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다는 말이 제일 아팠다. - 힐링에세이_ By. 봄볕
"괜찮은 척 하지만, 사는 게 맘 같지 않네요.
저마다의 웃음 뒤엔 아픔이 있어."
불과 57초 남짓한 짧은 영상이었다.
우연히 불후의 명곡에서
김필이 부른 싸이의 노래 기댈 곳을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 못했던 말과 울음 섞인 밤들이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나를 향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마치, 아물던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는 듯 오래 눌러온 마음의 상처가 아려왔다.
나는 이 노래처럼 내 아픔을 숨긴 채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가 나를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는 곧잘 들어주었다.
낯선 사람조차 한두 마디만 나누면 몇 시간씩 마음속 얘기를 내게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을 다 듣고 나면 언제나 내 안은 공허했다.
결혼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늘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정작 내 고통은 늘 가슴 한켠에 조용히 묻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타인들의 고통이 그들을 넘어 나에게 전이되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강하다고 믿었다.
부모님과 가족만 곁에 있다면 어떤 불행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괜찮다'라는 말이 모호한지 알면서도, 그 조차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정작 진짜 괜찮았던 날은 거의 없었다.
'괜찮지 않다'는 말을 꺼내면 누군가를 걱정하게 만들까봐
왠지 약한 모습처럼 비칠까봐 참고 또 참으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정말 괜찮은 줄 착각했다.
나는 마음을 펼쳐 보일 용기도, 괜찮지 않음을 인정할 용기도 없었다.
그저 외면하기에 바빴다.
부모님이 나 때문에 무너질까봐,
그런 생각만 떠올려도 잘못된 생각을 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괜찮지 않은 나를 방치하면 내 주변까지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걸.
타인의 고통을 들어주며 내 고통은 더 깊어졌고, 나도 모르는 사이 시들어갔다.
'이러다 정말 꺽일 수도 있다.'
그 순간에서야 비로서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는 지금 괜찮아?"
이 질문이 너무 늦지 않게 당신에게 도착하길 바란다.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번아웃이 오고 나면 다시 괜찮아지기까지 정말 먼 길을 돌아야 한다.
죽은 꽃은 되살릴 수 없지만, 시든 꽃은 다시 피어날 수 있다.
물을 주고, 빛을 주고, 가지를 다듬으며 조금씩, 천천히 회복시킬 수 있다.
뿌리채 뽑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삶이 아닌,
파인애플처럼 왕관을 쓰고 위로 자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있다.
얼마나 빠르게 나의 신호를 알아차리냐에 따라 다시 일어서는 무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괜찮지 않더라도 괜찮다.
당신이 나약해서도,
모자라서도,
멍청해서도 아니다.
당신은 언제나 진심이었고,
그래서 더 많이 상처받았고, 더 깊이 아팠을 뿐이다.
그저,
당신은 모든 것을 품어낼 만큼 따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 온기를 나 자신에게도 나누어주길 바란다.
당신은 지금 정말 괜찮은가?
가짜 괜찮음에 속아 진짜 마음을 놓치지 않기를.
진짜 당신을 지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당신이 괜찮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