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lison Lee Nov 25. 2021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인가.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인가.

(미혼 한정, 기혼자 해당 없음)


-


결혼 전의 나는 그랬다.


같은 메뉴도 세 번 먹으면 지겹고

좋은 옷도 세 번을 입으면 시들한데

도대체 다들 무슨 깡으로 한 사람과 평생을 살겠다고

무려 ‘맹세’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어떤 사람과 살아야 잘 살 수 있을지는

일단 다양한 종류의 사람과 독점적 연애관계를 맺으며

여러 상황을 같이 겪어 봐야 알 텐데

당시 내 주변에는 이성으로서의 남자가 거의 없었던 데다

그렇다고 아무나 막 함부로 사귈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혼자서 그 답을 찾아야만 했는데

아니 그걸 혼자 도대체 어떻게 하냐고.


-


뾰족한 선택지가 없던 나의 대안은

‘연애 시뮬레이션’이었다.


사실 이건 친구들의 연애 상담을 해 주면서

의도치 않게 시작되었는데,

도대체 지들보다 더 빈약한 연애사의 나에게

왜 자꾸 와서 물어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찐 친구들에게만큼은 오지랖 대마왕이므로

그들이 울고 웃을 때마다 나도 똑같이 그들이 되어

우겨도 보고 속여도 보고 싸워도 보면서

모의 연애의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마침 나는 어릴 때부터 시뮬레이션 광이었기에

혼자 상황을 상상하는 데에는 제법 재주가 있어서

내가 ‘잘 아는’ ‘모든’ 남자들을 남편의 위치에 놓고

Virtual Marriage Simulation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 남동생, 학교 친구, 선후배, 교수님,

당시 유행하던 미드와 각종 소설, 영화의 주인공들까지.


그때의 나는

이상적인 상대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남자를 만나야겠다, 이런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


이를테면

smart and rich, tall and handsome,

sweet and tender 같은. 다들 알잖아, 왜.


그런데 나에게 연애 상담을 걸어오는 건

여자 친구들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남녀의 입장을 바꿔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렇게 입장을 바꿔, 관계를 거슬러, 상황을 뒤집어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니


문득 연애와 결혼에 대하여 이건 어쩌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란 오히려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하는 문제였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와 문제는

그게 애정이 됐든 시간이 됐든 다른 뭐가 됐든,

결국 ‘본인이 원하는 것’과 ‘상대가 줄 수 있는 것’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하고 또 해결되는 것이었으니,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하는 질문은

타인을 찾아 헤매는 ‘누가’가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는 ‘무엇을, 어떻게, 왜’ 여야 하는 것.


‘사람에 대한 나의 우선순위’는 어떠하며

또 반대로 나의 삶에 있어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

그리하여 종국에 내가 결혼 함으로써

이루고자 원하는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를 아는 것.


그걸 파악하지 않고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나의 행복을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반대로, 그걸 깨닫게 된다면

나는 누구를 만나도 그럭저럭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래서 관점을 바꾸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배우자로서의 내’가 가진 장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그렇게 ‘나’에 무게추를 두고 다시 돌린 시뮬레이션은

같은 상대를 두고도

이전의 그것과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대충 보면 영리하거나 혹은 까다로워 보인 다지만

알면 알수록 허술하기 짝이 없고

사실은 별 복잡한 생각을 안 하고 사는 데다

쉽게 방전되는 유리 체력과 수면 과잉의 인간이고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만만한 것 같지만

의외로 매우 의기소침하게

스스로의 실패를 두려워하는 날이 많았으며


나의 의견이 반박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노력이나 성취가 폄하되는 것에는

내심 크게 상처를 입었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과한 치장과 거친 언어를 입은 사람에게

거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반면

거친(?) 이목구비나 감정표현에 서툰 종류의 과묵함은

그다지 큰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즉,

나는 근사한 외모를 가진 남자보다

다정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더 좋았고

사실 이건 정말 안 그럴 것 같았는데,

파트너십으로서의 인정과 존중만큼이나

어린아이처럼 마냥 예쁨 받는 것도

분명히 매우 선호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예의 없는 남자를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고

허세는 생각보다 더 더 더 별로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자세한 자가분석과 이상형의 재정의는

이후 남녀를 벗어난 다른 많은 관계에도

아주 유용한 필드 매뉴얼이 되어 주었다.


-


그러므로 결혼 전의 남녀들에게 넌지시 권하건대

잠시 봄바람에 마음이 동하거나

누가 한 번 건드린다고 아무에게나 싱숭생숭해하지 말고

차라리 이런 시뮬레이션을

다양한 상대와, 구체적으로, 많이 돌려 보시길 바란다.


실전 연애가 아니므로 n 수는 무한대이고

진짜 감정이 아니므로 보다 객관적으로 관계를 볼 수 있으며

내가 진정 원하는 ‘내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 열 명에게는 모두 다른 장점과 단점이 있다.

모든 남자가 그렇고, 모든 여자가 그렇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결혼의 모습도

열 사람이 다 다르다.


그러니 부디

상대를 찾고자 애쓰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비춰 보기를.

스스로가 원하는 삶의 그림 위에

가장 잘 어울릴 사람을 만나 서로 잘 스며들어 가기를.

그래서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기를.


작가의 이전글 매혹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