 골프장 유혹도 다 물리치고, 다시 달리기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같이 달려주겠다는 후배를 만난 덕분이지요. 그리고 올해는 10K, 내년은 하프, 그 후년엔 완주라는 말도 안 되는 목표도 잡았었다. 기록엔 전혀 욕심이 없고, 다만 잘 걷고, 살아 있는 상태로 완주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더 나아진 나의 몸을 바치는 것이 단순한 소망이었습니다. 똥배 아저씨의 달리기 역사,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