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가까운 사람의 말이 더 아프다.

다 괜찮다는 말이 가장 아팠다. 힐링 에세이 _by. 봄볕

by 봄볕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를 잘 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참 쉽게 나를 정의내린다.


"넌 원래 좀 예민하잖아."

"넌 끈기가 없어."

"넌 항상 너무 민감하더라."

"넌 남 밑에선 잘 할지 몰라도, 혼자 큰 일은 못할 것 같아."

"내가 너를 모르니?"

이런 말들이

스쳐 지나가는 타인의 입에서 나왔더라면

'무례한 사람이구나'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을 땐,

나는 그 한 줄의 말 속에서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그냥 한 말이야."라는 무책임한 말이

내 안에서는 수십 번 되새김질되고,

그들을 원망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게 만든다.

그 말은 결국, 내 마음을 천천히 죽이는 화살이 된다.


"내가? 내가 그래?"

조심스레 되묻는 내게

"어. 너 원래 그러잖아."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올 땐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넘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속엔 이미 생채기가 남는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너는 안 그러는 줄 알아?"

되받아치고 싶지만, 쪼잔해 보일까 망설여진다.

그리고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끝내 입을 다문다.

돌아올 말도 뻔하다.

"이거 봐. 너 지금도 그렇잖아."

그렇게 또 한 번, 나는 침묵 속에 가둬진다.


"그래. 네 말이 맞나 보네."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하고 돌아온 밤, 나는 며칠이고 그 말 속을 헤맨다.

억울했고, 서러웠고, 자존심도 상했다.

"너는 왜 그 때 아무 말도 못했어!"

괜히 나 자신을 탓해본다.

하지만 안다.

그 말들이 유독 깊이 박혔던 이유는,

그 말이 내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구나.

그렇게 믿고 있었구나.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스크레치가 났다.


물론 나는 벽하지 않다.

실제로 예민할 때도 있고, 포기한 적도 있으며, 감정이 앞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모든 순간을 단 한 줄의 말로 정의내릴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를 예민하다고 말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나를 따뜻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나를 끈기 없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나를 성실하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넌 못 할 거야.'라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너라면 해낼 거야."라고 말해준다.


결국 평가는, 그 사람의 기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비난이 섞인 평가는 자신은 결점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 치부하며

스스로 더 우위에 있다고 믿을 때 쉽게 선을 넘고 온다.


"너는 꼭 그렇더라."

"넌 원래 그런 사람이야."


이런 말의 밑바닥에는 "넌 변할 수 없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그들은 나를 그들의 기준 안에 가두고, 타인 앞에서도 너무 쉽게 정의내린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평가받는 걸 견디지 못한다.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도 금세 불편해지고 억울해한다.

그럴 때면 마음이 조금 서늘해진다.


나에게는 그렇게 단호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는 참 관대하구나.

그제야 나는 진실에 닿는다.

그들의 말은 진심 어린 조언이 아니라, 그저 제멋대로 해석한 판단이었구나.


사실, 나도 나 자신을 다 알지 못한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나 조차 내 감정에 놀라고, 내 선택에 당황할 때가 있다.

그런데 가까운 누군가가 너무 쉽게, 확신에 찬 말로 나를 규정지으면

나는 당혹스럽고, 마음 한켠이 얼어붙는다.

'내가 너무 민감한 걸까?'

'그 사람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

스스로를 설득하며 상처받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상한 감정은 더 곯기만 한다.


나는 흔들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은 그런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내일은 또 다를 수 있고,

어제의 나는 부족했지만 지금의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설령 누군가 말한 그 단점이 내 안에 실제로 있다 해도 그게 나의 전부가 될 순 없다.


우리는 누군가를 안다고 믿는 순간부터 그 사람을 틀에 가두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그 사람이 다른 가능성으로 자라날 기회를 막는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너무 쉽게 "넌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지 말자.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말은 더 무례하고 더 위험하다.


그런 말을 삼키고, 반박하지 않는 건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무례함을 덮어줄 만큼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알아가는 중이고,

그들 또한 내가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를 지닌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그 누구도 서로를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사람은 물건처럼 정의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발견되고 자라나는 존재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내일의 우리는 또 다른 가능성이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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