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기의 언어

BY. 봄볕 _ 오늘의 시

by 봄볕


서천 갈대밭에 다다랐을 때,

비가 멈췄다


여자는 텅 빈 가슴으로

쓰러지는 갈대를 바라보며

한없이 가여운 여자를,

갈대처럼 쓰러지는 여자를

고요히 갈대숲에 내려놓았다

여자의 곱절은 되는 키로

더 크고 무겁게 기울어지는 갈대를 보며

갈대 끝이 축축이 젖을 때까지,

여자는 잠시, 갈대이기로 했다

주위를 서성이던 바람이 멎고

기울어지는 갈대의 시간이 느릿하게 피어날 무렵,

여자는 하얗고 몽글한 갈꽃이 되어

바람이 흔드는 대로 피어올랐다

갈대와 갈대 사이로

이름 모를 서러움이 흔들릴 때,

아무도 모르게 목놓아 울던 갈대습지 한가운데서

누군가 앞서 두고 간 갈대들이

바람에 한껏 흔들렸다

그러나, 갈대는 꺾이지 않았다

그저 비가 그치면

바람을 따라 다시 일어서라고

살아간다는 건

결국, 그뿐이라고

거짓말처럼 돌아서는 여자를 향해

갈대는 하얀 갈꽃을 흩날리며

조용히, 그리고 높이

더 높이 몸을 일으켜

늦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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