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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혀

새우타령

by 최연수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거늘,

말문이 막혔으니

무슨 맛으로 사나?


꿀 먹은 벙어리라고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글말이 있기에

그 맛으로 살아왔는데....


글 문까지 막혔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입술만 들썩거리며

살아야 하나보다.


세상 돌아가는 꼴

하도 어이없어,

구름처럼 떠돌며

글이나 썼나보다.


깊은 산 속에 묻혀

아예 붓을 꺾고,

새 소리만 들으며

그렇게 살았나보다.




6.25 전쟁 때 우리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아버지는 꼬리가 잘린 도마뱀처럼 自切(자절), 어머니는 자벌레처럼 擬態(의태), 우린 할아버지 댁에서 청개구리 되어 保護色(보호색)으로 살았다. 소위 반동분자를 색출하는 그물망이 좁혀오는데, 中2 문학 소년은 명함만한 종이쪽지에 몰래 시를 썼다. 이것을 쓰면서 울분을 삭이고, 이를 몰래 꺼내어 읽으며 슬픔을 씹어 삼켰다. 그런데 그만 할아버지께 들키고 말았다. 불호령이 내려 태우는데, 마치 나 스스로 焚身(분신)하는 듯한 哀痛(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으랴. 차마 다 태울 수는 없어 눈물을 찍어 썼던 몇 편은 슬쩍슬쩍 빼돌렸다. 마당가에 널브러진 기왓장 밑에서 숨만 쉬고 있다가, 수복이 되어 햇빛을 보게되었다.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는데 말문이 막혔다. 꿀 먹은 벙어리라고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글은 써야 하는데, 이제 글문까지 막혔다면 살아 무엇하랴. 그래서 禁足令(금족령)을 어기고 몰래 가출하여, 어느 들판 방죽가에 앉았다. 물 위에 어른거린 가족들의 얼굴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저 붕어들은 입만 뻥긋거려도 잘 사는데...’‘아니야, 저희들끼리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 거야...’붕어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돌이키고 되돌아 왔지만, 따가운 눈초리 때문에 반 失語症(실어증)이 생길 뻔했다.

그 후 김삿갓 같은 放浪(방랑) 시인들의 시나, 茶山(다산) 같은 遁避思想家(둔피사상가)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 때의 추억을 더듬는다. 말을 잃은 사람들이 글조차 쓰지 못했다면, 그 스트레스(stress)나 트라우마(trauma)를 어떻게 풀 수 있었을까? 그렇게 붓을 꺾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젊은 시절 쇼펜하우어 같은 厭世主義者(염세주의자)들의 글을 탐독하기도 하고, 老子(노자)같은 虛無主義者(허무주의자)들의 사상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난 樂天主義者(낙천주의자)로 살겠노라고 다짐하였는데...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노라니 어안이벙벙하다. 눈만 껌벅거리고, 입술만 벙긋거리며 붕어처럼 살아야 하나? 그래서 유랑생활조차도 접고 草野(초야)에 묻히거나, 深山幽谷(심산유곡)에 박혀 隱遁生活(은둔생활)을 했을 것이다. 말문이 막혀 ‘×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고 제법 客氣(객기)를 부리며 지난 가을 시 ‘바람’을 썼다. 이후 글 문까지 막혀 힘없이 붓을 놓고, 기도만 한다. 어처구니가 없어 맨손으로 맷돌을 돌려 나온 것이 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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