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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새우타령

by 최연수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멀리 날아가는 새.

가까이 다가갔는데

들어오지 말라는 꽃밭.

가까이 달려 갈수록

더 멀리 물러가는 신기루.

가까이 다가가 붙잡는데

뿌리치며 멀리 떠나는 내 사랑.


멀리 달아나는데

더 가까이 날아오는 벌떼.

멀리 달려가는데

더 빨리 쫓아오는 코로나.

떼어버리며 달아나는데

찰싹 달라붙는 재난.

멀리 가 숨으려는데

등 뒤에 와있는 죽음의 그림자.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손 내밀지도 않았는데

힘차게 일으켜주는 손길.

멀고 먼 하늘과 땅이

요렇게 가까운 걸.




0.1µm짜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78억 세게 인류의 목을 쥐락펴락 한다. 전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하고, 모임을 갖지 못하게 하며, 사람의 만남에도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근접공간학(Proxemics)에서, 인간관계의 공간을 4가지로 분류하는데, 그 중 사회적 거리는 46~120cm이다. 이걸 지켜야 한다. 꽃구경도 못한 채 봄을 배웅한다. 심지어 코로나로 숨을 거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볼수 없으니 이것이 산 지옥이 아닌가?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요 / 마음이 천리오면 지척도 천리로다.

우리도 各在千里(각재천리)오나 지척인가 하노라.

이 시조처럼 천리에도 대면한 듯, 전화․문자 메시지 한 통으로 정을 나눌 수는 있지만, 너무 索漠(삭막)하다.

기르던 새가 새장 밖으로 나갔다. 잡으려고 다가가면 더욱 멀리 날아갔다. 아름다운 꽃밭에 들어가고 싶은데, 지금 코로나 상황처럼 못 들어오게 팻말이 서있다. 젊은 시절 고시 합격이 유일한 희망봉이었다. 全力疾走(전력질주)하여 정상 한 걸음 앞인데 蜃氣樓(신기루)처럼 더 멀리 사라져버렸다. 사랑하는 살붙이들의 옷자락을 붙들었지만, 매정하게 뿌리치며 하늘나라로 떠나버릴 때의 충격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반면 풀을 베다가 그만 벌집을 건드렸다. 독이 오른 벌떼들을 피해 발걸음아 날 살려라고 옷을 벗어 흔들면서 간신히 살아났다. 지금 콜로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의료진․방역팀․온 국민이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오늘 내일 수그러질 것 같지 않다. 또 어떤 제2 제3의 재난이 독사처럼 또아리를 틀고 우리를 엿보고 있는지...가장 불안과 공포의 대상은 곧 죽음이다. 6.25 때 죽을 힘을 다하여 도망치며 은신․피신했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내 등 뒤에 바짝 붙어 따라왔던 것처럼 지금이라고 다르랴.

우리의 삶이란 잡으려는 건 놓치고, 떼어내려는 건 찰싹 달라붙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오히려 더 멀어지고, 멀리 달아날수록 더 가까워지는 것. 이 거리 때문에 喜怒哀樂(희노애락)이 갈리고, 희극과 비극이 교차한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氣盡脈盡(기진맥진)하였을 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예수님이었다. 瀕死(빈사)상태였을 때 붙들어 일으켜준 손길! 하나님이었다. 하늘과 땅. 얼마나 먼 거리인가? 그런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니...옛날 성전 揮帳(휘장)을 들추고 하나님 臨在(임재)하신 至聖所(지성소)에 들어가는 일은 땅에서 하늘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 십자가 공로로 휘장이 찢어져 언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이 복음이 모든 거리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준 것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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