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칼로 째서 아플지언정
접붙여야 열매를 맺고,
녹실녹실 무를지언정
비실비실 시들지 않고,
메말라 쪼그라질지언정
곶감 되어 단맛을 내고
까치밥 되어 먹힐지언정
쉬 떨어지지 않는 꼭지.
(2020.11.9)
감을 보면 한 식구를 만난 듯 반갑고, 주렁주렁 열린 감나뭇집을 보면 그립던 고향에 돌아온 듯하다. 어린 시절 우리 시골뜨기들이 가장 푸짐하게 먹었던 과일이 감이었고, 웬만한 집 뜰엔 감나무 몇 그루는 있었다. 그러나 행길가 가겟집에서 살았던 우리는 그 흔한 감나무가 없어, 감나뭇집이 몹시 부러웠다. 떨어진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 삼아 한 알씩 빼어먹기도 하고, 태풍에 떨어진 풋감을 주워다가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에 울어먹기도 했다.
농촌 외가에 가면 끝이 Y자로 갈라진 긴 간짓대로 가지를 꺾어 감을 따는 재미가 즐거웠고, 높은 가지에서 감을 쪼아 먹는 까치들을 쳐다보며, 요다음 헌 이빨 줄게 새 이빨 달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쌀독에 묻어 숙성시킨 감은 얼마나 맛있는지...차례 상에서 내려온 조.율.이.시(棗.栗.梨.柿)를 먹을 때면, 8 개의 감 씨가 8도 관찰사(觀察使)를 뜻하니까 조상의 도움으로 집안에 벼슬아치가 나올 것이란 알쏭달쏭한 어른들의 말을 듣기도 했다.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할아버지 댁에 은신해 있던 6.25 때, 풋감처럼 떫은 반공(反共)시를 써서 감나무 아래 숨겨두고, 홍시(紅柿)될 날을 얼마나 가슴 조리며 기다렸던가?
지금도 눈이 내린데도,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집을 보면, 비록 초가라 할지라도 부유한 부잣집처럼 보이고, 잎이 다 떨어진 채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감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옛부터 ‘잎이 무성한 감나무 밑에 있기만 해도 건강해진다’는 말이 전해오듯, 그만큼 유익하므로 사랑 받는 과일 나무다. 따라서 문인화(文人畵)에 자주 등장하고, 나도 까치를 곁들여 감나무를 종종 그리면서, 몇 줄 시를 써 넣기도 한다.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는 속담처럼, 감 씨는 심어도 감이 열리지 않고, 고욤나무에 감나무 생가지를 잘라 접붙여야 비로소 열린다. 이와 같이 칼로 째는 아픔을 겪지 않고는 어떤 성과를 바랄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대개 과일이 익으면 시들해지기 마련인데, 감은 녹실녹실 짓물러 연시(軟柿)가 될지언정 비실비실 시들어지는 일이 없다. 매말라 쪼그라질지라도 곶감으로 되어 한결 더 단 맛을 낸다. 가지 꼭대기에 까치밥으로 아슬아슬 매달려 있을지언정, 질기고 단단한 꼭지가 찬 바람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생가지를 칼로 째서 예수께 접붙여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요3:3)는 기독교 교리가 감나무에 있다. 한편 비실비실 시들지 않은 믿음, 쪼그라지면서 단맛을 내는 사랑, 단단히 붙어 쉬 떨어지지 않은 소망.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감이야말로 성경 말씀을 생활화 하고 있는 게 아닌가?(고전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