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죄송합니다"는 그만두기로 했다.

다 괜찮다는 말이 가장 아팠다._힐링에세이 by.봄볕

by 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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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나는 '용인수지맘'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비영리 온라인 카페를 열었다.

처음엔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그마한 커뮤니티는

어느덧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기쁨만큼이나 고되고 복잡한 일들도 넘쳐났다.

소심한 나를 만난 네 명의 운영진은

무려 10년을, 감정의 흠집 속에서 함께 버텨냈다.

카페는 회원 수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 안에서 때론 모두가 피해자인 세상이 펼쳐졌다.


나는 늘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누군가는 다쳤고, 누군가는 억울했고, 또 누군가는 분노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죄송합니다." 였다.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상황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그말부터 본능처럼 꺼냈다.

사람들의 화를 가라앉히고 싶어서,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서,

케이크의 한 조각을 덜어내듯

나의 마음의 일부를 떼어주며 말했다.


어떤 날은 경찰서에서도 전화가 왔다.

회원끼리 생긴 문제를 엄마처럼 나서서 해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운영진 대표라는 명목은,

회원들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책임까지 고스란히 떠안는 일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을 위해 베푼 친절이 내 아이와 나의 일상은 점점 집어 삼켰다.

운영 규정은 감정 앞에 무기력해졌고,

쪽지와 채팅, 게시판에는 운영진을 향한 비난이 날아들었다.


처음엔 그 모든 걸 다 안았다.

'얼마나 속상했으면 그랬을까.'

'내가 좀 참으면 지나가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들이 원하는 말과 태도를 맞춰가며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려 애썼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싫었다.

상대의 기분을 다치게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 감정과 의견은 조용히 뒤로 밀렸다.


나는 스스로 배려라는 가면을 쓴 피플 플리저였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음.

내가 상처받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모든 상황을 원만하게 넘기려 했던 마음.

그 착한 태도는 결국 나를 스스로 삼켰다.

즙을 짜내듯 마음은 메말랐고 서서히 병들어 갔다.


친절할수록, "죄송합니다."라고 말할수록

일부는 스스로 더 깊은 피해자가 되었다.

그들은 나를 아래에 두고,

점점 더 대담하게 나를 가르치려 했다.

밑도 끝도 없이 쏟아지는 조롱,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를 만큼의 욕설이

첫 쪽지부터 날아들었다.

그들은 세상에게 받은 상처를 나에게 마음껏 퍼붓고 나서야

선심 쓰듯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당신 덕분에 참는거다."


나는 그것이 올바른 대처라고 믿었다.

무례함을 받아주는 것이 성숙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게 옳다고 여겼고,

누군가에게 같은 방식으로 상처 주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정중함은 어느새 굽신거림이 되었고,

조용히 있으면 있을수록 호구가 되었다.

나는 애초부터 그들에게

나를 함부러 대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예의라고 믿었던 행동이

그들에게는 권리처럼 느껴졌다는 걸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나무는 바람을 견디기 위해 먼저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린다.

햇살을 받기 전, 꽃을 피우기 전,

어둠을 뜷고 스스로 거대한 땅을 붙든다.

그런데 나는 나를 붙들기도 전에 남을 먼저 달래려 애썼다.

모두의 기분을 맞추고자 내 감정은 늘 뒤로 밀렸다.

그러다 보니, 나는 흔들릴 때마다 붙잡을 뿌리 하나 없이

쉽게 쓰러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나의 마음이 먼저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의 분노와 슬픔을 끌어안기보다,

나부터 단단히 서기 위해,

내 감정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요즘은 무조건 "죄송합니다."라고 답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속상하셨겠어요."


그들의 감정을 읽되,

내 마음까지 상처받을 자리는 더 이상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면 정중한 사과는 하지 않는다.

무례하지 않게, 그러나 나 자신도 다치지 않게.

생각보다 어렵고, 그래서 더 지켜야 하는 나만의 선을

만들고 지키려 애쓰는 중이다.


살다 보면, 나처럼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놀이터에서도, 아무 잘못도 없이 "미안해"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본다.

부모에게서, 때로는 학교와 기관에서 습관처럼 '죄송합니다.'를 먼저 배우는 세상.


누군가의 기분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희생하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그 말,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물론,

자신의 잘못이라면 책임을 다해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까지 굽실거리며 "죄송합니다."를 남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마음은 한비자의 나무가 아니다.

그늘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이유로 도끼에 찍히고 마는 그 나무처럼.


당신의 마음도,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함부로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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