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꼬이고 비틀어지며
죽 죽 벋어 올라가
잎은 푸르게 우거졌건만,
바둑이의 목줄을 묶어놓고
입마개를 해놓았구나.
얽히고 뒤틀리며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
꽃은 주렁주렁 피웠건만,
앉으려던 참새들은
푸드득 날아가는구나.
어그러지고 삐뚤어진들
잎 피고 꽃피는데
이 한 철 지나가기 전,
함께 얽히고설키자며
먼 산 칡덩굴에도 손짓하는구나.
(2021. 5. 1)
수묵화를 그렸다. 산책 길에서 보는 藤架(등가)다. 봄이 되어 푸른 잎이 무성하게 천장을 뒤덮으면 연보라 꽃송이들이 주렁주렁 피는 韻致(운치)에 눈이 흘리게 된다. 수묵화는 그 餘白(여백)에 妙味(묘미)가 있는 법인데, 텅 비어있는 천장 아래가 오늘따라 어쩐지 허전하여, 바둑이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그런데 목줄을 나무에 묶어놓고, 입에는 마스크를 끼웠다. 코로나 펜데믹(Pendemic)으로 어린애까지도 온통 마스크 차림이지만, 사나운 개에게 씌운 입마개처럼 그 순하디 순한 개에게 마스크를 씌우다니...뿐만아니라 등가 위에는 참새 두 마리를 더 그려 넣었다. 그늘진 쉼터를 찾아 기쁘게 날아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심드렁하게 푸드득 멀리 날아가버린다.
게다가 문인화가 그렇듯이, 몇 마디 詩句(시구)를 써넣는데 ‘등나무는 뒤틀리고 나는 짖지도 말라고?’라고 하였다. 마지막 落款(낙관)을 찍는데, 약간 떨떠름하다. 셀리의 법칙(Sally’s law)대로 살아야지, 머피의 법칙(Murphy’s law)대로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건만, 날마다 쏟아져 나온 뉴스에 몹시 짜증난다. 그렇잖아도 코로나로 말미암아 우울한데, 세상 돌아가는 꼴이 너무 꼬이고 뒤틀리며 얽히고 설키어 못마땅하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데, 때가 지나가기 전에 푸르게 우거지고 아름답게 꽃 피우겠노라고 딴은 우쭐대는데...
그런데 목줄을 묶어놓았다 할지라도, 사나운 개도 아닌데 왜 입까지 마스크를 씌워놓았나?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면 짖지 못하게 입막음 한 게 틀림없다. 어그러지고 비틀어진 등나무 밑에서 함부로 짖지 말라는 게 아닌가? 등나무처럼 蔓性木本(만성목본)은 원래 덩굴 식물이므로 그러려니 하다가도, 잠시나마 쉬어가려던 참새들마저 손사래하며 날아간 걸 보면, 나도 등가 벤치에 앉아 땀을 씻고 다리를 주무르며 쉬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신다.
등나무가 먼 산의 칡 덩굴에게 손짓을 한다. 같은 덩굴 식물이므로 끼리끼리 어울리자는 것이겠지만, 그야말로 葛藤(갈등)이다. 그러면 한 층 더 꼬이며 뒤틀리겠지. 민주 사회는 다양한 생각, 얽힌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고 지양해가며 공존하는 사회다. 그런데 상반 되는 행동은 못하게 목줄로 묶어 꼼짝 못하게 하고, 재갈 물리듯 말조차 못하게 입마개를 해놓고 덩굴들 끼리만 太平聖代(태평성대)를 누리겠단다. 그러면 민주사회를 받드는 기둥은 무너지고, 마침내 등나무도 쓰러져 땅바닥에 널브러질 게 아닌가? 이런 생각에 젖어 등가 옆을 지나며, 등나무를 그리고 있으니 입맛이 씁쓰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