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뒤 란

새우타령

by 최연수

아기똥 아기똥 걸음마하다

응가 한 자리에

애기똥풀 꽃송이들.


노루목으로 잘못 들어

찔끔 쉬 한 곳에

노루오줌 몇 포기.


밤이면 뻔찔나게

쥐들이 오가던 길목에

쥐똥나무 한 그루.


강아지 똥 헤집고 뻗은 덩굴에

조막손 같이 열린

개똥참외 두어 개.


벌 나비도 얼씬 않는

내 인생 뒤란에

살금살금 들어와,


발름거리는 코를

꼬옥 거머쥐고

깔깔거리는 손주들.


(회고록 2에서 전재)




2003년에 맏손자를 얻었다. 7순을 바라보는 늦깎이 할아버지의 기쁨을 무엇에 견주랴. 2005년에는 둘째 아들에게서 두 번째 손자를, 이어서 2011년에는 첫 외손녀를 얻었다. 오랜만에 우리 집안의 경사가 겹쳤다. 슬하에 2남 1녀를 둔 아버지였지만, 손자들을 보는 할아버지의 기쁨은 또 다른 것이었다. 이들이 튼튼하고 씩씩하며 예쁘고 슬기롭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크나큰 행복이다. 다만 외손자까지 있으면 錦上添花(금상첨화)인데...

그런데 이들이 자라감에 따라, 할아버지로서 갖춰야할 인격․인품과, 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지혜와 지식․능력을 갖추는 일이 큰 과제임을 깨달았다. 더구나 子子孫孫(자자손손)대대로 신앙을 상속해야 하는데, 과연 할아버지가 신앙의 멘토(mentor)로서 존경 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40년을 살았을 때 가족이, 50년을 살았을 때 주변이, 70년을 살았을 때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이 보인다고 했다. 그리하여 새삼스럽게 뒤 발자취를 돌아보고, 지금 서있는 자리를 둘러보며, 눈을 똑바로 뜨고 앞길을 내다보게 된다.

이들이 할아버지 집 앞 마당에서 天眞爛漫(천진난만)하게 뛰어놀다가, 호기심으로 불현듯 뒤란으로 돌아가서 내 남겨진 발자국을 살펴본다면...

애기똥풀이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내가 풍차바지 입고 아기똥 아기똥 걸음마 배우다가 응가 한 자리에 자라고 있다. 한쪽 구석에는 노루오줌 몇 포기가 자라고 있다. 노루가 지나다니는 길목(?)인데 내가 지나가다가 오줌 찔끔 쉬했던 곳이다. 또 한쪽 구석에는 쥐똥나무 한 그루 자라고 있다. 밤이면 쥐들이 뻔찔나게 오가던 길목인데, 쥐똥 같은 쥐똥나무 열매가 수북이 쌓여있다. 저만치에는 강아지 똥을 헤집고 뻗은 덩굴에 조막손 같은 개똥참외가 두어 개 열려 있다.

애기똥풀․노루오줌․쥐똥나무․개똥참외...온통 구린내․지린내 풍기는 나무들로 가득 찬 뒤란. 이 후미진 곳에 벌․나비들이 날아들 리가 있겠나? 그런데 철없는 손자들이 살금살금 들어와 역한 냄새에 발름거리는 코를 거머쥐고 깔깔거린다. 가려진 뒤란이 환히 드러나는 날, 할아버지는 홍당무 얼굴을 가린 채 손자들에게 엉뚱한 곳을 가리키며 그들의 눈길을 흐트러 놓는다, 이런 할아버지가 되지 않겠노라고 이 시를 쓴지 어언 10여 년이 되었다. 이들이 고3, 중3, 초5로 성장했다. 유치하고 우둔한 할아버지의 생애를 들추어 볼만한 나이다. 회고록 2에 실린 이 시를 이곳에 옮겨 다시 싣는다.

keyword
이전 23화돌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