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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기브미 초코렛

소년시절

by 최연수

“미국놈 구경 가자.”

“잔나비 같이 생겼을까?”

“낯바닥은 희고, 눈깔은 포랗고, 머리는 노랗다니께.”

탱크를 몰고 와서 우리들을 길가에 눕혀놓고 밀어 뭉개버린다던 그 미국(米國) 사람들을 구경한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해방시켜주었다니 은인(恩人)이기는 하지만, 도깨비나 귀신 같이 생겼을 그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퍽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느그들 げた(게다=下駄) 벗고 가야 핸디어. 게다 신고 가믄 잽혀 가”

나는 게다를 벗었다. 게다는 왜놈들의 나막신이니까 벗어야 마땅할 것 같았다. 맨발로 뛰어가서 사람들 틈에 끼었다. 호기심으로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제 각각 한 마디씩 했다. 미국 사람의 생김새를 아는 척들 했는데, 그들 말을 짝 맞추어보면 틀림없는 괴물(怪物)이 틀림없었다. 그 옛날 어렸을 적에 자동차를 처음 구경 나오던 그 광경과 똑같았다.

“온다! 온다!”

이윽고 다리 쪽에서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났다. 참으로 이상하게 생긴 jeep(찌프)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빼들고 웅성거렸다.

“Hello(헬로)!”

그들은 손을 높이 치켜들고 웃어 보이며 뭐라고 지껄였다. 아닌게아니라 훌쩍 큰 키에, 우뚝한 코, 파란 눈, 갈색 머리, 허연 피부,뺑코모자...... 참으로 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분의 안내를 받아 ‘백마 빠’로 들어갔다. 해방이 되면서 ‘태양 까페(太陽Cafe)’ ‘백마 빠(白馬Bar)’ 라는 것이 생겼는데 그 곳이 뭘 하는 곳인지 몰랐다. 사람들은 방긋이 열린 창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근처에 얼씬할 수도 없었다. 이내 그들은 떠나고 말았는데 사람들은 한동안 흩어질 줄을 몰랐다. 여자들은 가면 큰일 난다고 해서 먼 발치로만 고개를 빼들고, 남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킬킬거리고 수군거렸다.

며칠 후에는 많은 미군(美軍)이 큰 트럭(truck)을 타고 들이닥쳤다. 길가에 늘어선 무리들이 만세를 부르고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으스대며 뚜벅뚜벅 들어왔다. 철모(鐵帽)를 쓴 그들은 가지각색이었다. 흰둥이도 있고 검둥이도 있고, 노란 눈 파란 눈...그러나 한결같이 키꺽다리에 코쟁이어서 성큼성큼 걷는 것이 외계인(外界人) 같았다. 그리고 껌을 질근질근 씹고 다니면서 여자들만 보면 뭐라고 지껄였다. 그들은 일본인 집들을 차지하고 주둔했는데, 일본 군인들의 무장을 풀려고 왔다는 것이다. 일본군은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뒤꿈치에 큰 송곳니 같은 쇠꼬챙이가 붙은 군화(軍靴)를 신고, 나무 전봇대를 찍으며 성큼성큼 올라가는 모습이 틀림없는 원숭이었다. 전화선(電話線)을 거미줄 같이 마련하는 것이었다.

“왜 미국 사람이지 미국놈이여, 우릴 해방시켜 줬는디 그러믄 쓰간디!”

지금까지 미국(米國)이라고 써온 신문들은 미국(美國)이라고 고쳐 썼다. 쌀이 많이 나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야단이 났다. 미군들이 집을 뒤진다는 게 아닌가? 일본군들이 숨기고 간 무기(武器)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우리 집엔 무기가 없으니까 안심이었으나, 식칼 방망이 따위도 모조리 빼앗아간다는 소문이 났다. 야단났다. 우리 집에는 톱, 대패, 칼, 망치, 칼, 송곳, 끌....위험한 공구(工具)가 즐비한데... 다른 집들은 칼, 방망이들을 개천에 버리거나 감추었는데 우리 집은 언제 감출 새도 없이 완전(完全) 무장(武裝)을 한 코쟁이 미군 서넛이 들이닥쳤다. 아버지는 안절부절 못하며 무기가 아니라고 핑계 하는데,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구들을 살폈다. 나는 너무도 무서워 뒷집으로 가 숨으려 했다. 그러나 그 곳에도 미군이 있지 않는가? 사방에서 둘러싸인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갈팡질팡했다. 쌓아놓은 목재 틈새까지 꼼꼼하게 뒤졌는데 우리 집은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다. 손짓 발짓해가며 목공(木工) 공구(工具)임을 설명하는 아버지의 애태우던 모습을 그 후 어머니는 곧잘 흉내 내어 웃곤 했다. 그들이 나간 뒤 아버지는 변소 안에 감추어 둔 책을 꺼내었다. 조선(朝鮮) 총독(總督)과 일본 수상을 지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가 쓴 책이었다. 이것 때문에 몹시 떨었다면서 곧 불살라버렸다. 일본도(日本刀)가 발견된 집 사람들은 잡혀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미군들은 여자들과 아이들을 좋아했다. 길거리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과자 껌 등을 곧잘 주었다. 특히 내 동생 상수는 미군들에게 귀여움을 받아 그런 과자를 많이 얻어 와서 맛을 보았다. 어찌나 맛이 있는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입맛을 본 아이들은 미군들만 지나가면 손을 내밀었다.

“헬로! 기브미. 좆 꼴렸다.( Hello. Give me chocolate.)

던져주다시피 과자를 주면

“땡큐. 배락(벼락) 맞아!(Thank you very much!)

하면서 고개를 꾸벅 하고 받아먹었다. 재미를 붙인 아이들은 꽁무니를 졸랑졸랑 따라다니면서 그들을 귀찮게 했다.

“원 시상에 그런 쌍스런 욕을....”

그러나 아낙네들은 혀를 차며 미군을 비난했다. chocolate는 ‘좆 골냈다’가 되고 very much는 ‘벼락 맞아’로 변질(變質)했으니 그럴 수밖에.

“왜놈들은 *ふんどし(훈도시)만 차고 댕기더니, 미국놈들은 대낮에도 여자들 입을 맞춘담서. 앗다메 망측해라.”

‘태양까페’와 ‘백마빠’를 드나드는 미군들은 기생(妓生)들을 껴안고 사교(社交)댄스란 걸 추며, 입술에다가 키스(kiss)를 안 하나, '색시'가 sexi로 와전(訛傳)되어, 지나가는 여인들에게 성(性)을 상징하는 손짓으로 ‘색시!’ 라고 부르지 않나....미군은 과연 야만인(野蠻人)이다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것을 흉내 낸 조선인 순경(巡警)이 키쓰를 억지로 하다가 거절당하니까 총을 쏘아 죽인 사건이 발생해서 신문에 큰 글자로 보도까지 되었다. 그 여인을 장례 지낼 때, 기생들 모두가 하얀 소복(素服)에 하얀 꽃상여(喪輿)를 메고 만장(輓章)을 휘날리며 지나가던 긴 행렬은 갖가지 생각을 일으켰다. 그 때 kiss라는 말이 처음 유행했으며, 그 경찰은 살인죄(殺人罪)로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방청객(傍聽客)들로 안팎이 몹시 북적거리었다.

남편을 징용으로 내보내고 생과부가 된 이웃집 아주머니는 미군들의 옷 빨래를 하면서 그 날 그 날 살아나가는데, 그는 동네 아낙네들에게 미군 빤스(삼각pants)를 내보이며 웃기곤 했다. 팔뚝을 걷어 올려 보이면서, 그들의 ××가 어찌나 큰지 팬티 속에는 호랑(주머니)이 따로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한편 북쪽에는 소련(蘇聯) 군대가 들이닥쳤는데, 로스키라는 그들 군인들도 형편없는 야만인(野蠻人)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조선 사람들의 시계를 빼앗아서 두 세 개씩 손목에 차고 다니며, 크고 시커먼 흑빵(훌레바리?)을 베개 삼아 베고 자다가 시장하면 뜯어먹곤 한다는 것이다. ‘이북통신(以北通信)’이라는 잡지에는 조선 사람들의 집에 들어와서 귀한 물건은 닥치는 대로 빼앗아가고, 밤 열차를 이용해서 공장의 기계들을 뜯어 제 나라로 실어간다는 기사가

실렸다. 처녀들을 낚아채가는 것은 흔한 일이고, 심지어 여군이 남자들도 잡아가서 성애(性愛)를 억지로 즐긴다는 소문도 떠돌아다녔다.

*ふんどし(훈도시=襌)....일본 남성기를 가리는 좁고 긴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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