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똑바로 곧게 달리고 싶은데
거치적거린 게 이다지도 많은지.
넘어가자니 너무 높고
헤엄치자니 너무 깊고
기어가자니 가시밭길.
뒤돌아갈 수는 없어
늦더라도 돌아가려는데,
더 높은 산 더 깊은 강
더 엉성한 가시덤불 숲.
이다지도 장애물은 많은지.
작은 돌부리엔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지.
박치기 이마받이로 뚫고 나가는데
이마에선 피멍이 들고
머리엔 혹이 났다.
굽히고 꺾이면서
가까스로 벗어난 세상.
빨·주·노·녹·파·남·보
아롱다롱 아름다운 동산
무지개 동산.
(2021.11.3)
최씨(崔氏) 고집(固執)이란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학창 시절 상아탑에 갇힌 나도 가끔 융통성 없다는 말을 들었다. 선친께서 부정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 대나무처럼 강직(强直)하다는 중평(衆評)을 받았는데, 그 DNA를 이어받았을 것이다. 폭풍이 불 때 연하고 보들보들한 수양버들 가지는 좀처럼 꺾이지 않지만, 꼿꼿하고 뻣뻣한 나무 가지는 쉬 꺾인다는 사실을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이와 함께 철이 들면서, 모를 깎아 둥글둥글해지고, 두들겨서 말랑말랑해졌다. 남이 먹기 좋게 달콤새콤한 맛도 갖추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핵(核)이 바뀌었을까? 아니다. 핵은 여전히 딱딱하다. 그래서 나는 핵과(核果)인 복숭아라고 자칭한다.
빛은 직진(直進)한다. 곧 외곬이다. 그러나 공기 중에서만 외곬이지, 다른 매체(媒體)로 들어갈 때는 그 경계면(境界面)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곧 굽히고 꺾이는 굴절(屈折)이다. 프리즘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얼마나 신비했는지...게다가 어렸을 적부터 늘 궁금했던 무지개가, 이 원리로 말미암아 생긴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이(驚異)였다. 직진했던 학교에서 사회로, 곧 프리즘처럼 다른 매체로 들어왔으니 처음으로 굽히고 꺾인 셈이다.
그러면 새로 맞닥뜨린 사회는 무지개처럼 7 가지 아름다운 세상이었을까? 거치적거리는 많은 장애물에 눈앞이 캄캄하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넘어가자니 높은 산, 헤엄쳐 건너자니 깊은 강, 기어가자니 가시밭길...뒤돌아 갈 수는 없어 늦더라도 돌아가고자 하는데, 더 높은 산이 버티고 서있으며, 더 깊은 강이 가로 누워 있으며, 더 앙상한 가시 덤불 숲이 펼쳐져 있다. ‘작은 돌부리에는 넘어질지라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이 없다지...’ 하는 수 없이 굽히고 꺾이며 뚫고 들어갈 수밖에. 문득 어린 시절 운동회 때 장애물 경주를 했던 기억이 났다. 젖먹이 적부터의 온 힘을 다해 박치기·이마받이를 하니까, 머리에는 혹이 나고 이마엔 피멍이 들었다.
두 눈을 번쩍 뜨니 아, 빨·주·노·녹·파·남·보! 교회다. 세상에서 굴절(屈折)되어 교회로 나왔더니 아롱다롱 무지개가 아닌가?
알쏭 달쏭 무지개 고운 무지개/ 선녀들이 건너간 오색 다린가
누나 하고 나 하고 둥실 떠올라/ 고운 다리 그 다리 건너봤으면.
어렸을 때에 즐겨 불렀던 동요를 목청껏 불렀다. 선녀를 천사로, 누나를 엄마로 고쳐 부르면서. 무신론자요 반기독교인인 복숭아가 예수를 믿게 된 건, 학교에서 사회로, 세상에서 교회로 두 번이나 굽히고 꺾인 굴절 때문이다.