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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덩굴과 달팽이

새우타령

by 최연수

쑤욱쑤욱 자란 해바라기가

담을 훌쩍 넘고,

뒤 따라 벋어 올라간 나팔꽃이

뚜우뚜우 나팔을 불 때

난 엎드려 있었지.


포르르 참새 떼가

담을 휙 넘고 하늘을 날며,

뒤 따라 날아온 왕벌이

윙윙 머리 위를 맴돌 때

난 움츠리며 있었지.


더듬더듬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달팽이 한 마리가

쉬엄쉬엄 왔노라며

나의 마음을 북돋운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더위 추위를 막아주고,

공기를 맑게, 소음도 막아주며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잖느냐고,

나의 힘을 북돋운다.


(2021.11.22)




담쟁이덩굴 속에 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이렇게 이웃 교회를 뒤덮은 담쟁이덩굴이나, 여기저기 담벽·바위·아름드리 나무를 기어 올라간 담쟁이덩굴을 보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난다. 어린 시절 잎을 따서 제기차기 했던 일,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뒷집 병원이 참 멋있어 보였던 일. 무엇보다도, 6.25 때 할아버지댁에 은신해 있으면서, 눈물을 찍어 썼던 反共 시를 담쟁이덩굴 틈에 몰래 감추려다가, 그 곳에 집을 짓고 살던 왕벌에게 혼쭐났던 일... 흔해서 무심코 지나쳐버린 담쟁이덩굴이, 요즘 새삼스럽게 눈에 띈 것은 왜 일까? 청년 시절 한 때 독립자존(獨立自存)의 정신이 강한 편이라고 으스댔는데, 뭔가를 붙잡지 않으면 홀로 설 수 없고, 뭔가에 기대지 않고는 홀로 살 수 없다는 걸 느끼며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해바라기가 담을 훌쩍 넘도록 잘 자라 큰 키를 자랑하고, 그를 감고 높이 올라간 나팔꽃도 곱게 꽃을 피워 천사의 나팔꽃처럼 나팔을 분다. 참새 떼들이 담보다 훨씬 높게 맘껏 하늘을 날며, 독침을 감춘 벌들도 거침없이 담을 넘나들며 꿀을 나른다. 그런데 담쟁이덩굴은 살금살금 기어서 힘겹게 담·벽 이나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한 뼘 쯤 자라려면 며칠이 걸릴까?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 잘난 사람들이 많다. 돈·권력·지위·명예·인기...다 갖추고 모든 걸 누리는 우월감에 취해 뽐내고 우쭐대는데, 담쟁이덩굴처럼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움츠리고 엎드려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많다. 눈도 밝지 못한 채 어떻게 올라왔는지, 달팽이 한 마리가 속삭이듯 하는 말 몇 마디가 담쟁이덩굴의 마음과 힘을 북돋운다. 자기도 쉬엄쉬엄 더듬거리며 여기까지 올라 왔노라면서.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생명력으로,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공기를 정화시키며 소음도 줄여주지 않느냐고 한다. 게다가 봄·여름에는 초록색,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잖느냐고 한다. 따스한 봄바람과 시원한 빗줄기 같은 희망의 속삭임 아닌가?

그렇다! 문득 젊은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오 헨리(O.Henry)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 (The Last Leaf)’가 생각난다. 죽음을 앞둔 병약한 수(Sue)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준 룸메이트 존시(Johnsy)와 노인 화가 베어먼(Behman)이 달팽이로 환생(還生)한 게 아닌가?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과 소재가 된 마지막 잎새가 곧 담쟁이덩굴 아니던가? 비록 작은 덩치지만 집까지 짊어지고 천천히 기어다니는 달팽이의 삶이, 3S(Simple. Small. Slow)로 살고자 하는 나의 생각과 어쩐지 닮았다. 한편 비록 보잘 것 없이 엎드려 기어오르고 있지만, 개구리 발가락을 닮은 흡착근(吸着根)으로 담·벽·바위·나무에 착 달라붙어, 줄기를 지탱하는 담쟁이덩굴의 삶이, 곧 나의 신앙생활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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