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엄마가 물었다.
OO이는 학원 어디 보내세요,
4학년이면 다들 경시 준비하던데,
그러고 보니 옆집, 윗집, 아랫집이
이미 다 대치로 이사를 갔던가.
그리고 그녀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요즘은 진로를 일찍 정해서 책도 그에 맞게 읽히고
특별활동도 맥락 있게 해야 한다고.
그러니 문과 성향인지, 이과 성향인지
이제는 부모가 파악을 해 줘야 할 때가 됐더라고.
뭐.. 나도 몇 번씩은 들었던 얘기긴 한데,
정말,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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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 내내 방황을 많이 한 축에 속한다.
흔히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종류의 방황이라기보다
진로 자체가 극단적으로 바뀐 케이스인데,
국민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내가 적어 낸
첫 번째 장래희망은 ‘앵커우먼’이었다.
(그 당시 뉴스데스크의 백지연 앵커는
존재만으로도 어린 내 눈에 가히 충격적이었다.
요즈음의 고운 아나운서들과는 결이 약간 다르다. )
그런데 나는 만 3세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국민학교 내내 우리 학교 ‘우물’ 안에서는
피아노를 제일 잘 치는 학생이었으므로
고학년이 되면서는
당연히, 막연히, 근거 없이 음대를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보니
점점 내 재능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고
예술을 한다는 건 이 정도의 깜냥과 열심으로만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마침 중학교 3학년 초에 심한 폐렴으로
한 달 넘게 입원하면서 실기 준비 망했다는 핑계와
음악보다 공부가 니 적성이라시던 담임 선생님의 조언에
예고 진학의 꿈은 완전히 접었었는데
사실은 내 역량으로 명확한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그냥 저 포도 시다 했던 것이기도.
그리고 나는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친구 한 놈과 의기투합 해
그 당시 학교에 있지도 않았던 영화/음악 동아리를 만들어 학교만 파하면 비디오 대여점으로 직행했다.
신문방송학과 가서 방송하려고.
(근데 그게 정확히 뭐 하는 건지도 몰랐음.)
(비디오 대여, 로드쇼 프리미어 GMV로 용돈 탕진하는데 도움 주신 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그리하여 나는 문과로 전향하여 외고에 진학했고
똑똑한 친구들을 보면서 쓸데없이 자극되어
문과의 정점은 법대이니 당연히 나도 법대를 가야지,
막연히 법대 갈 거야 vs.(근데 신방과 가고 싶은데)의
갈래에서 또 공부는 안 하고 유희열 듀스만 쫓아다녔지.
근데 외고 학생들 특유의 치열한 공부가
무려 예술하고 싶었던 내게는 맞지도 않았고
뒤늦게 사춘기까지 왔던 탓에
야자시간마다 음악실에 죽치고 앉아 1년 반을 보내다
결국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싶어 과감히 자퇴를 했다.
(내가 특별히 ㄸㄹㅇ 였던 것은 아니고
그때가 전국 특목고 자퇴 붐의 시기였음)
다른 친구들은 다
‘서울대 가고 싶은데 내신 때문에 불리해서요’ 할 때
나 혼자 ‘선생님 저는 다시 음악 하고 싶어요’ 하는
택도 없는 소리를 남기고 학교를 떠났었지.
(죄송합니다 피바다 선생님)
그리고 같이 자퇴한 친구들과 팀을 짜서
재수학원에 반 하나 만들어달라 하여 고3을 보냈는데
학원이니 출석도 안 중요하겠다
뭐 맨날 영화 보러 조퇴하고 콘서트 보러 도망가고
학원 자습실 앞 피아노 학원에 연습실 빌려 다니고
결국 대입을 치고 보니
음대는 갈 재능이 안 되고
실용음악과는 쟤 뭔 헛소리니 하는 반응에
원하는 법대는 성적이 모자라고
신문방송학과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과 아니라 그러고 재수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의대 갔다가 사시 치면 유니크한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아빠의 -돌이켜 보면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구라와 사기에 홀딱 넘어가서 일단 의대를 가기로 했다.
그때까지 나는 의사가 장래희망인 적이
한 번도,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지.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나는 스무 살이 될 때 까지도
나의 적성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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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엄마 말대로라면,
오늘날 내가 입시를 했다면
이도 저도 아닌 잉여인간으로 아무 데도 못 갔을 것 같은데,
요샛말로 공부 잘했던 아빠 조언 듣는 게
대치에서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아이들에게
한 줄로만 이어진 길을 가라고 할 수가 없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아는 바,
세상에 허투루 지나가는 공부란 없다.
내 삶에 문학이, 음악이, 영화가, 신문이, 역사서가
과연 의학보다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의 갈지자 인생이 과연 무용한 것이었을까.
직업을 뺀, 아니 빼지 않고도
나의 삶 전반을 지배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저 ‘쓸모없는’ 학습의 열매가 대부분이다.
나는 그 모든 열매를 차곡차곡 간직한 채
직업을 확장시키고 취미를 유지하는가 하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노후를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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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10년 뒤 세상은 지금 같지 않을 거고
대학의 형태도 직업의 개념도 삶의 범위도 다를 것이다.
지난 10년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이 어떻게 개벽했는지, 코로나 이후 한 해 한 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우리 다 봤잖아.
앞으로 또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
우리 아이들은 국내외 대학의 경계 없이 경쟁할 것이고
평생 적어도 두세 개 이상의 직업을 가져야 할 테고
모르긴 해도 높은 확률로 120세까지는 살 것 같은데
그럼 정말 가르쳐야 하는 가치는 뭐냐는 거지.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건 교과서나 매뉴얼 없이도
날 것 그대로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본인만의 학습 방식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워 본 경험과 숙련(영어는 기본, 제2외국어와 컴퓨터 언어 포함)
본인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설득할 수 있는 언어적/비언어적 소양
전 세계 어느 곳, 혹은 지구 밖 어딘가,
어떤 정세와 경기와 자연재해적 상황에서도
민첩하게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대처 능력.
그런 거 아니겠냐고.
인간이 80세를 살건 120세를 살건
스물 넘으면 부모 품 떠나는 건 똑같고
그때에 인생이 결정되지 않으리란 건 너무나 명백하니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갖은 경험과 잡다한 소양으로 촘촘히 채워
떠나보낼 작정이다.
그래 가지고는 SKY나 Ivy 못 간다고 협박들 하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뭣이 중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